눈은 눈을 볼 수 없다

by Aarushi

꿀잠이 보약이다. 7-8시간 숙면하고 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에, 이토록 기운이 솟아난다. 간밤 언제 잠들었지도 모르게 잠든 뒤 눈떠보니 아침이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되는 마법. 아침부터 뚝딱뚝딱 할 일을 하고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4권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려오려 서둘러 나선 길이었다. 가는 길에 따뜻한 녹차라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하고 책의 무게로 축 늘어진 에코백을 꽉 붙잡고 산책겸 도서관에 다녀왔다. 겨울의 도서관은 그 특유의 포근함이 있다. 아침이면 유독 한가한 터라 짐짓 그 한가함과 포근함이 주는 안정감에 자주 찾게 된다.


오늘은 차를 가지고 나가지 말고 버스를 탈까?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도착지까지 책을 읽는 것도 편안한데 오랜만에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며 가며 그렇게 몰입해 읽다보면 어느새 도착지요, 집이요, 책장도 꽤 많이 넘겨져있다. 겨울의 독서는 유난히도 따숩다.


집안 공기도 포근하다. 이 포근함을 벗삼아 세탁기를 돌리고 바짝 말린 수건이며 옷가지들을 가지런히 포개어놓는다. 바스락바스락 빳빳하게 잘 말려진 수건을 내 뺨에 살포시 대본다. 은은하게 밴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들이 주는 낭만이 있다.


드라마틱한 전개보단 무난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대부분인 삶에서 무엇을 붙잡아야 할 것인가? 붙잡지 않으면 어떤가? 그 어떤 것도 붙잡을 것도 붙잡지 말아야 할 것도 없다. 그저 저 푸른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처럼 그렇게 살면되지.하는 생각이 인다.


언제부터인가 일상 속 아주 작고 사소한 일, 말들, 사람, 사물, 자연... 모든 것들에게서 아, 그렇구나!하고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때론 직관적인 앎이요, 때론 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요, 자기 생과 삶, 인간에 대한 통찰과 지혜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깨달음이란 있는가? 그것은 신비스럽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들에게서 절로 알아차려지는 그것들이 아닐까싶다.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지 않을까.


앎은, 깨닮음은, 통찰은, 지혜는, 늘 우리 곁에 있다. 그것들은 일상에 있다. 그것들은 찾는 것이 아니라 절로 드러나는 것이겠지.하는 생각이 있다.


두터운 복슬한 곱창끈으로 머리를 질끈 야물게 묶었다. 머리를 질끈 묶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바짝 드는 효과가 있다. 책을 챙겨왔는데 황야의 이리.를 다시금 집어 들었다. 황야의 이리를 처음 읽었을 때 내 시선을 확 끌었던, <미친 사람만 볼 것>이라는 문구가 또 다시 날 강렬하게 그 속으로 이끌었다.


나는 왜 이토록 고전에 매료될까? 고전을 읽을 때라야 책을 읽은 것 같은 부분이 있다. 책에 관해서라면 나는 확실히 고전. 유독 그것에만 깊이 매료되는 부분이 있다. 스치듯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잠시 걸음을 멈춰선 채 내 얼굴, 내 눈을 들여다봤다. 머리카락을 보아하니 숱이 준 것 같기도. 잔머리가 본래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나이드니 더 숱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눈을 곧잘 들여다보는 편이라 내 눈동자의 색을 안다. 검은색이 아닌 marron, 짙은 밤색에 가깝다. 어느 날은 내 눈동자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짐짓 그 강렬함이란 내 안의 뿌리깊은 고독과 내면의 빛이 드러나는 거 아닌가 싶을만큼 강렬함이다. 그래서 내면의 기운이, 내면의 상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이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눈은 눈을 볼 수 없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하다. 어떨 땐 내 눈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나의 짙은 고독을, 깊은 고독을, 심연을 훅 알아차릴 것만 같은, 들킬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의 고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다시 사랑하게 되면 누군가일 그 상대가 나의 내면의 고독을, 심연을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있기를 하는 바람이 있다.


사람의 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안광에 흠뻑 매료된다. 내면의 빛이 솟아날수록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 자연스레 마치 레드카펫이 펼쳐지듯 그 방향성이 뚜렷해지는 감이 있다. 이토록 짙은 고독이었을까?싶을 만큼 지난 10년은 나에겐 무척이나 혹독한 겨울의 고독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모든 것은 자연의 완벽한 설계 혹은 계획이 아니었을지 확신하게 된다.


내가 보는 세상이 다인가? 실재하는 것이 있는가? 자성이 있는가?...싶은 것들도 있고 보다 직관적인 삶을 살게 된다.


오늘 아침, 나의 눈을 바라본 건 잘한 일이었다. 짙은 밤색 눈동자,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강렬함. 내 눈동자 속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내면의 빛, 고독이 나는 외려 반갑고 지적여보였다. 나의 눈동자의 빛만큼은 평범하기보단 남다르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 남다름이란 다름아닌 자기 만의 분위기, 아우라, 빛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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