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모네의 그림을 발견했다. 어제 오늘의 날씨와도 비슷한 것 같고 꽤 오래 전 찍은 이 사진을 글 배경으로 해야지 하고선 저장했다. 모네의 그림이었고 오흐세 미술관이었던 것 같다. 점점 많은 기억들이 희미해져 간다. "모네의 그림 앞에서 당시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던 때였는데. 그때의 나는 가고 없네."
글 한편 쓰고 자야지.싶어 노트북을 들고 침대에 올랐다. 재즈를 틀어놓고 나는 또 다시 내 안으로, 나의 사유와 사색속으로 어느 순간 들어가겠지. 실은 조금 전 전화통화를 하다 눈물 글썽이기를 반복해서인지 굉장히 속이 후련해졌달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굉장히 차분하고 침착한 상태다. "나는 왜 이토록 잘 우는가?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거니?" 스스로에게 질문할 만큼 눈물이 있는 편이다.
내게 눈물은 안 좋은게 아닌 외려 날 위로하고 날 안아주고 다독이는 다시 정신이 번쩍 뜨이게 하는 좋은 것이 된다. 내 눈물을 보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고, 혼자일 때다. 유일한 타인은 엄마다. 전화너머 나의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과 머금는 것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고 있음이 티가 나면 엄마는 뭐라고 하신다. "딸~ 눈물이 이렇게 많아서 어떻게 사니?" 행여 엄마는 나의 눈물이 약함일까 걱정하신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눈물이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위로이자 나약하지 않음에 대한 방증 같기도 순전히 날 다시금 깨어있게 하는, 알아차리게 하는 강력한 기제가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물론 어느 날은 서러움 같은 것도 있다. 이 또한 그럴 수 있고 이때의 눈물은 그 자체로 정화가 된다. 그러니 내 흐르는 눈물을 이토록 사랑할 수밖에.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나는 나의 아이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부모가 되어야할까?를 생각하곤 한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법이 그 어떤 지식보다 중요한 삶의 지혜임을 잘 알게 되어서다. 마흔이 되어서야 외려 어린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삶의 지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스무살의 내가 이런 것들을 조금 더 일찍 알 수 있었더라면 좀 덜 힘들지 않았을까?싶은 아쉬움, 안타까움도 있다.
마흔이 되어서일까. 대수롭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걸린다. 꼭 나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부쩍 건강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먹는 양도 줄었고 조금 먹어야 속이 편안하다. 치아건강은 자부했는데 부쩍 신경이 쓰이고 귀 건강도, 눈의 노화도 이제 신경쓰이는 나이가 됐다. 내 안의 장기들도 노화되는 거지.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
엄마는 전화너머, "엄마도 언제 이렇게 이 나이가 됐는지 모르겠어."하셨다. 인생이란 게, 삶이란 게, 이토록 찰나라는 걸 우리 자신은 한참 뒤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는 것 같다. 마치 본래부터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걸 알기 전까진 인생의 모든 고와 희로애락을 경험하라고. 그러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까.싶을 만큼 자기 생의 고난은 우리의 숙명인 듯하다.
잠깐의 눈물바람과 글쓰기를 통해 나는 이 밤 또 다시 나를 치유한다. 내 안의 것들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넣을 공간을 만든다. 비움이 채움이고 채움이 비움이듯 나는 늘 이런 방식으로 나만의 치유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나만 아는 나만의 작은 리츄얼이다.
살면서 나 자신을 일으켜줄 자기 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 나에겐 그것이 책이었고 글쓰기였다. 그리고 눈물을 참는 것이 아니라 쏟아내는 과정이 내겐 더할나위 없는 회복과 극복의 과정이었다.
삶은 처절한 자기 극복의 과정이구나.
삶은 처절한 자기 고독의 길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타는 지식보다 타는 지혜가 내겐 더 고귀한 것이다.
나의 나이들어감을 수용하면서 다시금 자기가 가야할 곳으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지금 나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겠지.싶다.
어느 날은 눈물이 이토록 많아서야.하곤 나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 안에 쌓인, 그리고 풀어야 할, 그리고 회복해야 할, 그리고 치유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서겠지. 그런 거겠지. 그리고 눈물이 많을 수도 있지. 눈물이 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내 안에, 그동안 날 힘들게 했던, 날 아프게 했던 그 잔재들이 눈물로 마치 용트름 하듯 쏟아져 나와 날 살게 하기 위해 이러는 것일테니까. 지금처럼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어라."
한바탕 혹은 아주 잠깐새 흐르는 눈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관찰하고 그러다 내 손등으로 살포시 때론 비장하게 내 눈물을 닦고 일어나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 그리고 내 삶이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보인다. 눈물은 한편으론 내가 나아가야할 길을 비춰주는 등불 같을 때도 있다.
여전히 삶은 모르겠다. 모르겠는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 또한 삶의 길이란 걸 알기에 나는 그렇게 또 다시 세상에 나아갈 에너지를 비축한다. 아무 것도 아니어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