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배경화면을 도라에몽이 카키색 야상재킷과 털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으로 바꿨다. 노트북에도 도라에몽 스티커 하나만 붙여놨을 만큼 동심으로 돌아간듯 무척이나 귀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도라에몽 애청자로서 순간순간 보게 되는 도라에몽에 살짝 미소 짓게 된다. 나이는 마흔이나 여전히 신도라에몽을 즐겨본다. 주말 오후 볼륨을 낮추고 도라에몽을 틀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문득 글쓰기를 생각하다, 나의 글감을 보면 실은 모두 즉흥적이다. 나 자신, 내 물건, 건물 밖 풍경, 자연, 바람, 눈, 그 모든 것이 내겐 글의 소재가 된다. 그러니 심심할리가. 그러니 글쓰기 소재가 고갈될리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머리카락을 야물게 모아 질끈 묶었다. 어느 날은 머리카락을 한데 야물게 모아 질끈 묶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차려지고 호랑이 힘이여 솟아나라.처럼 일시적이나마 비장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우연히 시켜본 테라로사 뱅쇼가 참 맛있었다. 오랜만에 직접 뱅쇼를 만들어 마실까싶어 뱅쇼 재료를 주문했다. 무엇보다 시나몬향을 좋아하는 내게 스틱 하나를 통째로 넣어준 그곳의 뱅쇼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기분좋게 하는 것들을 차분하게 척척 해나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령 버터를 소분하거나 식재료를 소분해 알뜰하게 야무지게 착착 정리해 냉장고에 넣어둘 때 느끼는 살뜰함이 있다.
삶에 있어, 일상에 있어, 특히나 살림살이에 있어 거창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한 건 살아보니 사람 사는데 그리 많은 것이, 많은 물건이 필요하진 않다는 걸 경험적으로 느끼게 되어서도 있다. 막상 가만히 들여다보면, 관찰해보면 매일 쓰는 물건만 쓰게 되는 걸 알 수 있다. 컵도 실은 쓰는 것만 쓰게 되고 하나면 충분하다. 그릇도 마찬가지다. 여러면에서 실은 하나면 족한 것이다. 무엇을 채우는 삶보다 무엇을 비우는 삶이 편해지고 익숙해지는데 그 비움이, 그 텅빔이 내겐 꼭 알맞다.
갱년기라는 단어가 이젠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는데, 곧 내게 다가올 먼 미래가 아닌 코 앞의 것이 되어버렸다. 무튼 더 자주 가슴이 따뜻해지고 울컥해진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케케묵은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리기도 삶의 고삐를 바짝 다잡기도 한다.
참 우연이라는 게 무언지. 간혹 가다 TV나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류의 영상들을 정말로 우연히 보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든 생각은, 허걱 내 마음을 읽은 건가. 이 알고리즘은 무어람. 마치 꼭 내가 이걸 봤었어야만 하는, 마치 보기로 예정돼 있던 것처럼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오래전부터 EBS다큐 프라임의 애청자인 나는, 우연히 진정성 시대 편을 보게 됐고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몇 년전 방영됐던 것으로 히말라야 오지 라다크에서의 삶을 택한 삼십 대 미국인 부부 제이슨과 케이틀린 부부의 이야기였다.
2016년 처음 여행자로 그곳을 방문했던 케이틀린은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곳에 다시 가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런 케이틀린을 혼자 가게 놔둘 수 없어 그녀를 따라온 제이슨. 케이틀린이 말하길, 그땐 왜 가야만 했는지 몰랐는데 다시 가야만 하겠다는 것만은 분명 했다고 한다. 그녀를 따라온 제이슨은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하는 장면에서조차 나는 깨닫는 바가 많았다.
핫 초콜릿 한 잔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며 그렇기에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더 깊이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 공감했다. 케이틀린은 "미국에서의 삶은 늘 엄청난 풍족함과 너무 많은 게 있다는 거죠. 항상 너무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저 계속 가지면서도 그것에 대해 무감각해질 정도에요."라고 말했다.
현지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웃고 울고야 말았는데,
인생이란 무엇일까.
한 번 뿐인 삶, 나는 이들처럼 내 마음이 원하는, 가슴 설레는 일을 시도해 본 적이 있던가. 자문하게 되었다. 인간다운 삶,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픈 바람이 있다.
이런 내게 하루하루는 수행이고 수양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거창하거나 고상한 것은 아니며 그저 늘 깨어있으려 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인데, 스스로의 감정을 잘 다스릴 줄도 알게 되었으며 그 누구보다도 내 자신을 가장 사랑할 줄 알게 됐다.
그러자 어느 순간 삶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고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그 방향과 방법이 조금씩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생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없으면 또 어떤가. 내가 세운 목표가 있고 또 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가 그저 대견할 뿐이며 때가 되면 난 내 삶에서 아름다운 비상을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비상이란, 사회적 성공이 아닌 나다움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수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며 내면과 심성을 인간답게 아름답게 꽉꽉 채워나가야겠다.
결코 길지 않은 단 한 번뿐인 삶, 내 삶의 기준 역시 타인이 될 수 없으며 분명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나에게 있음을 나는 여실히 절실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남과의 비교로 내 스스로를 우울하게 하거나 내 안을 가두게 놔두지 않는다. 내가 만족하면 되었고 내가 행복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굳게 자리잡았다.
비슷비슷한 삶 혹은 남들을 따라하는 삶 보다는 내 마음이 원하는 삶, 때로는 이를 위해 과감히 도전하는 삶, 늘 사유하고 생각하고 가치와 본질이 존재하는 삶 속에 내 안의 나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삶은 아무 것도 아닐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 그런 나를 놓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고 밀어주고 사랑하는 힘, 사랑이면 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