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위해 온 것

by Aarushi

주말은 완전한 집순이가 되는데, 기분 전환은 해야겠는데 멀리 나가고 싶지 않을 때 집 앞 스타벅스나 카페는 내게 아주 최적의 기분전환 장소가 된다. 그 특유의 아늑한 조명과 흘러나오는 재즈나 캐롤을 듣는 것이 좋다. 글쓰기에도 대화하기에도 편안하다.


일요일 저녁 다소 한산한 카페 안에서 글쓰는 일이란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나와의 내면소통시간이다.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그 몰입은 내겐 더할나위 없는 치유가 된다. 고전소설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것도 실은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존재에 대한, 실존에 대한 물음과 자기 자신을 진실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가장 즐겁다. 혼자만의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그 고독이 내겐 나아갈,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 요즘 부쩍 눈물이 자주 난다. 어떤 슬픔이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사랑, 감사, 연민, 타인에 대한 사랑, 감사, 연민, 그것은 동식물 모든 자연에 대한 사랑과 감사, 연민이다. 나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운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적인지. 행운인지. 절로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감이 솟는다.


지난 시절, 20-30대 초반까지만하더라도 인생을 왜 그토록 심각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임으로 이제 없으므로 나는 지금을 살면 된다. 마흔이 되고 달라진 것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을 갖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지난 시절 우울하고 방황했던 건 지난 것을 놓지 못하고 과거에 살았기 때문이란 걸 너무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하다. 지금을 살지 않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내겐 서른 초반에 시작된 지리한 고독이 우연처럼 다가왔으나 필연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내가 겪어야했을 그런 것이었으리라.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 자신에, 내 안에 집중하면 할수록 분명해지는 게 있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는 것. 끌리셰하지만 진실로 그러하다는 직관적인 앎이 인다. 당시엔 참 힘들었던 것들도 지금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시절을 추억하고 때론 아련하고 아름다워보이는 것도 어쩌면 내 안에서 그러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스토리구나.하는 걸 알게 된다. 내 삶도 가족도 인간관계도 실은 내가 만들어낸 스토리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인생을 왜 그리 심각하게 생각했을까. 좀 더 유연하게 의연하게 초연하게 그렇게 나 자신을, 내 삶을, 세상을, 사람을 사랑하고 바라봤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제 늦은 밤, 우연히 사진 앨범 스크롤을 올리다 엄마 사진이 나왔다. 엄마와 카페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예순이 넘은 엄마의 눈과 얼굴에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와 가장 많이 닮기도 했고 엄마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보이고 내 얼굴에서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그 교차의 순간이 있었다. 이제는 나이들고 야윈 많이 작아진 엄마의 풍채에서, 엄마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지나온 어린시절의 소녀가 보였다. 그동안의 엄마의 삶의 무게 그런 것들이 내게 파도처럼 확 밀려오면서 눈물이 왈칵 났다. 엄마의 얼굴에서 나는 슬픔을 보았다. 엄마가 언제 이렇게 갑자기 나이가 들었나?싶고 나도 마흔인데 당연한 것이겠지.수용하게 된다. 나는 요즘 부쩍 자기 전에도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지난 겨울, 엄마집에 갔을 때 나는 방 안에서 새벽 4시가 넘도록 자지 않고 누운 채로 배게에 눈물이 흠뻑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눈물을 삼켰다. 혹여 훌쩍이는 소리가 저 방 너머 엄마에게 들릴까 숨죽이며 나는 지나온 시절, 엄마가 내게 보여준 사랑, 엄마에 대한 감사함, 미안함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식을 낳아봐야 엄마의 마음을 알까?싶지만 그건 또 아닐말이지 싶다. 결코 좋은딸이 아니었음에 대한 일종의 자기 고백, 자기 반성이 인다. 마흔이 되어서야 아는 것이었을까? 엄마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이 부쩍 아주 자주 내게 밀려온다. 지금 엄마가 딸에게 진정 바라는 것은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즐겁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부모에겐 그것이 효도라는 걸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혼자 지내는 딸이 엄마는 외롭지 않았으면, 즐겁고 재미있게 살았으면 한다는 것도. 엄마댁에 가면 늘 하는 것이 있다. 엄마와 사우나를 가는 일, 재래시장에 가서 장보는 일인데, 그 시간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다.


내가 마흔이 되어보니, 마흔이던 엄마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곤 한다. 내가 중학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흔 초반의 엄마 아빠도 그때 참 젊었던 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이기 이전에 내 엄마도 한 소녀였고 한 여자였고 내 아빠도 한 청년이었고 한 남자였고 이젠 부모가 내 엄마 아빠보다는 한 인간으로, 그렇게 다가오는 나이가 됐다. 지나온 내 부모의 삶이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이해되고 연민하고 사랑하게 된다. 내 부모도 얼마나 힘들게 자기 생을 살아오고 지켜내며 살아온 것일까? 한 인간으로서 존경의 마음이 든다.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건, 진정으로 날 위해 울고 기뻐하고 응원해줄 사람은 엄마, 아빠 부모뿐이란 생각을 한다. 형제자매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고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잘 지내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 기대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는 생각이 있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 외려 관계에 유리하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내 부모에게 잘하고 친절하고 사랑해야지.한다.


마흔쯤 되니, 가족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고 동시에 마치 삶의 기술을 터득한 듯 초연해지고 개의치 않아지는 것도 있다. 부모가 내게 보여줬듯 이젠 내가 나의 부모에게 온전한 사랑과 친절을 나눠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이 전부구나.

우린 사랑하기 위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게 사랑은, 상대가 편안하기를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떨어져 살아도 내 부모가 늘 편안하기를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운전하다가도 엄마 생각이 나면, 절로 "엄마 감사해요,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한다.

절로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고나면 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나이 들어갈수록 내가 해야할 것은, 나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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