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용한 노트북이 마침내 고장이 났다. 이곳저곳 크랙이 가고 충전단자도 고장이었던터라 조만간 바꾸게 되겠구나 했던 찰나, 곧장 찜해 두었던 노트북을 주문했다. 주로 문서작업이나 글쓰기나 검색 용도라 성능보다는 실용성과 가성비를 택했다. 오래된 것을 새것으로 바꾸니 키보드감이며 여러모로 덩달아 새 기분, 새 마음이 든다.
어제 늦은밤, 거울을 보다 정수리 부분에서 머리 카락 한가닥, 흰머리가 보여 뽑았다. 그 한가닥을 고르는 사이 이거 염색한 머리색이 바랜건가 진짜 흰머리인건가.하면서 조심스레 잡아 들었다. 뽑고 보니 흰머리였다. 새치 한 번 없었고 작년 이었던가 생전 처음으로 정수리 부분에서 흰머리 한가닥을 뽑았는데 올해 두번째다. 서른 아홉 마흔이 되니 새삼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확실히 나의 몸이 노화되고 있구나를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놀랄 것은 없었고 담담하게 나도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 진짜 이제 중년이 되었네.싶은 약간의 아쉬움과 받아들임이었다. 생과 사는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거늘, 바람 앞에 등불이거늘, 올해 마흔이 되어보니 나는 생보다는 확실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론 나의 생이 이른, 여든 언저리지에서 저 너머로 건너가게 되지 않을까.하는생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생각보다 이 생에서 내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구나.를 명료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작년보다 지금이 더 용기가 나고 특히나 아쉬움 없고 싶은 강인한 용기가 샘솟는다. 지금의 이 동면을 잘 보내서 봄 여름 따뜻한 계절 밝은 에너지로 다시금 내 생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행동하기. 끌리셰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경험하지 않았나싶은 자기 안의 독백과 반성과 성찰이 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직관을 따르라. 너의 직감을 믿어라. 내 안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이사도 계획해보고 나의 마흔을 무엇으로 그려나가야할지 그래서 이 겨울이, 이 동면이 내겐 더할나위 없는 에너지 비축의 시간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세상이 있음을 늘 상기한다.
지난주 엄마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선물과 함께.
"온 세상의 기운을 너에게 줄게."
지난 주말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확인한 메시지에서 정말이지 온 세상의 기운이 나에게 올 것만 같았다.어릴적부터 엄마는 내게 늘 시인이었다. 그녀가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늘 이런 방식으로 마치 시처럼 보내왔다.
지난해 겨울 산방산에서 엄마로부터 받은 메시지, "저 푸른 하늘처럼 늘 네 마음도 맑았음 좋겠어."처럼.
"온 세상의 기운을 너에게 줄게."라는 메시지는 내게 날개가 되었다. 엄마는 이런 방식으로 딸에게 사랑을 용기를 응원을 보내주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는 딸이 고독하다는 걸, 고독하기를 택한다는 걸 아시는게 분명하다.
고독함으로써 나는 외롭지 않았다.
나의 마흔이 기대되는 이유도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처럼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흔들려 봤기 때문에 쓰러져 보았기 때문에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인생은 그래서 흥미진진한 것이구나.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있는 것인가?라는 방식으로 늘 질문하기도, 나 자신과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사색과 사유, 통찰이란 이젠 내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의 현재를, 나의 지금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성숙함도 생겨간다. 이 나이대의 그 성숙이 나는 어쩜 이토록 섹시하게 느껴지는지. 섹시함이란 외모나 꾸밈이 아니라 역시나 지적임과 내면의 확장이 외면으로 드러남으로써 나타나는 기. 기운이라는 걸 더욱 알아차리게 된다. 내면 그리고 지성은 섹시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