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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8. 2024

파리 할머니는 힐을 신는다

파리에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파리 할머니들의 패션이었다. 개인적으로 난 패션에 관한 한 파리 젊은이들보다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파리의 할머니들은 힐을 신는다. 파리의 할아버지들은 컨버스, 뉴발란스, 밴스... 등 운동화를 멋스럽게 소화한다.


개인적으로 난, 프랑스의 진정한 멋쟁이는 찐은, 프랑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고 생각한다. 파리 사는 동안에도 젊은이들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스타일을 보느라 바빴고 자신만의 색깔이란 무엇인지. 스타일은 무엇인지. 나를 어떻게 옷으로 표현하고 소화하는지. 등을 파리 젊은이들이 아니라 이들에게서 배웠다.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 가 그들에겐 있다. 내가 파리의 할머니를,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유다.


메트로에서 한 할머니와 마주하고 앉게 됐다. 이미 실루엣 만으로도 우아함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큰 진주 귀걸이를 찼으나 화려하지 않아 보였고 머리는 웨이브가 한 껏 들어갔으며 머리색은 흰색과 회색 그 사이였으며, 흰 셔츠에 재킷, 하의는 H라인 스커트를 입었다. 찰랑이는 팔찌에, 레이어드 목걸이에, 손가락엔 빈티지한 왕방울만 한 반지 서너 개가 껴있었다. 동시에 내 눈은 할머니의 신발로 향하게 됐는데, 아주 멋스러운 수제화 느낌의 가죽 힐이었다.


무엇보다 노년의 나이에 힐을 신음에도 과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매력적이고 우아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어쩌면 나이와 힐에 대한 내 무지한 편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백은 세월이 묻어나 보이는 카멜 색의 가죽 가방이었고 안경은 머리 위에 얹은 채, 책을 보고 계셨다. 아무리 보아도 할머니의 차림새에선 새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왜 이리 멋지시지? 저렇게 많은 액세서리를 했음에도 어쩜 하나도 화려해 보이지가 않지? 힐은 또 어쩜 저렇게 섹시하게 소화하시지? 무엇 때문이지? 할머니가 내린 후에도 난 한참을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예순은 훌쩍 넘으셨을 것 같은 나이에 우아하다. 아름답다. 섹시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있는 이 할머니의 저력은 무엇이란 말이지.라는 생각까지. 나이 들어도 섹시하고 싶다. 는 나의 소망과 정확히 일치한 사람을 본 나는 흥분했고 그 할머니의 모습을 내 눈 속에 빠지지 않고 포착해 저장했음은 물론이다.


화려함을 내면의 화려하지 않음으로 기가 막히게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 그 밸런스를 엘레강스와 섹시함으로 뿜어 나오게 하는 것, 이 내공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까지. 그 할머니의 내공이란 분명 그녀가 살아온 삶이었고 태도였을 것이다. 그런 어른들을 볼 때면 나는 아주 곧잘 흥분하고 만다.


 번은 버스를 타다  노부부와 친구로 보이는 1명과 마주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도 그들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는데, 보는  안보는 듯해가며  시선은 할아버지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단언컨대  그토록 귀티 나면서도 지적이면서도 멋스러운 할아버지를 어디에서도    없었다.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배우들보다도 신사다운 옷차림과 분위기였으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깔맞춤 하나하나 의도되지 않은 것은 없어 보였다. 어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활짝 미소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할아버지 역시 멋스럽고 우아했고 클래시 했으며 섹시했다.


제스처 하나하나마저 할아버지의 아우라와 어우러졌고 빛이 났다는 말이 정확하다. 그런 분들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젊은 시절 역시 분명 지금과 같이 멋졌을 것이고 상냥했을 것이고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을 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데 결코 외면이 아름다울 리 없다는 내 생각은 확고하다. 아닌 경우라 한들, 그 기운이 전혀 다르다는 설명까지.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분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데, 난 그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세상에는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내면과 외면의 밸런스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자 그 자체라는 본질을 나는 그렇게 또 그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내가 본 파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스타일에 있어서도 역시 과감했다. 나이라는 숫자는 온데간데없고 세상 예쁘고 잘생기고 멋지고 힙하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클래시 하며 고상할 수 있는 그 여유와 멋. 이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아무에게서나 나올 수 없는 단어가 섹시하다이듯, 나는 파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섹시함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들보다 한창은 젊은 나인데, 손녀뻘은 되는 나일 진대, 더 분발해야겠다는 긴장감마저 들었으니 그들이 내게 미친 영향은 실로 컸다. 어떻게 한참이나 젊은 나보다도 섹시하고 아름답고 우아하지? 그러면 눈이 마주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게 보내는 미소에서  "답은 네 안에 있어. 답은 네가 잘 찾아보렴!"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든다면 난 꼭 내가 본 파리 할머니들의 모습이고 싶다. 어느 것 하나 섹시하지 않은 게 없는 아우라 있는 할머니라... 아직 늦지 않은 셈인데. 우선은 당당할 것, 섹시할 것, 나다울 것, 자유로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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