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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8. 2024

즐거운 나의 집

오전에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에선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웬만해선 정해진 시간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은 물론 책을 하루에 20-30분 정도는 꼭 읽는 편이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때문에, 또 손수 요리를 해먹기 때문에 늦은밤이나 아침에 갖은 채소와 야채를 프렙해 놓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일과다. 


노트북을 들고 소파에 기대 앉았다. 가죽소파보다는 패브릭 소파를 좋아하는 취향에다, 유럽이나 미국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나는, 패브릭이라면, 빈티지스러움이라면 뭐든 환장하는 성미를 가졌다. 


이 시간에 노트북을 들었다는 건, 내겐 글 1편을 쓰겠다는 징후다. 글쓰기 역시 내겐 의무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일 때, 글 한 편이 쓰고 싶을 때, 내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생각을 재정비하고 싶을 때, 내 의지를 재차 다지고 싶을 때... 등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쓰고 싶을 때.쓴다는 점이다. 하루에도 두세번 일수도 있는 이유다. 


음악까지 틀어놓은 상태라 무드무드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다 내 공간을, 내 집을 자연스레 빙 둘러보게 됐다. 단출하기 그지 없지만 내 취향대로 살림살이를 갖춰놓은 이 공간이 내겐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엄청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나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그러나 내 사랑을 고루 나눠주는 정도의. 내가 날 대하듯, 나는 내 공간을 대해준다. 어떨땐 심플한 내 집을 보며 나는 이토록 무심한 되어가고 있구나.싶을 때도 더러 있다. 


몇달 전 이사한 집은 작다. 아담하다. 지난 집 역시 작았지만 지금 집보다는 컸고 모던했고 내가 좋아하는 주황등이 사방 곳곳에 있어 나름 도시적이고 세련됐고 도시적인 공간이었다. 지금 집은 저층에다 빈티지스럽고 투박하고 작고 내 마음처럼 무심한 느낌의 집이다. 그러나 굉장히 코지한 느낌인데, 일부러 이런 집을 찾아 오게 됐다. 집도 내 마음따라 가는 걸까. 지금 집은 내 마음과 꼭 닮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혹은 화려하거나 휘황찬란한 집은 지금의 내게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나 그러나 내 안에서는 굉장히 비범한 사람인데다, 소박한 걸 좋아하고, 오래된 거, 옛 것에 관심이 많고 단출하고 심플한 삶이 내겐 가장 적확하면서도 날 편하게 한다는 걸 알아버린 차제에 나다운 집에서 살아야겠다고.결심한 이유에서다. 그 흔한 밥통과 전자레인지도 없어서 자잘한 가전제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러가지면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괜찮다. 나름 낭만있다.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1인 가구인데다 나 혼자 사는 집인데,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상, 한 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생각보다 내 삶의 반경이, 동선이 짧다는 걸 알게 됐다. 동선이 충분히 짧아도 작은 공간에서조차 난 모든 걸 부족하지 않게 뚝딱뚝딱 해내고 있으니, 내겐 큰 집은 필요치 않다. 나 혼자 살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며 나라는 사람은 내 취향의 물건들로만 배치해도 얼마든지 코지하게, 편안하게, 나다운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판단도 있다. 


살아보니, 집.이 내 정신건강에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 공간에 대한 의미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내 집은 그 자체만으로 날 포근하게 만드는, 내 정신을 포근히 감싸주는 영역으로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공간. 내 집.이 내겐 이토록 남다를 수밖에. 


내가 사는 집 역시 나다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가령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1명인데, 나보다 집이 확연하게 커버리면 그 집은 내집이 아니라 공간이 날 소유한다는 생각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번에 선택한 이 집은 철저히 나스럽고 날 꼭 닮았다. 


요즘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나는 곧잘 이렇게 대답하곤 하는데, "난 아직까지는 자유롭게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살아보고 싶어.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동네에 살아보는 것, 전혀 다른 공간에 돌아가며 살아보는 것. 이 얼마나 낭만적이야."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집.에  대한 정의는 외국의 것과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여전히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의치 않고 나다운 영역인 집.이라는 공간을 기어코 찾아내, 즐겁고 또 즐겁고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크다. 


내 삶의 가치관과 철학과 태도가 뚜렷해지면 뚜렷해질수록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명료해지면 명료해질 수록 집이라든지, 소유라든지, 여러가지 면에서 나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다. 


집이란, 내 관리의 영역 속에 있을 정도의 크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고 나에게 있어 내 집이란, 몇 제곱미터의 객관화된 수치 혹은 평수가 아니라 내 마음의 크기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집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은 물론 충분히 만족스런 즐거움과 낭만이 가득한 집.이라 할 수 있다. 


내 스스로의 판단과 취향에 의해 선택한 집이라야, 그래야지만이 더 잘 살아진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는 즐거운 나의 집.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나는 나.라는 우주 안에서 내 집.이라는 우주 안에서 충분히 유영하고 완전하게 자유롭고 혼자서도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오늘 어쩐 일에서인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켜자마자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문장이 번뜩였고 나는 어김없이 내 의식의 흐름대로 늘 그렇듯 자연스레 무심하게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하고야 말았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 역시 내겐 필연적이랄까. 이토록 무심하게 글 한 편을 써내려가는 것 역시 꼭 나답다는 생각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내 일상을 내 삶을 지켜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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