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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8. 2024

날 닮은 살림살이

비우면 비울수록 난 왜 행복할까. 새로운 물건을 사고 그 물건들로 내 공간들을 채우는 일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비워내고 또 비워내고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일이 내 마음을 정화시킨다.


교보에서 알랭드보통의 책 사유식탁을 주문한 후 혹시라도 지난 한 달 새 혹여 불필요한 것들이 생기진 않았는지 더 비울건 없었는지 내 살림살이, 세간살이를 촘촘하게 들여다봤다. 문득 우리가 흔히 세간살이 하는 세간.에 대한 정확한 뜻풀이가 궁금했고 곧장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세간. 1. 세상 일반 2.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 모여 있는 우주 공간. 두번째 뜻풀이가 내 마음에 쏙 드는바 내 세간살이와 2번의 뜻풀이를 기가막히게 섞어 내 세간살이란, 영원하지 않은 것(물건)이 서로 모여 있는 우주공간(내 집, 내 공간) 고로, 내 공간에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단출한 해석에 이르렀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세간살이가 또래에 비하면(친구네 집을 가봐도 나만큼 살림살이를 두고 살지 않은 집을 보지 못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1인 가구의 장점을 살려 취향껏 나다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말도 맞다. 결혼하게 되면 분명 또 나름 달라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1인 가구인 지금은 충분히 나답게 나다운 물건들로 알뜰하게 살뜰하게 단출하게 심플하게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냉장고의 전원을 켜지 않고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일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냉장고 전원을 꺼놓고 산지 꽤 됐다. 냉장고는 있으나 사실 냉장고의 쓸모나 효용이 제로, 냉장고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침 일찍 새벽 재래시장이나 집앞 식자재 마트에 가서 그때그때 데일리로 장을 봐서(매일 아침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음식을 저장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운 겨울엔 베란다가 자연 냉장고가 된다. 요거트도 큰 유리병에 담아 보관해 베란다 실온에 보관하고 있고 김치통도 아주 차갑게 신선하게 보관된다. 그러니 냉장고에 코드를, 전원을 켜는 일이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밥통없이 산지도 꽤 됐다. 밥통 역시 지금 내게 전혀 필요없는 물건 중 하나다. 밥이 당길땐 즉석 발아현미밥을 먹으면 그만이고 주물냄비에 솥밥을 해먹으면 그만이다. 밥통이 없어서 아쉬운 게 전혀 없다. 정말 많이 든 생각은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이, 살림살이들이 정말 꼭 필요한 것일까. 내 상황에 맞게 내 생활에 맞게 내 삶의 태도에 맞게, 맞춰 사는 게 맞지 않을까. 뭐든 정답이란 없다는 생각이다.


있어야 한다.가 아니라 없어도 된다.는 말이 좀 더 나답다는 생각이다. TV도 안 본지, 없앤지가 꽤 되었으니 정말 남들 다 있는 살림살이는 어찌보면 필수 살림템이라고 하는 것들이 내겐 없다. TV대신 유익한 프로그램들은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TV를 보는 일보다 책을 읽는 일이 더 재밌고 밥통에 밥을 하는 일보다 주물냄비에 그때그때 새밥을 짓는 일이, 냉장고 냉각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보다 베란다의 냉기와 한기의 천연 냉장고가 딱 나답다. 나스럽다.


사는데 생활하는데 하나 불편하지 않으니 이렇게 산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살다보니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감사함, 기쁨이 너무 많아졌고 수시로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 세간살이 하나에 내 마음이 이리도 행복할까. 적게 살아보니, 남은 물건들에 대한 애정은 물론 고마움이 밀려올 때가 많다. 어떨땐 물건에 말을 걸기도 한다.


그릇도 접시도 지금은 내 마음에 쏙 드는 몇가지들만 남겨두었는데, 이렇게 비우고 비운 상태여야만 우연히라도 내 마음에 쏙드는 그릇을 만났을 때 고민없이 하나 정도는 설레는 마음으로 사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언제 일지 모르는 그러나 그 순간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이정도의 여유 하나 남겨두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도자기 컵 두개.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딱 믹스커피 한 잔 타기 알맞다)를 데일리로 쓰고 있는데 컵이라곤 이 두개면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그릇도 내 손이 유독 가는 것들이 있고 또 한 번 쓰면 계속 그것만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실제 내 생활에서 자주 쓰는 그릇들만 남겨두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내 식탁과 내 부엌살림이 굉장히 산뜻해진다.


그러니 어찌 내가 비우고 비우지 않을 수 있겠는지...  이것 역시 개인적인 취향일 것이다. 무엇이든 내게 맞으면 그것이 나에겐 최선의 방법 혹은 방식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남들은 이렇게 사는데, 적어도 이런이런 것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등의 생각이 내게 들리 만무하다.


정답은 없지만 이것이 요즘 내가 사는 방식이자 이유다. 요즘 수시로 생각한다. 내 일상, 내 삶, 내 목숨...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절대 당연한 것은 없다고. 당연하지 않다고. 그러니 이 얼마나 그 모든 것이 감사한 것인지. "초아야, 우울할 새가 어디 있니. 유한한 삶인데 네 삶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넌 어떤 삶을 살고싶니. 어떤 걸 해야할까."등등 생각보다 아주 자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나든다. 이 생각은 날 부정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원천이자 확실한 동기부여가 돼준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내 물건들을 쭉 한 번 둘러보니 참 단출한 살림살이에도, 이 와중에도 비울게 하나씩 하나씩 나온다. 비우고 나니 반대로 내 마음은 채워진다. 비우면 비울수록 행복해지는 마법. 그 마법을 매일같이 경험하면 할수록 내 삶은 더 선명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오늘도  이렇게 나는 내 삶의 고삐를 바짝 채운다. 내 삶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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