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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8. 2024

자유로울 것

냉장고 코드를 간만에 다시 꽂았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기똥차게 들린다. 그러면서 "그래, 너도 돌아갈땐 돌아가줘야지... 너의 쓸모가 있을 텐데..."싶었다. 켠 차제에 토마토 소스라든지, 프렙해 놓은 통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올겨울 꺼놓고 살았던 냉장고의 전원을 켰고, 돌아오는 봄이면 매일 켜놓아야하니 그땐 너의 쓸모가 완전해 질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잘 입지 않은 옷들도 오래 전 정리했고 지금은 진짜 잘 입는 옷들만 남겨두었기에 사실 내겐 큰 옷장이 필요하지 않다. 옷을 걸어두기 보다는 잘 개어 색깔별로 포개어 놓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에 내 정리는 늘 그런식이 된다. 고로 지금 내 옷장이라하면 미국 이케아에서 온 레트로, 빈티지한 느낌의 레드 옷장 하나가 전부다. 내겐 이마저도 부족하지 않은데, 내 옷을 다 넣어도 맨  아래칸 공간이 남는다.


어제는 소파자리를 바꿔보겠다곤 옷장까지 옮기다 어찌된 영문인지 옷장 뒤 한쪽 바닥면이 너덜너덜해지게 됐다. 순간 으악.했지만 어쩔 수 없지 뭐.하고 더는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는 식기류와 냄비를 넣어놓는 용도로 쓸까. 주방용품을 넣어놓는 부엌 수납장으로 쓸까했지만, 부엌 살림도 웬만한 건 다 비우고 없는 상태라. 옷장으로 쓰기로 했다.


옷장 맨 위 서랍 두곳엔 속옷, 양말, 슬리브리스등을 넣어놓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고 사계절 옷가지들을 색깔별로 차곡 넣어놓아도 공간이 부족하지 않고 외려 남는다. 색깔별로 구분해 놓기도 했고 가짓수도 없어서 투명 유리 너머 한눈에 내 옷가지들이 보인다. 시원시원해보여서 좋다.


두번째 칸엔 H&M 봄, 여름, 가을 침구류와 배게 커버, 쿠션 커버를 넣어뒀다. 단출한 내 살림살이를 보면 기분좋아진다. 서른 중반 1인 가구의 살림살이가 이리도 없을 수가 있나.싶을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리 되었다. 이런 살림살이가, 이런 내 삶의 태도가 날 더 자유롭게 한다는 걸 깨닫게 된 후부터 이리 되었다는 설명이 맞겠다.


살림살이가 적다보니, 내 살림살이의 크기나 부피보다 과하게 넓은 집이 지금의 내겐 필요하지 않으며, 딱 내 살림살이만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규모의 집에서 나름 살뜰하게 알뜰하게 살고 있다. 짐이 적으니 넓은 공간이 필요없고 작은 공간에 사니 큰 짐이 필요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삶 역시 아직은 혼자 살고 있기에, 1인 가구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1인 가구로 사는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마음껏 이렇게 살아볼 생각이다.


예전부터 미니멀 열풍이 불었어도, 개인적으론 미니멀 혹은 미니멀리스트라는 개념에 도통 관심이 없다. 내 살림살이, 짐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 혹은 취향의 것으로. 내겐 미니멀이나 맥시멀 이런 것들이 분류적으로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미니멀을 의도적으로 취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저 내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맞는, 적확한 취향이 내 일상에 내 삶에 내 살림살이에 내 집에 내 공간에 반영되었다는 설명이 맞다.


없이 사니, 나는 더 큰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나는 충분히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짐이 없으니,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날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물론, 내가 살고 싶은 동네가 생기면 "시기만 맞으면 한 번 살아볼까."하는 기대감 혹은 설렘도 큰 부담없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내 마음의 반영이다. 이런 단출한 삶이 별 거 아닌 것이, 이렇게 살기 시작한 후부터 뭐랄까. 부쩍 용감해지고 대범해졌달까. 하고 싶은,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마음에 일면 일단 시작해보고 보는, 하고 보는 성미가 더 짙어졌다. 마음에 여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와중에 듣고 있는 성시경의 노래는. 왜 이리도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지. 좋은 음성과 좋은 멜로디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며 희망차다는 생각이다. 옷장 위엔 마마스에서 받아온 종이가방을 접어 양말수납장 용도로 올려놓고 쓰고 있고 스타벅스에서 받은 다소 두꺼운 큰 종이가방 역시 수납칸으로 만들어 수건을 담아 놓았다.


지난 시절 생각하면 많은 걸 비워 냈고 또 비워낸 셈이다. 지금도 조금만 무언가가 채워지면 정말 내게 필요한 물건을 샀는지. 불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둘러보기도 신중히 생각하곤 한다. 하나를 채우는 일보다 하나를 비우는 일이 날 더 나답게. 날 더 기분좋게 한다. 비우면 비울수록 나는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소비도 달라졌고 내가 원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 내 취향의 것, 나이가 들어서도 할머니가 돼서도 쓸 수 있을 만한 물건.들로만 사게 된다. 예쁘다고 덥석 소비하지 않게 됐다. 난 확실히 달라졌다.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하다보니, 내 몸과 체력을 가꾸다보니 옷을 살 필요가 더욱이 없어졌으며 몇 천원짜리 몇 만원짜리 옷을 입어도 초라해 보이기는 커녕 외려 멋스러울 수 있으며 그럴 때 오는 짜릿함이랄까. 알뜰함이 있다. 살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진심으로 외면보단 내면을 가꾸는 일이 훨씬 지적이고 클래씨한 것이 딱 내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함이나 세련됨이나 부티 혹은 있어보이는 것보다는 내면의 내공이 켭켭이 쌓인 사람들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지적임, 우아함, 아우라, 분위기, 매력, 자기만의 스타일, 멋짐이 훨씬 아름답게 고상하게 다가온다. 이에 대한 내 지리한 노력과 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마음이 있다. 나에 대한 믿음인데, 내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많은 걸 해낼 수 있다. 세상을 사는데 엄청난 힘이 된다. 나에 대한 존중. 사랑이 내겐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를 존중하다 보니,  나를 사랑하다보니 타인에 대한 사랑과 이해도 커졌다. 존중과 배려, 이해 모든 면에서 참 많이도 너그러워졌다.


화를 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나지 않는다. 날 일이 없다. 내 삶이 유한하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후부터 나는 그저 그 모든게 감사하고 화가 나지 않는다. 설령 타인으로부터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하더라도 치명적이지 않는 한, 개의치 않는다. 내가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덕분일까. 내 안에서 자유로우니, 그런 것들이 내겐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됐다.


요즘의 나는, 존중과 이해의 마음으로 날 대하고 날 수용한다. 타인을 대하는 내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태도는 사랑.에도 적용된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랑에 대한 의미 그리고 태도인데,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반짝반짝이는 사랑보다는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너른 마음으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서로에게 inspiring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랑.을 원하게 됐다. 내가 존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까지.


아침 저녁 스트레칭에 진심인지라, 이 참에 요가 자격증에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도전하고 싶어지는 게 많아지는 건 그마만큼 에너지가 있다는 방증일테다. 벌써 2월 중반이 넘은 걸 보니, 이러다 눈 깜짝할 새 올해가 갈 것 만 같은 마음이 이는데, 이제 더는 해볼까.했던 일들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까짓 거 해보지 뭐."


궁금하다. 어떤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 시험해보고 싶고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단출한 내 살림살이처럼, 단출한 내 공간처럼 나는 앞으로도 나답게 내 삶을 살아낼 것이다. 자유로울 것.은 내 삶의 핵심인데, 자유롭다는 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말과 같다. 나는 언제든 자유로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곳이 어디든 내 마음이 원하는 곳이라면, 내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라면야 언제든지. 훨훨 날아갈 준비가 되었다.


시시로 내게 묻곤 한다. "Do you lit?" 소위 좀 쩐다.는 말. 내 스스로에게 이 물음 하나를 던지는 것 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 소위 내면이 쩌는.사람이 되고 싶은 내 노력과 바람에 부스터가 돼 준다.


자유로울 것. 깨어있을 것. 의식할 것. 나다울 것. 클래씨 할 것. 섹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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