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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8. 2024

나를 사랑하는 법

사부작 사부작 뚝딱 뚝딱 양배추를 썰고 계란 한 개를 풀어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낸 후 빨강 땡땡이가 가장자리에 빙 둘러 그려진 동그란 접시에 담아내 아침상을 차렸다. 현미밥도 담았고 구운김은 필수다. 알맞게 익은 김치도 앙증맞은 접시에 담아냈다. 이 조촐한 밥상에도 난 왜 그리 행복감을 느끼는지... 당최 예전의 내가 보면 놀랄일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감사해하는 것 투성이니 말이다. 


오늘 아침 선곡은 성시경의 첫 겨울이니까. 가사와 멜로디는 또 왜 이리 내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지.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감동스러운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요거트에 요즘 푹빠진 꿀땅콩 한 봉을 털어넣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만족스런 아침 식사 하나에도 난 참 이렇게도 할말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한데 모아둔 빨랫감도 세탁기에 넣어 돌렸고 설거지를 하면서는 부엌 곳곳을 말끔하게 닦아냈다. 그러곤 믹스 커피 한 잔을 애정하는 도자기 컵에 타고선 소파에 앉았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 생각과 마음이 그저 흘러가는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이메일도 확인하고 여느날처럼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하나씩 나의 일들을 해나갔다. 오전 10시쯤 되었을까. 어느정도 해야 할 일도 해놨고 여유가 생기자 문득 커피 선물쿠폰들이 생각났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종종 갑작스런 그러나 매우 감동적인 커피 선물쿠폰을 받을 때가 있는데, 가장 많은 게 스타벅스 케이크와 커피 쿠폰이다. 마침 집 앞에 스타벅스가 있어 지금 갔다와볼까.싶어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사실 내게 스타벅스라함은 혼자일 때는 웬만해서 가지 않는 곳이기도 한데, 같은 아메리카노라도 맥도날드의 천 원짜리 원두커피가 훨씬 맛있고 내 취향과도 나와도 잘 맞다. 그곳에서 잠깐이라도 약속이 있을 때면 나는 커피보다는 그릭 요거트를 주문해 먹는 편이다. 무튼 스타벅스가 코 앞에 있는 건 내겐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쿠폰이 몇 개가 되었는데, 굳이 집을 나선 이유는 쿠폰을 사용해 집에서 쓸만한 유용한 굿즈들이 있을까.싶어서였다. 마침 내 마음에 쏙드는 단출해 보이는 둥근 접시가 있었고 패브릭이라면 환장을 하는 내 취향저격의 화이트와 블랙톤의 테이블 매트 2P가 딱 한 세트만 남아있었다. 고민할 게 없었다. 취향이 확실하다보니 이럴 땐 선택이 참 쉬워진다.  


결제에 앞서 내게 선물한 지인들을 떠올리며 고맙다는.생각도 잊지 않는다. 내가 자주 하는 게 있는데, 어쩌다사는 물건을 포장 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사는 거지만, 내가 내게 주는 선물.이라 명명하며 "이건 네게 주는 선물이야^^." 한다. 이번에도 접시와 테이블 매트를 한데 포장해달라고 부탁했다. 들고 나오면서 역시나. 나는 행복해했고 뿌듯해했고 기뻐했는데, 종이백을 달랑달랑 들고 집으로 오는 기분이란 어떨땐 날아갈듯하다. 


오면서 벌써 이 테이블 매트는 어디에다 둘까. 여기에다 두면 예쁘겠지?하며 내 머릿속은 분주해진다. 포장하면서 나온 종이는 고스란히 내 손에서 재활용돼 내 부엌을 채운다. 어디하나 낭비하는 것이 없으니 이보다 쌈빡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별 거 아닌 것에도 별 것이 되게 하는 것도 결국엔 나.이며 나.에 달렸다는 생각이다. 테이블 매트는 막상 펴보니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는데, 본래의 테이블 매트 용도 대신에 소파 팔 걸이에 각각 하나씩 놓아두기로 했다. 놓아보니 어머나 세상에. "어맛, 내 스타일이야!"했다. 


사물의 용도도 본래의 용도가 아니면 어떠한가. 그 용도도 내 마음대로 내 취향대로 내 방식대로 내 생각대로 내 가치관대로 내 태도대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주변이 새로워 보이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사물도 주인을 닮는 건가.싶을 정도로 지금의 내 물건들은 날 꼭 닮았다. 


지금의 나는, 날 사랑하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한데, 무궁무진한데, 내가 날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렇듯 내가 내 일상에,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별 거 아닌 일에도, 내 사물에도 나만의 의미를 담아 살뜰하게 보살피는 것. 날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 날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날 용서하는 것... 들이다. 


정말 별 거 아닌 일상에도 나는 정말로 사유하게 된다. 사유 역시 내 삶의 힘이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을 더욱 명료하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삶의 철학자이지 않을까. 


가끔 굉장히 예리하면서도 또렷한 사유를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낄때가 있는데, 그럴땐 이제 조금씩 성장하고 있구나.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정말 네 삶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구나.를 느끼며 짜릿해한다. 


의미있는 삶을 찾기 시작했다는 게, 의도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건,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큰 축복이자 선물이다. 지나고보니 그 결과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나는 그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은 날 기꺼이 수용할 수 있게 했고 인정하게 했고 사랑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는 진심어린 나에 대한 연민이. 내겐 축복이었다. 

이런 나라서, 이런 깨달음으로 매 순간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난 정말이지 숨막히게 예쁜 사람이 아닐까.싶다. 


초아야, 반짝반짝하지 않아도 돼. 너의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반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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