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plate May 28. 2024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유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떠나 완벽하게 낯선 곳에서 역시 사람사는 건 다르지 않구나. 다 똑같구나.를 기어코 확인할 때 사는 맛. 여행의 맛.을 느끼는 편이다.


서양사를 좋아해서인지. 유럽여행에 대한 애정이 있다. 일본 특유의 단출하고 간결한 절제된 분위기를 좋아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더 좋다.


파리 살던 때 몽마르트에 사는 친구 파비앙의 저녁 초대를 받아 가던 중 찍은 사진을 찾았다. 내가 찍었지만 이 사진을 보고 있자면 굉장히 감성적이 된다.


파비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다. 파비앙의 아뜰리에 있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굉장히 유머스럽고 짖궃고 쾌활하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것들이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내려 광화문 사거리 일민 미술관 위 전광판 혹은 전시 현수막을 보는게 일상이던 때, 그곳에서 전시회를 연 작가 파비앙과 이렇게 친구가 될 줄이야. 나중에 알게 됐다. 내가 봤던 그리고 궁금했던 그 전시의 작가가 파비앙이었다는 걸.


파비앙의 아뜰리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공인한 예술가들에게만 제공하는 멋진 작업공간이었다. 보안도 철저할 뿐만 아니라 문은 거대한데다 검정색 철제로 되어있고 흡사 영화 속에 나오는 성.의 문과도 같았다.


그러고보면 나의 평범함에 비해 이런 방식으로 우연하게 혹은 신기하리만치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혹은 아주 자주 일어났다. 늘 신기하지만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 다른 친구 장 폴도, 13구 공공 건물 곳곳에 전시돼 있는 그의 작품을 일일히 소개해주기도 내가 알만한 작가들과의 이야기, 그의 아틀리에에서 열리는 재즈 콘서트에도 초대하기도 그림 그리기엔 영 소질없는 내게 데셍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의 이런 경험은 새롭고 즐거운 경험임에 틀림없는 것들이었다.


유럽의 어느 여행지에서든 레스토랑에서든 다른 테이블로부터 "You are so beautiful!"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용기있는 남자들에게선 직접적인 대시를 받은 적도 여러번이다. 낯선 곳에서의 이런 경험들 또한 작은 묘미다.  


과거의 나는, 우울하고 불안한 내 마음을 어디에 둘 지 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홀연히 무작정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도대체 왜 그리도 방황했을까."싶을 정도로 나는 꼭 그런 마음으로 떠났다.


해외로 여행을 떠나면 마치 지금  마음이 왠지 나아질 거라는, 낯선 곳에서 모두 잊을  있을 것만 같았다.  착각이었음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라면, 이제 더는 어떤 도피처와 같은 마음으로, 어떤 탈출구로서의 여행을 더 이상 떠나지 않게 되었다는 설명이 적확하다.


이제 더는 낯선 곳에서 "초아야, 초아야..." 라고 내 이름을 수백번 불러대지 않게 됐다. 어떤 해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목적으로 떠난 여행에서, 사실 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내 마음이 어디 있는가.가 중요했다. 아무리 멋진 곳에서도 낭만적인 곳에서도 내 마음이 거기에 있지 못하면 붕뜨면, 안정되지 못하면, 불안하면, 우울하면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다는 걸. 이젠 너무도 잘 알게 됐다.


여전히 여행. 그 자체에 대한 내 사랑과 열정은 여전하지만, 그런 종류의 여행엔 도통 관심이 없다.


나는 이제 내 안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루에도 몇 번은 떠나는데 돈 하나 들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최고의 여행이지 않나 싶다. 예약도 필요 없다.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내 마음의 심연으로 떠나는 여행이 난 제일 흥미진진하고 신난다. 이보다 더 한 배움이 내겐 없다.


마음이 어둡고 아팠던 시절, 그 시절의 나에게도 깊은 연민과 고마움을 느낀다. 돌고돌아 많은 걸 깨닫게 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게 해 준, 내 안의 슬픔에게 자주, 너는 내게 축복이었음을 이야기해준다.


여행은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답은 내 안에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럴 때면, 알아차린 직후, 홀연히 내 안으로, 내 안의 우주로, 내 안의 심연으로 더 깊게 빠져들어간다. 더 이상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밑바닥을 끝까지 보고서야만 다시 올라올 힘이 생긴다.


오늘은 또 어떤 나를 마주 하게 될까.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까. 어떤 여행이 될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여행시 챙겨야 할 필수 마음가짐이다.


내 안의 세계는 무한한 우주다. 그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일.이 내겐 최고의 여행이다.

내 여행의 도착지는 늘 내 안의 우주다.




작가의 이전글 지적인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