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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8. 2024

힘빼고 살기

늦은 밤, 친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초아야, 잤어? 다음 주 시간 돼? 그날 만나자!." 그렇게 언니와 그날, 북촌과 서촌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나는 원래부터가 광화문, 효자동, 북촌, 서촌 일대가 내 성향과 내 정서와 내 분위기에 제격이다. 취향저격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내 약속은 웬만해선 다 그쪽 반경이 됐는데, 그 동네에 대한 내 짝사랑은 여전하다.


1일1교보문고 했던 대학시절,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나무 사이로.인데. 광화문 직장인이 된 후에도 자주 찾았던 곳이다. 내겐 추억 가득한 곳이다. 대학시절 내가 자주 가던 나무 사이로.카페는 꽤 오래전 자리를 그 근처 길가로 옮겼고 그 후로도 몇 번 찾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추억의 나무 사이로.는 원래 자리. 경희궁의 아침 안 구석에 있던, 사방에 거울이 있었던 쿠션 가득했던 코지한 느낌의 이전의 나무 사이로.다. 학교 끝나고 스터디까지 마치고 넷북.으로 자소서 쓰던, 글쓰던 내 모습이 고스란히 그 장소에 머물러 있다.


작년엔 씨티시절, 같은 지점에서 일했던 수진언니와 힐 사이드 테이블에서 브런치도 하고 그 일대를 산책하다 마마스에 들러 커피 한 잔 했었는데, 문득 수진언니가 보고 싶어진다. 수진언니는 내가 신입행원이던 시절, 참 많이 날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줬던 내겐 고맙고 고마운 찐언니다. 언니는 "초아야, 퇴근하고 밥 먹고 갈까?" 아주 자주 여의도ifc에서 밥을 먹여 보냈다. 계산도 늘 언니가 했다.


아직 서른 중반인데 나는 왜 이리도 자주 추억추억.하며 사는지... 아무리 나이듦이 누구에게나 당연함이라지만, 이러다 마흔이 눈깜짝할 새 될 것 같은 서운함. 그런 것들이 있다.


지금은 광화문 직장인도 아니고 나도 지금의 나.를 예상하지 못했다. 살아보니 삶은 그냥 사는 거였다.는 나만의 해석과 적확하게 들어맞는 셈인데 그냥 사는 거였지. 별다르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이제는 평범함 속에 행복이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게 된, 그러므로 평범함을 애정하는 내.가 되었다.


어린 시절엔(그래보아야 20-30대 초반이다) 스트레스에도 참 취약했는데, 많이 상처받고 아파했는데, 방황했는데, 우울해했는데, 괴로워했는데. 지금은 "이까짓 거 뭐..." "이게 뭐라고?"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하며 대담한, 덤덤한, 무심한,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웬만해선, 넘겨버린다. 마치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휙 던져 넣듯 그렇게 잘 털어버린다.  


어제 저녁에도 스트레스 받은 일이 있었는데, 한 십분 그 감정을 유지했을까. 집으로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완전하게 털어버렸다. 그 말과 내 기분과 스트레스를 감정 쓰레기통에 꽉꽉 눌러 버렸고 몇 분후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이까짓 게 뭐라고." 혹은 애써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버리곤 "그럴 수도 있지." 무튼 초아야, 결론은 힘빼자. 일희일비하지 말자. 감정적이지 말자.한다.


힘빼고 산지 꽤 되었는데, 힘빼고 살아보니 내 삶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려 더 여유있어졌달까. 여유있어보인달까. 단단해졌달까. 무심해졌달까. 어떤 일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그리 아쉬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상태가 됐다. 내 마음이 불안해지면 많은 부분에 있어 흔들리기 쉬워진다. 마음의 불안이나 스트레스 그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 감정들에, 내 시선이나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을 오래 머물게 두지 않는다. 기분전환해 줄 놀이들을 내 나름대로 많이 갖춰 놓아서인지, 그럴땐 재빠르게 영민하게 놀이를 통해 내 기분을 역전시킨다. 어제도 마찬가지였음 물론이다. 어제도 버스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좋았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의 나와 오버랩시키곤 인생이란, 이런거였구나. 이런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살만해. 아름다워.라고 되뇌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결 나아진 내 기분에 깜빠뉴 오픈 샌드위치로 호사스러움을 더해줬다. 그렇게 나는, 과하지 않는 선에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다독이고 깨어있으려 노력한다. 그 효과는 실로 엄청난데 오늘 아침 내 기분에 어제 저녁의 내 스트레스가 미친 영향은 단1도 없다.


"까짓 거... 이게 뭐라구?" 이 한 문장의 마법에 내 마음은 곧잘 무장해제 된다. 이 문장 하나로 어떨땐 내가 마치 천하무적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힘빼고 산다.는 말이 난 참 좋다. 힘빼고 살아보니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됐다. 힘빼고 살아보니 더 단단한 내가 되었다. 힘빼고 살아보니 "사는 게 뭐 별건가. 그저 무심하게 툭. 날 이 세상에 내 맡기며 살자."는 깨달음이 생겼다. 진심으로, 사는 게 뭐 별건가. 뭐 그리 심각할 거 있을까. 이게 뭐라고.!싶다.


힘빼고 사는 나, 이 또한 이토록 내 적성에 맞는 것이었다. 나를 알아가는 기쁨,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 이게 다 힘을 빼고 살아보니 얻은 선물이었다. 오늘도 무심하게 툭. 별로 신기할 것 없이 이 세상에 날 내 맡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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