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plate May 28. 2024

서른 일곱의 나에게

사진첩을 열다 의도치 않게 오늘의 사진.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좋았던 행복했던 기억의 한 장면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기억일 수도 있다. 복불복이다. 오늘 보게된 사진은 서른 셋의 나.였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혹시 몰라 알면서도 내 나이를 네이버 만 나이 계산기로 두들겨 보았다. 37이라고 나온다. 어맛. 서른 여섯밖에 안됐잖아? 분명 알면서도 나는 꼭 이렇게 날 기분좋게 하는 거라면 재차 확인하는 성미가 있다. 아직 마흔이 되려면 3년이나 남았다구! 이게 뭐라고 싶지만 내겐 뭐라구 인듯하다. 마흔이 되면 더 좋아.라는 언니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기억에 이날 오후,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바로 옆 카페 테라스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뤽상부르 공원으로 쭉 걸었던 날이다. 이날 옷 착장을 보아하니, 죄다 자라 옷이다. 이 시절 제일 만만했던 옷이 자라 아니면 H&M이었다.


짙은 네이비의 스키니 진은 15유로, 상의는 7유로 였던가. 외투도 35유로 였던가(확실한 건 한국돈으로 5만 원이 안됐다)모두 자라에서 산 옷들이다. 가방은 신입행원이던 시절, 첫 월급으로 산 것인데, 10년 전 루이까또즈에서 20만원 정도 주고 산 거였다. 이 가방을 메지 않은지가 오래됐는데도 이 가방만큼은 내 물건 목록에 아직 들어있다.


이날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약속 가기 전 마레지구 숍들을 구경하다 어느 가게에서 친구로 보이는 세련된 중년의 파리지엔 여성 두 명이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내 외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며 혹시 어디서 샀는지. 어느 브랜드 인지 정중하게 물어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의상이라도 내게 기분좋은 칭찬도 잊지 않았다.


내가 봉막쉐 앞 자라 매장에서 샀다고 하니, 다들 약간 놀란듯하게 정말 자라 옷이었냐고 물었다. 우연히 날 보게 됐는데 입고 있는 외투가 마음에 들어서 꼭 물어보고 싶었단다. 무튼 기분좋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난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별 건 아니었지만, 그런 소소한 일들이 내게 넌지시 깨달음을 주고 떠날 때가 있다. 그래, 비싼 옷이. 더욱이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라면,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 내 안에서, 내 분수껏 나를 가꾸고 대하면 어느새 아름다운 내가 되어있을 텐데. 나.에 집중하고 내면을 더욱이 살뜰하게 따뜻하게 아름답게 가꾸다보면 외면은 절로 아름다워질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고유의 분위기는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있다.


나만의 색깔과 향기. 분위기로 모든 것을 올킬.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진짜 멋.이고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말, 언어, 생각, 태도, 여유, 유연함, 매력, 상냥함 등이 한데 섞여 조화를 이룰때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오라(아우라). 내가 나이들어가며 더욱이 놓치고 싶지 않은 것 중에서도 상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많이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어떤 조건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 자체에 그리고 지금의 내게 무한한 사랑과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져서인지. 직접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져서 인지. 서른 중반의 내가. 나이들어가는 내가. 다행스럽게도 만족스럽다.


살면서 부딪히는 파도는 이제 필연적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살면서 우리에게 얼마나 무수히 그것도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있던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내 삶은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의 나.로 성장해왔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때가 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글을 통해 나라는 세계를 만나고 나라는 우주를 만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사고와 사유를 하다보면 이마저도 습관이 된다. 나는 그런 내.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 앞으로도 나라는 사람을 완전하게 알 날이 오지 않을 거라 믿는다. 나는 나를 안다는 말이 혹은 나는 나를 안다.고 하기 시작하는 순간, 내 성장이 멈춰버릴 것 같은 생각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싶고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마다 거울을 통해 내 눈동자의 빛과 맑음을 빠지지 않고 체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만의 분위기는 내 눈동자의 눈빛과 맑음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외적인 아름다움도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지만, 내겐 그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통해 나의 외면이, 나의 분위기와 아우라가 더 넓은 방식으로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오랜만에 서른 셋의 나를 마주하니, 그 시절 마음의 잦은 방황으로 고됐을 나에게 연민의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고생했어. 잘 버텨줘서 고마워.하곤 이내 미소짓는다.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그때의 너의 방황이 그로인한 갖은 감정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어. 고마워. 이젠 이전보다 단단한 견고한 서른 여섯의 내.가 되어 그 어느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한들,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내가 되었단다!"


작가의 이전글 힘빼고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