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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9. 2024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

촤.는 친구들이 날 부르는 별명이다. 내 이름을 빨리 발음하면 이리돼서인데 이 한 자에, 나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것 같아 만족스럽다.


종종 재밌는 혹은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하는데 불과 몇 시간 전에 누군가를 문득 떠올리고선 잘 지내고 있겠지.생각했는데 어김없이 그날 그 상대에게서 연락이 온다든지 하는 그런 동시성이 아닌가 하는 그런 기시감을 심심치 않게 느끼곤 한다.


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바삐 살고 있는 절친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촤, 잘 지내고 있지?

그러면서 나 역시 어제 그들을 떠올렸노라고 답했다.

희한하게 그제는 친구 세 명에게서 내게 안부를 묻는 메시지와 전화를 듬뿍 받았다. 나를 기억해주고 생각해주고 떠올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20대 시절과는 아주 많이 달라진 각자의 삶 속에서 말하지 않아도, 자주 보지 못해도,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알아서 전하는 듯한 암묵적인 동의.같은 그런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그런 메시지들을 받을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며 나 또한 힘을 내본다.


얼마 전 새로 이사를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윤주 언니는 선물을 보내왔다. 언니는 며칠 전 초아꿈을 꿨는데, ”정글처럼 수풀이 우거지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우리 둘이 여행을 가서 멋진 풍경을 보고 감탄하는 내용이었어. 육아하는 바쁜 일과 중에 꿈에서 초아를 만나 우리 둘만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났나봐.“라고 했다.(육아로 바쁜 언니와의 대화는 장문의 편지가 되어버리는데 언니와의 대화 중엔 주옥같은 우리의 대화들이 너무도 많아서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주 오래전 내 집에서 자고 갔던 언니는 헤어드라이어기가 마음에 쓰였는지. 며칠 후 사이즈가 꽤 큰 성능좋은 화이트 톤의 헤어드라이어기를 택배로 보내왔다. 언니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한동안 그 감동과 여운으로 일상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언니는 이번에도 날 울리고 말았다. 전등이었는데 그곳엔 언니가 주문해 넣은, 전하고 싶은, 날 위한 말들이 새겨져 있었다ᆞ.


”좋은 말만 듣고 예쁜 것만 보며 벅찰 만큼 사랑받길. 초아야, 너의 모든 날을 응원해(하트).“


벅찰 만큼 사랑받길.이란  언니가 마치  마음 모두를 알고 있는  같아서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면서 언니는,

”햇살 좋을 때, 우리 많이 걷고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그랬던 일들이 생각나.

가을바람이 불어오니까. 가을바람 느끼면서 카페인 충전해.“라며 커피 선물까지 보내왔다.


윤주 언니는 내가 스물셋, 언니가 스물넷이던 티 없이 맑고 순수했던 때 만났다. 언론사 공채 준비 시절, 언니와는 실기 스터디를 함께 하며 처음 만나게 됐다. 한 겨울, 언니와 나 모두 두터운 코트와 목도리와 장갑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신촌과 이대역 사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마주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그 공기와 날씨까지도 선명하다. 무언가 새침한 여대생일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언니는 무척이나 상냥했고 아주 예뻤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언니는 엣지 있고 우아했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이 본인과 맞는지 아닌지.를 그 나이에도 명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언니와 난 둘도 없는 절친이 됐다.


많이 불안했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마냥 방방 뜨기만 했던 날 그때마다 위로해주고 바로 잡아준 사람도 언니였다. 언니에게 정말 고맙다. 언니가 요즘의 날 보면 뿌듯해할 것 같다.


내 스스로도 이전보다 아주 많이 성장했음을. 익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날 잘 알고 이해해주고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읽어버리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윤주 언니에게 나도 지금 내 자리에서 잘 살고 있노.라고 지금은 자신 있게 대답하곤 한다.


언니가 서른이 되었을 때, 가을바람이 살랑이던 그날, 언니가 내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아나운서 일을 잠시 쉬고 재충전하기로 마음먹었던 때이기도 한데 그날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회사 앞에서 광화문역으로 야무지게 함께 걸어갔떤 그 장면이 내 뇌리를 스친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마음쓰는 사람과의 모든 일상은 소중한 추억이 되고 기억의 앨범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나중에 나이 들면 추억으로 산다. 추억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떠라면. 이 말처럼 그랬었더라면 참 좋았겠다.싶지만 이 또한 내게 삶의 깊은 통찰을 주기 위한 이 세상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내 안의 상처, 상실, 고독, 외로움, 사랑 등의 희로애락을 줄기차게 경험했기에 내 사람들과 이를 나눌 수 있었고 그때마다 함께 울며 위로받을 수 있었고 치유할 수 있었고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가진 이 모든 경험들이 세상의 선물.이라 생각할 만큼 많이도 단단해진 것 같아 내심 가슴 벅차다.


삶은 그런 것.

나와 함께 아파해주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은 하루다.


걱정마, 촤 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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