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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May 29. 2024

세상을 바라보는 눈

퇴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온전히 매 번 매 순간의 내 선택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가끔 내 주변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올 때면, ”너 그때 회사 진짜 그만두지 말았어야 돼. 은행에 있었을 때 시집갔어야 했어. 넌 아니라고 하지만 타이틀이 중요한 거 맞아. 에휴 그때 내 말 들었어야 해...“와 같은 안타까움인지 모르겠는 듯한 소리를 들을 때면 불편한 마음도 든다. 


삼십 중반의 나이, 확실한 건 결혼은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생각이다. 마치 내가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더서 외부적인 요소들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사실 여간 못 미더울 때가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지금까지 다녔다면 연차에 따른 연봉은 꽤 높아졌겠고 꽤 괜찮은 복지에 지금쯤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장만했겠고 결혼도 했겠고 뭐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또 모를 일이지 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선택함으로써 잃은 만큼 얻는 것도 많았기에 괜찮다. 창창했던 서른, 이리저리 하고 싶은 걸 찾아 떠나보기도 했고 세상을 돌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해보기도 했고 삶을 느꼈고 인생을 배웠다. 


경제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족했을지는 모르나, 젊고 에너지 충만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호기롭던 그 당시의 나도 나였고,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했지 않았을까.하는 마음도 있다. 


전망 좋은 고층뷰, 광화문 사거리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쾌적한 오피스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딸깍 거리며 커피 한 잔 하는 여유까지 갖는 커리어우먼적 감성과 월급을 난, 캐쥬얼한 옷과 백팩을 멘 자유분방한 외국언니 같은 모습과 감성으로 그리고 들쭉날쭉한 수입과 맞바꾼 셈인데, 언제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도 쉼 없이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경험의 보따리들이 지금도 무궁무진한 걸 보면 결코 지난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이 아님이 증명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나도 그랬다. 30대 초반 나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잘 살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요술을 부린다. 어찌어찌하다보니 나.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결혼이 점차 뒤로 밀려난 것 뿐이다. 


예전에 재미 삼아 사주를 보러 갈 때면 도사들은 하나 같이 삼십 대 후반이 돼서야 결혼 연이 나타난다고 했다. 결혼을 늦게 해야 좋다고 했는데 믿거나 말거나 아직까지 싱글인 걸 보면 결흔을 늦게 해야 되는 게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이가 돼보니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오버랩되면서 깊이 깨닫고 느끼는 것도 많아서인지 지금은 사람 관계는 물론 인생 지혜도 나름 차곡 쌓인 느낌이다. 


현재 이 시점에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개인적으로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똑같은 나.이겠지만, 결국 그때마다 내 삶을 결정했던 건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시선이었다.


지금은 많이 마음이 가라 앉았고 차분해졌으며 생각이 깊게 그리고 많이 정리되었다. 나에 대해 조금은 정확히 알게 됐으며 나를 포함한 이 세상 사람 한 명 한 명 모두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았다. 고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상냥해졌으며 따뜻해졌으며 이해의 폭도 넒어졌으며 삶의 통찰력도 얻었다. 포용도 한 껏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은 결코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삶의 의미와 방향을 어디에 두고 사는지.에 크게 결정된다는 걸 깨달았다. 나 역시도 그리 거창할 것 없으며 그저 평범하지만 소중한 한 개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 깨달음을 통해 난 나 자신을 오롯이 인정하게 되었으며 때로는 못나고 초라한 나도 나이며, 때로는 야무지고 멋진 모습의 나도 나.라는 걸, 겸허히 수용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요즘같이 가을 특유의 바람의 냄새와 그 기운과 에너지를 온몸으로 맞이하자면, 그래, 세상이 이리도 아름다운데,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곱씹는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시선을, 사람들에 대한 시선을 조금은 달리 해보면 모든 순간순간이 내 삶의 교과서가 되고 흔적임을 알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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