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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입지 않는 이유

by Aarushi

직장인이었던 때, 소위 나름 커리어우먼이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외적인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옷.일 것이다.


내 옷장엔 청바지가 없다. 여름 스커트 몇 벌이 전부다. 대학생 때부터 주변에서 자주 듣던 말은, "몸도 날씬하고 청바지 입으면 얼마나 예쁘니? 청바지에 흰티 얼마나 깔끔하고 예쁘니?"


내가 청바지를 입지 않는 이유는 정말 간단명료하다. 불편해서다. 편하지 않아서다. 청바지 그 특유의 빳빳한감이 나는 도통 편하지가 않다. 청바지를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쁜데, 내 취향은 아니니 사실 부럽거나 아쉬움이라곤 없다.


체형이 롱스커트나 미디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편이라, 또 지극히 내 취향이라서, 내 옷장엔 스커트들이 가지런히 잘 정리돼 있다. 자라옷을 즐겨입는다. 스타일이 내게 꼭 알맞다. 스커트를 입었을 때 그 특유의 헐렁함, 휘뚜루마뚜루의 그 느슨함, 상의만 고민하면 되면 심플함과 간편함이 좋다. 외려 청바지보단 스커트가 옷을 매치하기 쉽다는 생각이 있다.


날 보면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여주인공 캐리같다고 한다. 히피 느낌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내 패션 스타일이 꽤나 자유롭구나.싶다. 개인적으로 깃털처럼 가볍고 싶은 내 바람의 발현이 아닐까.


내게 옷.이란 나.다.

옷이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옷을 고르거나 입은 적은 없고 나다움이, 나의 개성이, 외적으로 절로 드러나게 되는 것. 그것이 곧 패션이다.는 생각이 있다.


호피 무늬 스커트도 즐겨입고, 자연스런 색감과 소재의 무채색의 스커트도 즐겨 입는다. 롱스커트와 미디 스커트, 내 취향의 티셔츠, 민소매 블라우스, 스포티한 민소매로 여름을 난다. 똑같은 옷도 자주 입는다. 똑같은 옷을 입는게 뭐 어떠한가. 나는 개의치 않고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대로, 편한 방식으로 입는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내 살림살이와 내 삶을 다시 정렬하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날 설레게 하지 않는 물건들을 모두 정리했다. 지극히 내 취향의 무늬와 텍스처를 가진 천가방과 파우치, 에코백만 남았다. 천가방 5개가 전부다. 가죽 가방이나 각진 가방 등 그런 류의 가방이 이젠 내게 도통 예쁘지도, 필요하지도, 당기지도 않는다.


휘뚜루마뚜루 달랑달랑 자유로운 나처럼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천가방이 내겐 최고의 명품이다. 그 천가방도 허투루가 아니라 신중하게 내 취향의 것일 것! 멋스러움이 있을 것! 내 마음을 사로 잡는 것!으로 고른다. 그래야지만이 만족할 수 있고 오래도록 사랑하며 아낌없이 잘 들고 다닐 수 있다.


신발도 여름 샌들 딱 2개뿐인데 나는 이마저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느낀다. 무엇이든 조금 부족해야, 아쉬움이 있어야 귀한 줄 알고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는 생각이 있다.


"초아씨는 왜 맨날 똑같은 옷만 입어요?" 누군가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럼에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는데 덤덤한데다 무심하기까지한 내 반응에 상대방이 외려 더 당황한 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멋진 대답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아, 원단이나 색감이 제 취향이라, 지금의 저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매일 같이 입어요. 므흣" 그분 왈, 내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녀서 궁금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혹은 같은 옷을 입는지 아닌지 등에 일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어서인지 나로선 궁금한 사항이 일도 아닌 질문이긴 했지만, 물어본 사람은 또 그럴 수 있겠다.


매일, 같은 롱스커트에 같은 상의를 입는데 요즘 사람들 같지 않아서 물어본다 했다. 무튼 있는 그대로 답했더니 금세 수긍하는 눈치다. 사실은 요즘 나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건데, 그분도 아닌 걸 물어보진 않았으니, 팩트를 말했으니 맞는 말했다.는 생각이다.


지금 내 옷장엔 정말 입는 옷들만 남아 있어 한눈에도 어떤 옷인지 금세 알 수 있는데, 새 옷을 사지 않은지가 꽤 오래 됐기도 했고 이유인 즉슨, 정말이지 새로운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 새 옷이나 신발 가방을 사는 일보다 나의 내면을 치장하고 가꾸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데 있다. 이런 마음이 충만해지면 충만해질수록 확고해지면 확고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게 된다. 전혀 신경쓰이지 않게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해도 초라해보이지 않을 것, 깨끗할 것, 분위기를 잃지 않을 것, 나다울 것.이라는 내 나름의 원칙이랄까.그런 것들이 있다. 고로 내가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초라해보인다거나 없어보인다거나 찌질해보인다는 생각은 더욱이 없다. 또 굳이 있어보여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다.


세탁을 해야 할 땐, 치마를 다른 걸 입는다든지, 상의를 다른 걸 입어준다든지 돌아가며 입긴하지만 거의 비슷한 패턴과 색감이다. 스커트 몇 벌로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은 물론 내가 불편하지 않는데, 내가 다른 옷이 필요하지 않은데 무슨 상관이던가.한다.


새 옷을 사는 대신에, 새 가방을 사는 대신에, 새 신발을 사는 대신 날 위한 신선한 식재료를 사는 데에, 평소 배워보고 싶었던 도전해보고 싶었던 무언가에, 내 취향의 그릇 하나를 이따금씩 사는 데에 쓰다보니 내 일상이 더 풍족해지는 것은 물론 내 마음도 알뜰함과 살뜰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취향대로 살다보니 가끔은 별나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취향껏 산다는 건 결코 별나거나 유별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는 내 믿음인데, 그러다보니 남의 눈이나 시선이 날 쉽게 흔들지 못한다.


고로 그러면 그럴수록 삶은 편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여전히 소비하는 즐거움보다 소비하지 않는 즐거움이 더 크다.


누가 뭐래든 그 기준은 철저히 나,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옷, 패션에서도 예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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