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awareness)
부엌은 온전히 내.가 되는 공간이다. 몰입하는 공간이고 알아차림의 공간이고 나에 대한 사랑과 에너지 가득한, 작지만 예쁘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부엌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뚝딱뚝딱 썰 때, 나는 유독 평온함을 느낀다. 편안하고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를 하루에도 여러번 경험한다.
평온함과 고요함에 이르는 건, 내겐 알아차림이다. 지금 요리하고 있는 나.의 경험 알아차리는 나. 부엌에서의 몰입은 내게 지극히 자연스런 몰입이자 명상이자 알아차림이다.
이런 마음에서 완성된 내 요리는, 음식은 다채롭고 아름다우며 정말 맛있다. 음식에도 생명력이 있다. 나의 생명력과 내 에너지가 고스란히 내 음식에 깃든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요리는 기운이다.
건강한 음식은 만든 이의 밥 짓는 마음, 기운, 에너지, 사랑, 감정에서 나온다.
작은 스테인리스통을 잘 사용하고 애정하는데, 적당히 앙증맞은 사이즈의 스테인리스통에 직접 만든 음식을 젓가락으로 살살, 수북이, 예쁘게 담았을 때, 음식의 양이 도시락통에 딱 알맞게 기가막히게 맞아 들어갈 때, 그 특유의 신남과 깨알 재미가 있다.
내가 생각한 걸 직접 만들어 냈을 때, 맛 보았을 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맛, 새로운 맛.을 경험할 때, 기쁨과 즐거움과 짜릿함이 있다. 흔한 맛보다는, 어디서도 먹어보지 않은 맛.을 낼 때, 창의적이고 예술이 된다.
도시락 하나에도 나는 허투루.의 마음일 수 없다. 음식을 넉넉하게 만들어 선물하곤 하는데, 나누는 기쁨이 더 크다. 도시락 혹은 음식을 꼭 선물처럼 포장한다. 그러면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더 큰 감동으로 돌아온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요리란, 음식이란, 서로의 기운을 나누는 일이다. 좋은 바이브는 전염된다. 순간 순간 좋은 마음으로 예쁜 마음으로 밥 짓고 요리해야 하는 이유다.
내게 밥 짓는 마음, 도시락 짓는 마음은 사랑, 행복, 기쁨, 즐거움, 에너지, 기운, 순수, 아름다움, 예쁨, 향기로움, 맑음이 한 데 뒤섞여 이루는 하모니다. 그 조화로움이 내 음식을 완성한다.
나에 대한 존중과 사랑과 삶에 대한 감사함. 딱 이 마음으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고 신선한 식재료들로 한 끼를 차려낸다. 정갈함과 간소함과 단출함이 그 여백의 미.를 더한다.
내게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들이다.
갓 지은 솥밥에 올려 덮밥처럼 먹어도 맛있고 통밀빵이나 통밀 피타 브레드에 토핑으로 넣어 먹어도 맛있다.
글 쓸 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길고 짧음을 의식하거나 의도해서 쓴 적은 없다. 장문의 글이라도, 쓰고 나면 20여분 정도 흘러가 있다. 글쓰기 자체를 순전히 내가 좋아서, 날 위로하기 위한, 나를 위한 것이라 그런지, 부담이 없다. 아마 부담 없어서 집착 없어서 글을 쉽게 써 내려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 쓰고 난 내 글을 쭉 한 번 읽어 내려갈 때가 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혹은 글을 휘뚜루마뚜루 휙휙 쉼 없이 써 내려가는 날 볼 때, 마치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듯이, 마치 누군가가 일러주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글 쓸 땐 철저히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몰입의 상태를 경험할 때가 대부분인데, 그 몰입의 경험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무의식의 흐름이 이런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과 질문들이 휘몰아칠 때가 있다. 내 안의 나.구나. 네가 나를 이런 방식으로 이끌어내 주는구나. 하곤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길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묵직함이 내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내 사유와 사색의 형태는 거창하지 않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지극히 나답고, 지극히 자유로운 것이다.
삶.에 대해 이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싶을 정도로 나는 나. 그리고 주변인.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참 많이 너그러워지게 되었다. 자기 자신.과 하루에도 여러 번,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외롭지 않다.
자기 자신과 독대하는 그 마주함이,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날 성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