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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

나를 일으켜 세운 것

by Aarushi

책은 내 삶의 힘이다. 마음이 칠흑같이 어두웠던 시절,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던 때, 날 살게 했고 일으켜 준 고마운 존재다. 책을 통해 내 존재 이유를 고찰하고 통찰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엇보다도 고전에 애정이 있다. 고전을 닥치는 대로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참 많이 읽었고 지금까지도 무척이나 애정한다.


그 시절, 쇼펜하우어, 니체, 고흐,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이다. 고전을 사랑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노래하고 인간에 대한 고뇌와 통찰을 직접적으로 묻거나 대답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건 크게 없었다. 단지 나의 내적 고통을 그저 묵묵히 감내하는 일, 그것 뿐이었다.


이 모든 건 나의 기대가 너무도 컸던 탓인데 이제는 그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기에 편해졌고 내 스스로를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를 냈기에 이렇게 다시 잘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누구에게나 오는 성장통 같은 것일 수도 있었겠으나 생각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내게 찾아왔다는 것이 인정하기 어려웠고 싫었고 소스라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삼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 늦게 알아버린 탓일까. 지금은 다행히도 그 상처에 새살이 돋아 잘 아물어가고 있다. 사실 상처가 아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살아야 하기에 지켜야 하기에 이를 악물고 견뎌내고 있는 과정이라는 말이 맞겠다.


나의 선택 혹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로 삶을 물들이는 것만큼이나 날 비참하게,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과 선택과 경험이 어디 있으랴. 기회비용처럼 우리네 인생의 매 순간 어느 쪽이든 때로는 값비싼,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또한 여실히 느끼게 됐다.


내 삶의 고비고비마다 내 손을 잡아 준 건, 날 일으켜 준 건 그 누구도 아니었다.


책.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나서부터는 책 읽는 즐거움에 살았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읽었다. 그런 내게 책이란, 시간을 내어 읽는 것.이라 한다면 어색하기 그지 없을 만큼 책은 내게 밥 먹는 것과 같은 하루 일과이자 일상이었고 친구였다. 지금도 내가 소유한 지식의 반 이상은 대학시절 얻은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만큼 책과 함께 나도 성장했다.


이번 고비에도 함께였다. 내 옆을 떠나지 않고 날 위로하고 달래 준 건 책이었다.


특히 힘들고 외로울 땐 하루종일 침대에 앉아 4-5권은 족히 읽었다.


만약 내가 그때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 곁에 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책 속에 답이 있었고 통찰이 있었고 지혜가 있었고 삶이 있었고 인생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책 한 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늘 들던 생각은, 책 네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니. 날 살게 하는구나.였다.


내 마음과 기분에 이상기류를 감지할 때마다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책 10권을 몽땅 빌려와 바로 읽기 시작하는데, 책은 마치 내게 마법을 부리듯, 요술을 부리듯,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로 안내한다. 그 순간만큼은 날 괴롭히던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만다. 글쓴이의 한 문장 한 한문장에 위로받고 고전 소설 속 주인공에 완전히 몰입해버리고 마는데 인물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지혜를 얻는다.


책만큼은 날 아무런 대가 없이 조건 없이 알아주고 대해준다. 내 마음이 바닥일 때, 날 떠나지 않고 그때마다 내게 용기와 지혜를 주는, 삶을 살아나갈 힘을 준다.


책 속에 파묻혀 있는 기분도 곧잘 즐기는데, 자기 전 조명 하나만을 켜놓은 상태에서, 엎드린 채로 양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이삼십 분 정도는 독서를 하다 잠드는 일.도 여전하다.


무너졌던 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책에게 난 언제나 빚진 마음일만큼 책은 날 살렸고 어제보다 나은 나를 지금에 있게 했다. 책은 내게 많은 걸 말해주었다.


인생은 원래 험난 한 것.

누구나 각자 저마다의 고통 속에 견디며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인생의 고독은 당연한 것.

잘 견뎌내고 있다는 것.

수많은 인생의 지혜를 내게 빠짐없이 알려주고 갔다.


내가 사랑한 그 시절 니체의,

"상처에 의해 정신은 고양되고 새 힘은 솟아오른다."

는 말에.


내가 사랑한 그 시절 고흐의,

"아무런 후회가 없다면 인생은 너무나 공허할 것이다."라는 는말에 위로 받는다.


몇 년 전, 오베르 쉬오아즈로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갔었는데 그 여정의 종착지는 고흐의 무덤이었다.

화가이기 이전에 철학자와도 같았던 그의 삶 앞에 숙연했다.


유난히도 고전 철학자들을 흠모하는 나로서는 책은 내가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생이란 어려울 것 없다.


태어났으면 살면 되고 살았으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 그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며 책이 주는 세계에도 애교 가득담아 고마움을 전한다.


책이 주는 세계는 한 개인의 삶을 지탱하고 살릴만큼 결코 가볍지 않으며 그 경험은 환상적이라는 것. 책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고귀하며 겸손하며 설렘인 이유다.


이번 주엔 또 어느 시대, 어떤 세계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Van Gogh


내가 향유하는 것 중 하나는, 도서관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도서관은 내게 한없이 책을 선물하는 선물상자 혹은 보따리다. 빼곡하게 책들이 늘어선 도서관 서가 틈바구니 속에서 오늘 내일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이 이토록 설렐 수가 없다. 내가 자주 일상을 만끽.하는 공간이자 향유하는 공간이자 나다워지는 공간이다.


도서관의 잔잔한 고요와 적막을 나는 참 좋아하는데, 이 적막과 고독 속 내 키보드의 두드림이 그 고독을 이따금씩 갈라놓는다.


책이 주는 또 다른 맛은, 책 읽기 전 밀려오는 기대감과 설렘.그리고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 책을 탁 덮었을 때 오는 그 짜릿함과 여운, 감동.이 그것이다. 이토록 평범한 하루가, 일상이. 내 마음에 따라 내 하루는 늘 그렇듯 시시각각 변주한다. 이런게 인생이었던가. 이래도 저래도 괜찮았던 거였네.싶다.


내가 자주 가는 광화문 카페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광화문 교보에서 책을 마음껏 구경하기도 읽다가 책을 사서 돌아오기도, 남대문 시장을 휘리릭 구경하기도, 여의도 ifc몰을 다녀오는 일 등, 광화문 여의도가 나는 제일 편하고 좋다. 광화문은 내 젊은 시절, 직장생활하며 오랜 시간 보낸 곳이어서기도 하고 여의도는 주말마다 ifc에서 약속을 자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튼 늘 가던 곳이라 익숙해서 제일 편안하다고 느낄런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어김없이 책을 끼고 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고상하다거나 자랑할 일이거나 거창한 일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책을 통해 그 시절 내가 사랑하는 철학자들, 작가들, 예술가들과 만나는 게 그저 좋으며, 그들을 통해 그들의 세계 속 주인공들을 통해 내 삶을 투영하기도 반추하기도 통찰하기도, 그 모든 것이 내겐 그저 늘 새롭고 흥미로운 기대되는 세계다.


책도 하나의 취미이자 취향일 수 있다. 책을 자주 읽다보니 책을 정독하면서도 제법 빠르게 읽어낸다. 책의 첫 페이지를 폈을 때 설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을 때 느끼는 그 아주 미세한 바람이 내게 불어오는 그 느낌, 그 맛에 책을 읽는 것도 있다. 하나의 세계를 여행하고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온 듯한, 현실로 돌아온 듯한 그런 느낌을 나는 자주 받는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시끄러운 상황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상황이 아니라면 곧잘 책을 꺼내 든다. 무겁지 않은 작은 책이라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습관이다. 지하철을 타거나 이동할 때 가끔은 지루하거나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그 시간이 나는 아쉬워서,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거나 남는 시간이 있을 것을 대비해, 그 시간에 야물게 책을 읽는 편이다. 눈 깜짝할 새 내릴 역 이름이 안내방송에 나올 때면 시간 참 잘 쪼개서 썼구나.라는 생각에 기분 좋아지기도 한다.


그제인가. 파울로 코엘료의 라이프를 다시 읽었다. 두 번째 읽는데도 어찌나 새롭던지. 늘 느끼는 거지만 내 마음에 참 와닿았던 책들은 언제 읽어도, 다시 읽을 때마다 늘 새롭고 와닿는 포인트가 그때그때 달라진다. 곳곳에 내가 살짝 접어놓은 책의 페이지들도, 나의 그때의 흔적들을 보면서 문득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내 마음과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파리 살 때 친구들 집에 가보면 책장에 책들이 빼곡하게 있는 집들이 많았다. 실제 서양도서들은 종이 재질도 훨씬 가볍고 콤팩트하다. 걸어 다니며서도 메트로 안에서도 과하지 않아 보이는 것은 물론 독자로 하여금 읽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게 책 그 자체고 참 콤팩트하구나.싶었다. 무튼 그곳에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도 그런 편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는, 뚜벅이인 나는, 책을 집어 들어 읽노라면(앉아있든 서있든) 가끔은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 아랑곳않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인 듯하다. 내 안을 다스리고 내 마음이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면 내 안이 충만해지기 때문에 사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신경 쓸 틈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정말 자유롭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은 잘 되게 되어있다.는 생각이 내 온 몸을 감싸고 있으니 이 에너지로 무엇이든 못할까. 내가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니,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 지금 이 상황 속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현존하는 것,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것, 현재를 사는 일이며,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말자.다짐한다.


읽음으로써 자유로움을 느낀다.

책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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