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있어야 한다
비우면 비울수록 나는 왜 더 풍족함을 느끼는 걸까.
비우면 비울수록 나는 왜 더 만족감을 느끼는 걸까.
비우면 비울수록 나는 왜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걸까.
부엌 살림, 옷가지, 내 집, 내 방, 나를 이루는 내 살림살이는 참으로 단출하다.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몇 년 전 부터, 내 삶의 가치관과 태도가 선명해지면서부터다.
요리하는 것 치고 살림살이가 이토록 없을 수 있나.싶을만큼 내 부엌 살림은 심플, 단출, 간소 그 자체다. 세간살이가 단출하면 불편할 것 같지만 실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불편함이 없으니 이리 사는 것이 내겐 즐거움이자 기쁨이자 낭만이 된다. 이건이건 있어야 돼.의 기준은 철저히 나 자신.에게 있다. 내 삶.에 있다. 내 취향.에 있다.
물건 하나에도 내 삶이 보이고 나를 투영하고 내 삶을 통찰하게 된다. 어떨 땐 물건 하나에도 이토록 할말이 많은가.싶을 만큼 크고 작은 깨달음이 내겐 일상이 됐다. 현재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지극히 스무스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애정하는 도자기 컵이 있었다. 솜씨 좋은 친언니가 직접 만들어 준 넉넉한 사이즈의 울퉁불퉁한 도자기 컵이다. 그 컵만 사용한지 5년은 되었는데, 며칠 전 설거지하다 컵 손잡이 부분이 톡.하고 떼어졌다. 자연으로 직접 빚은 것이라서 그 떼어짐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터. 톡.하고 찰흙이 떼어나가는 듯. 이별의 과정이 차분했다.
어맛.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물건에도 헤어짐이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나는, 5년이란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해 준 도자기 컵에 "굿바이. 그동안 고마웠어. 덕분에 낭만있었고 행복했어."라고 말해주었다.
내 삶이 단출해지기 시작하면서 각 용도에 맞는 물건들을 하나씩만 들이기 시작했다. 컵이나 그릇도 실은 한 번 마음에 들면 질릴 때까지 깨질 때까지 쓰는 성미가 있다. 그런 성미 탓도 있겠고 가령 컵도 두 개를 두면 이도저도 아닌 마음이 들어서다. 내 취향의 디자인, 색감의 컵 하나를 두었을 때, 설레고 사용할 때 마다 기분좋고 또 하나라서 귀하게 여길 줄 안다.
컵이 두 개면 고마운 줄 모른다. 귀한 줄 모른다. 소중한 지 모른다. 아쉬움이 있어야 감사함이 넘친다.
나는 그런 아쉬움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아쉬움이 내게 설렘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가끔 자라홈에 취향저격의 도자기 그릇이나 컵이 나온다. 그럴 때면 망설임 없이 덥썩 사는데, 마침 도자기 컵과의 이별 차제에 고민하고 있었다. 딱 하나만 살텐데, 지극히 내 취향의 것일 것. 한 번 사면 이 하나로 오래도록 사용할 것.이라 잘 고르고 싶었다.
마침 내 취향의 까슬까슬한 빈티지하고 앤틱 스런 컵을 발견했고 "너로 정했다. 함께 가자." 반갑게 데려왔다.
집에 와서 스티커를 떼어내고 깨끗히 씻어 말렸다. 찬장에 놓았는데 어쩜 이토록 내 스타일인지. 내 눈에 예쁜지. 잘한 소비였다.
접시와 그릇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켭켭이 쌓아놀 만큼의 개수도 남아있지 않다. 오래전 다 정리했고 지금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그릇들만 남았다. 그 기준은 날 설레게 하는 것일 것. 같은 모양의 것이 없을 것.이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가전 제품이라곤 후무스와 수프를 만들 때 사용하는 믹서기가 전부다.
솥밥하는 핑크색 주물냄비, 휘뚜루마뚜루 채소찜 하는데 쓰는 노란색 주물냄비면 충분하다. 부족함이 없다. 어떨 땐 부엌 살림을 바라보다 혹은 요리하다 이렇게 부족함이 없어서야.혼잣말이 나올 때가 있다.
비움과 아쉬움의 즐거움은 내 침실, 내 옷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불도 지극히 내 취향의 인도에서 수입한원 단으로 만든 보헤미안 풍의 덮는 이불과 자라홈에서 산 질 좋은 매트 이불 하나가 전부다. 배게도 하나, 쿠션 하나가 전부다. 우산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장우산 1개, 어설프게 이것저것 사서 여러개를 두는 일보다, 몇 만원 혹은 얼마 더 비싸더라도 내 기분을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날 설레게 하는 것들을 딱 하나 사는게 내게 이롭다. 그런 곳엔 아끼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날 설레게 하는 물건들은 정말 오래 사용하게 된다. 각 용도에 맞는 물건을 딱 하나.만 두는 일은, 물건들에게도 예의가 아닐까.싶다. 자기 만의 용도가 본래 있을 터. 컵도 하나라서 얼마나 살뜰하게 사용하는지. 이 모양의 그릇도 딱 하나라서 얼마나 야무지게 사용하는지. 이불도 딱 하나라서 얼마나 몽글몽글한 마음덮고 빨래하고 빳빳하게 잘 말리는지.
햇볕에 빳빳하게 잘 말려진 바람 내음새가 나는 수건을 좋아하는데, 수건도 몽땅 사놓지 않는다. 딱 4개로 부지런히 빨아 쓴다. 레오파드 무늬의 수건 4장. 이마저도 넘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못 말린다.
아무리 예쁜 컵이 있어도 쉽사리 들이지 않는데, 지금 내게 아주 잘 쓰고 있는 컵 하나가 있는데, 이 컵을 사면 면 순간의 기분 좋음이 있겠지만, 내 것이 되는 순간 이내, 금세 그 마음이 시들해질 것임으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를 채워나가는 일보다 하나를 비우고서야 하나를 채우는 일이 내겐 더 익숙하다. 비움이 내게 더 큰 만족감과 충만함을 가져다 준다.
비움에 어떤 마법이라도 있는 걸까. 비움이란 내겐 아쉬움과도 동의어인데, 비우니까 비로소 채워짐을 느낀다. 아쉬움이 있어 더 귀한 줄 알고 감사함을 느낀다.
삶에 아쉬움이 있다는 건, 부족함이 아니라 부유함이다. 아쉬움을 통해 깨닫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아쉬움이 없다는 건, 한편으론 부족한 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아쉬워 할 줄 모르면, 부족한 줄 모르면, 만족할 줄 모르면, 마음이 부유해질 수 없다.
비움으로써 비로소 채워진다.
비움은 채움이다.
채움이 곧 비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