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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공간)과 마음 작용

공간은 나다워야 한다

by Aarushi

가죽소파보다는 패브릭 소파를 좋아하는 취향에다, 유럽이나 미국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나는, 패브릭이라면, 빈티지스러움이라면 뭐든 환장하는 성미를 가졌다.


보슬보슬 비는 내리고 음악까지 틀어놓은 상태라 무드무드하다. 그러다 내 공간을, 내 집을 자연스레 빙 둘러보게 됐다. 단출하기 그지 없지만 내 취향대로 살림살이를 갖춰놓은 이 공간이 내겐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엄청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나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그러나 내 사랑을 고루 나눠주는 정도의. 내가 날 대하듯, 나는 내 공간을 대해준다. 어떨땐 심플한 내 집을 보며 나는 이토록 무심한 내가 되어가고 있구나.싶을 때도 더러 있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아담하다. 심플하고 간소하고 단출하고 깨끗하고 작고 내 마음처럼 무심한 느낌의 집이다. 그러나 굉장히 코지한 느낌인데, 집도 내 마음 따라 간다. 지금 집은 내 마음과 꼭 닮았다.


지극히 사적인 개인적인 내 집이란, 내 공간이란, 나.의 반영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혹은 화려하거나 휘황찬란한 집은 지금의 내게는 맞지 않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나 그러나 내 안에서는 굉장히 비범한 사람인데다, 소박한 걸 좋아하고, 오래된 거, 옛 것에 관심이 많고 단출하고 심플한 삶이 내겐 가장 적확하면서도 날 편하게 한다는 걸 알아버린 차제에 나다운 집에서 살아야겠다고.결심한 이유에서다. 그 흔한 밥통과 전자레인지도 없어서 자잘한 가전제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러가지면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 나름 낭만있다.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1인 가구인데다 나 혼자 사는 집인데,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상, 한 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생각보다 내 삶의 반경이, 동선이 짧다는 걸 알게 됐다. 동선이 충분히 짧아도 작은 공간에서조차 난 모든 걸 부족하지 않게 뚝딱뚝딱 해내고 있으니, 내겐 큰 집은 필요치 않다. 나 혼자 살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며 나라는 사람은 내 취향의 물건들로만 배치해도 얼마든지 코지하게, 편안하게, 나다운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판단도 있다.


살아보니, 집.이 내 정신건강에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 공간에 대한 의미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내 집은 그 자체만으로 날 포근하게 만드는, 내 정신을 포근히 감싸주는 영역으로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공간. 내 집.이 내겐 이토록 남다를 수밖에.


내가 사는 집 역시 나다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가령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1명인데, 나보다 집이 확연하게 커버리면 그 집은 내집이 아니라 공간이 날 소유한다는 생각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번에 선택한 이 집은 철저히 나스럽고 날 꼭 닮았다.


요즘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나는 곧잘 이렇게 대답하곤 하는데, "난 아직까지는 자유롭게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살아보고 싶어.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동네에 살아보는 것, 전혀 다른 공간에 돌아가며 살아보는 것. 이 얼마나 낭만적이야."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집.에 대한 정의는 외국의 것과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여전히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의치 않고 나다운 영역인 집.이라는 공간을 기어코 찾아내, 즐겁고 또 즐겁고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크다.


내 삶의 가치관과 철학과 태도가 뚜렷해지면 뚜렷해질수록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명료해지면 명료해질 수록 집이라든지, 소유라든지, 여러가지 면에서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다.


집이란, 내 관리의 영역 속에 있을 정도의 크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고 나에게 있어 집이란, 몇 제곱미터의 객관화된 수치 혹은 평수가 아니라 내 마음의 크기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집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은 물론 충분히 만족스런 즐거움과 낭만이 가득한 집.이라 할 수 있다.


내 스스로의 판단과 취향에 의해 선택한 집이라야, 그래야지만이 더 잘 살아진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는 즐거운 나의 집.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나는 나.라는 우주 안에서 내 집.이라는 우주 안에서 충분히 유영하고 완전하게 자유롭고 혼자서도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즐거운 나의 집.은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내 일상을 내 삶을 지켜 줄 거라 믿는다.


서른 후반의 나는, 공간을 가장 중요시하게 됐다.

크기는 상관 없다.


개인적 취향은 되려 작은 공간이 내게 꼭 알맞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공간이어야지만이 심플하고 단순한 내 살림들을 배치할 수 있다. 집을 내 옷처럼 꼭 맞게 느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끌리셰하지만 내 취향들과 소품들을 나만의 방식과 스타일과 개성으로 배치하고 정렬하고 놓아두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내 의식의 흐름과 방향과 속도가 달라지면서 내 삶에 필요한 살림살이들, 소품들도 그에 맞게 단순해지고 조촐해졌는데 필요한 것들만 놓아두고 불필요한 것들은 나누거나 모두 버렸다. 내 집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 마음이 설레지 않은 물건이 아직까지는 없다. 그때그때 잘도 비우기도 해서도 있다.


이런 삶을 꾸준하게 지속하다 보면 물건을 함부로 소비하는 일이 없게 된다. 결코 진중하게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고 어느새 너무도 자연스레 친환경적인, 자연친화적인 삶이 되어 버렸다는 게 맞다. 그런 일상에서 오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나무로 된 물건이나 흙으로 빚은 도자기들이 요즘 자꾸 내 마음을 훔친다. 내 살림살이를 주변인들이 보면 놀라곤 하는데, 크게 눈에 뜨이는 거라곤 2인용 소파와 베드 정도다. 이마저도 난 전혀 불편함이 없다.


새로운 가구를 사들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원래부터도 빈티지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물건이든 공간이든 자신만의 스토리와 역사가 있는 것에 홀딱 반하는 성미를 가졌다.


내 공간을 위해 내가 나름 지출하는 곳이 있다면, 조명과 침구다.


조명 하나면 어떤 공간이든지간에 그곳을 코지하게, 로맨틱하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이 있다. 조명에 신경쓰는 이유다. 침구류는 H&M홈이나 자라홈이 내게 아주 알맞다. 내 공간이 작지만 나름 코지할 수 있는 건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배겟잎이나 블랭킷, 쿠션 커버라는 생각이다.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이런 소품들의 질감이 중요하다.


공간은 철저히 나다워야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십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내 공간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그 중요성을 진작에 깨달았더라면, 그때 당시 마음 강하지 못했던, 나약했던 나를 조금 더 자주 일으켜주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 내 인생을 달려졌을까. 달라지지 않았을까. 달려졌을 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만큼. 공간이 내게 주는 그 의미와 가치는 설명할 수 없을만치 거대한 것이었으리라.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그리 살면 된다고. 나는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가 조금은 자책하고 있는 나.를 현재로 데려와 토닥인다.


결혼하게 되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공간인데 어찌 내 취향만 만고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취향을 골고루 섞어 둘 만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은 또 어떤 색다른 재미와 설렘을 줄까.


내게 집은 집이 아니라 공간이다.

1 studio.라는 말이 내겐 적확하다. 요즘 같이 부동산 부동산하는 시대에 살고 있자면 내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내 육신이 먼 훗날 흙이 되어 바람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은 삶을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로 살아갈 것이다.


공간을 내 나름대로 내 멋대로 해석해보자면,

공간은. 내 취향과 내 멋과 내 기분과 내 태도와 내 분위기와 내 철학을 담은 그릇이다.


요리할 때 행복한 사람, 내 공간을 내 취향대로 가꿀 때 행복한 사람.

요즘의 나는, 서른 중반의 나는, 나를 꽤 잘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이렇게 나도, 내 영혼도 성장하고 있구나. 나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구나.싶다.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기운은 내 삶과 일상을 완벽하게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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