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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Jun 19. 2024

현존하기

이른 아침,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다. 쓰윽 현관문을 열어 꺄악.하며 집 안으로 들인다. "반가워!" 나는 곧잘 사물들과 이야기한다. 미친 혹은 제정신이 아닌 것은 아니고 아무렴 어떤가. 모든 것은 하난데, 모든 것은 연결돼 있는데,라고 무심하게 생각해서다. 


미국에서 배송받은지라 사흘 걸렸다. 비니거는 빠지지 않고 미리 구비해두는데 아뿔싸 이번엔 놓치고야 말았다. 유기농 비니거 6개가 잘 포장돼 왔다. 흐흐^^ 싱글벙글이다. 


비니거를 요리에 빠지지 않고 넣기도 하고 좋아하는 취향이기도 해서, 비니거가 6개 정도만 찬장에 보여도 그렇게 행복한 기분일 수가 없다. 무엇이 부러울까. 부자된 기분인데, 알뜰살뜰한 기분은 덤이다.


정말이지 매일 느끼는 건, 비니거든 그게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바라볼 때, 마음 껏 취향 껏 향유할 때 부자된 기분이 든다는 건데, 여기서 말하는 부자란, 내겐 넉넉함, 풍만함, 충만함, 만족함이다. 


자기 자신에게, 자기 생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 내 기준에선 부자다. 


뽁뽁이를 뜯어내면서도 꺄하~ 올 여름 내내 아주 잘 먹겠군. 피클도 좀 만들어야겠고 샐러드도 기똥차게 만들어봐야지... 머릿 속은 쉼없이 창의적인 레시피들로 분주하다. 


내 안에 조이가 앞장서고 있다. 조이가 앞장설 땐, 새드도 분위기에 휩쓸려 어느새 조이의 오른팔이 된다. 까칠이는 왼팔이 되고 엥자이어디(불안)는 조이 등에 바짝 붙었다.  


화요일 오전, 이리도 신나기 있기? 있기.다. 나는 늘 요런 방식으로 나와 대화하고 논다. 서둘러 점심 도시락도 싸야겠다. 오늘은 요리조리 늑장을 좀 부렸더니 시간이 어느새 훌쩍 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우울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굉장히 즉흥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냥 기분이 그러하다는, 우울감이 느껴진다는 설명이 맞겠다. 다행인 건 이 감정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알아차림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내버려두는 일, 받아들이기, 수용하기. 관찰하기. 그러다 이거 안되겠는 걸? 싶을 땐 곧장 몸을 움직여 조치를 취한다. 


머리를 질끈 묶는다. 찬물 샤워를 한다. 정신이 번뜩이는 효과가 있다. 집밖을 나간다. 카페에 간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러곤, "다 놀았니?"한다. 순식간에 우울의 늪에 빠뜨리는 이 실체없는 감정에 이토록 무심하게 되었다. 뭐든 마찬가지다. 집착하지 않을 때, 마음에서 진짜 무심한 마음일 때, 외려 일이 잘 풀린다거나 해결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알아서 잘 놀다 지루하다 싶음, 지친다 싶음 간다. 


일시적이다. 순간적이다. 이런 감정과 마주하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됐다. 늘 행복한 기분일 수만은 없다.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수용하면 된다. 녹차 스무디를 좋아하는데, 녹차 스무디 한잔이 뭐일까.싶지만 이런 감정일 때 내겐 효과적이다. 


과거는 이미 없다. 미래도 없다. 지나갔다는 것과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이렇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현재의 나. 현존하는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없는 미래도 지금의 내겐 중요하지 않다. 딱히 의미있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없는데 무엇을 기대하나.싶다. 


가장 중요한 건, 현존하기. 지금 여기에 내 몸과 마음이 머무를 것. 판단하지 말 것. 이것 뿐이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 그리고 축복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나는 잊지 않는다. 


인생, 찰나다. 

비니거에서 시작된 나의 기쁨과 사색의 자유는 현존하기.로 이어졌다. 

내 사색과 사유의 시선과 높이가 자기 자신의 높이이자 내 삶의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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