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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29. 2024

삶은 살아지는 것

토요일 아침 일찍 언니네로 마실을 갔다. 사랑둥이 조카들도 진작 일어날 시간. 8시 반쯤 산책겸 읽다만 책을 읽어가며 선선한 아침 공기와 바람을 벗삼아 뚜벅뚜벅 걸었다. 프레쉬하고 시원한 바람에 감탄하면서. 언니네와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산다.


이 아침 방문은 즉흥적인 것이었는데 띵동. 모니터 너머 이모가 온 걸 알아차리곤 문이 열리기도 전, 이모이모~ 초아이모다~!!! 흥분된 조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한 행복 중 하나다.  


운동가는 조카 픽업 준비하는 사이, 삼십 분 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왔다. 토요일 아침 일찍 맞이한 낭만이었고 행복이었고 즐거움이었고 기쁨이었다. 많은 면에서 꽤 즉흥적이다. 오는 길엔 그린그린한 풍경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공원을 지났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 자연이 나와 함께 걷는 즐거움에, 깜빠뉴 딱 하나를 사러 가는 설렘에, 요거트와 딜을 넣은 드레싱에 한 입 물 상상에, 그 어느 것 하나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류시화 시인의  일화  여인숙의 주인인 어느 인도인의 " 가지에 만족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라는 말이 닿았다.  가지가 만족스러우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것도 마찬가지.    문장에서도, 정말이지 삶의 모든 순간이,   경험되어지는 모든 것들이 사색가 사유를 일으킨다.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는, 그런 류가 되었다. 일상이 깨어있음이고 수행이고 성장의 장이다. 고통과 실패, 아픔, 상처, 슬픔, 외로움 고독, 우울, 불안, 두려움... 에 단단해진다는 건, 무심해진다는 건, 초연해진다는 건 완벽한 깨달음에서가 아니라 직관적인 앎이다.


글쓰기도 삶이 되어버렸는데, 엄청난 흡인력으로 경험되어지는 것 모든 것이 글로 정화되고 표현된다. 한 줄의 문장을 쓰는데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절로 키보드의 손이 우다다닥 움직여진다는 것. 신비롭고 신기하고 신통한 일이다.


삶이 있다는 건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분명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미 죽을 것을 아는데, 무엇에 고통받고 괴로워하는가.


테이블 의자 한 개를 주문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배송이 와있다. 화이트와 핑크 중 고민했고 결국 화이트 색상으로 골랐다. 막상 주문하고 나니, 그냥 핑크로 할 걸 그랬나.싶었다. 그 기억이 선명하다. 이미 주문했으니 그냥 써보자.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핑크가 와있는게 아닌가.


어맛! 나는 외려 반가워했는데, 핑크 네가 인연이었구나! 엇, 분명 화이트를 주문했는데 내 눈앞에 핑크가 있잖아. 머릿 속으로 핑크로 할 걸 그랬나. 아주 잠깐 아쉬워했는데, 내가 원한 핑크가 와있다니.


조립할 때까지도 나는 분명 화이트를 주문했는데 잘못 배송이 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조립이 끝나고 주문내역을 들여다봤다. 핑크로 주문한 게 되어있지 않은가. 엇. 뭐지...^^ 그럴리가 없는데. 무튼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게 도착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원했던 그 물건이 내 앞에 딱 도착해 있는 상황.을 즐기면 된다.


나는 삶을 살아가는 걸까. 삶은 살아지는 걸까. 삶은 절로 펼쳐진다. 물질 이전에 의식이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나는 누구인가.라는 예리하고 꾸준한 질문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의 진리를 볼 줄 아는 것. 살아지는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만들어낸 속박과 고통과 괴로움의 근원을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해소해 나가는 것이다.


성장하고 있는가.

내 사유의 시선은 어디쯤인가.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늘 여기에 있다.

명랑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읽는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만의 언어를 가졌는가.

잘 먹고 잘자는가.  


삶은 살아지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그 삶을 사는 내가 나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와 고통의 원인은 내가 나라는 착각. 몸이 나라는 착각. 생각이 나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나는 왜 이토록 쉼없이 글쓰고 있는가. 이 또한 이유가 있겠지. 현시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날 성장하게 한다.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뒤죽박죽 소재의 자유로움과 드나듦도 이상할 거 없다. 자연스러운 방식이고 흐름이다. 그 끝엔 늘 감사함과 감탄과 감동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스무살, 혹은 서른 초반때까지만이라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내 곧 알아차린다. 이 또한 허상이라는 것을.


삶이 절로 펼쳐지는 파도라면, 나는 영원한 바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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