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마음

by Aarushi

올 여름 휴가는 혼자.이기로 했다. 결정을 내려야 할 것도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고독의 시간이,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친한 친구와 여행을 떠날까. 사람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질까 등등 만남과 소비의 유혹이 훅훅 일지만 나는 안다. 결국 혼자이기를 선택할 것임을. 그래서 다가오는 주말 그리고 휴가에 사뭇 비장하다.


며칠 전부터 족발과 인절미가 올라간 빙수가 당겼는데 주말과 휴가기간 동안 여유 있게 즐겨보기로 한다. 머릿속엔 재밌게 신나게 나답게 취향껏 보낼 것들로 가득하다. 오래전 분당에서 먹었던 붓카케 우동이 생각나 기억을 더듬어 검색해보니 아직도 있다. 간지 십년이 다 되어간다니 믿기지 않는다. 엊그제 같은데, 이토록 맛과 추억이 생생한데 말이다.


순간순간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싶은 게 지난 추억들이, 기억들이, 이미지들이, 감각들이, 느낌들이, 지각들이 꿈같달까. 분명 내가 경험한 것인데 마치 아닌 것처럼ㅡ 날 모른체 하는 듯이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 과연 실재했던 것일까.싶을 만큼 혼란스러우리만치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지난 시절이, 과거의 이미지가 기억으로, 경험으로 머물수록, 꿈같을 수록, 생경할수록, 낯설수록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없던 것이 된다.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우울했던 시절도 다 한 때였음을,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져만 간다.


어른이 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의 마음. 어리석음과 무지, 착각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 우울을 나 자신에게 다시금 겪게 하지 않겠다는 단단함. 무심함. 마음 근력을 차곡차곡 쌓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토록 삶이 순간순간인 줄, 정말이지 찰나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화끈하게. 신나게. 놀이처럼. 살았을텐데.나이 들어가며 알아가는게 많아질수록, 절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반감기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마만큼 줄어든다는 비극같은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비극과 희극은 하나다. 그러니 아쉬워할 것도 서글퍼 할 것도 없다. 삶엔 이유가 없다. 절로 펼쳐지는 것. 그러니 절로 내맡기면 된다.


찜해둔 이불, 소품이 있었는데 평일에 방문해서 사올까.등등 휴가라는 명분으로 자꾸만 이 마음, 저 마음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데, 유혹이 하나씩 올라오는데, 이내 곧 가라앉는다. 이 밤 확실해졌다. 선명해졌다. 홀로 화끈한 여름 휴가를 보내보자! 빠샤!.하고 있다.


홀로 화끈한 여름 휴가라. 순전히 내 맘대로 일텐데, 그것은 자유고 나다움이다. 휴가는 내게 더 이상 화려함이나 소비를 위한 소비, 즉흥적인 것이 아니게 됐다. 휴가는 늘 내 일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휴가는 내겐 특별함보단 평범성이다. 그래서 홀로 보낸다는 건 내겐 고독의 시간이자 알아차림의 시간이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내 몸이 나인가. 사색은 어느 덧 나와 하나가 됐다. 절로 그리되었는데 신기할 노릇이다. 사색과 사유가 일상이 되었단 건, 하나가 됐다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내게 유리하다.


불현듯 인다. 그 생각이 내가 아님을 알면서도. 문득 이렇게 살다 죽는걸까. 이렇게 살다 죽으면 어떡하지? 정말 나중에는 완전하게 홀로이면 어떡하지? 정말이지 쓸데 없는, 부정적인 생각의 회로들이 뇌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감싼다. 불안감에 몸서리칠 때가 있다. 알면서도 어찌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그러면 그 마음을 저항하지 않고 바라본다. 알아차린다. 그 마음은 사라지고 마는데, 사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내 안의 깊은 심연으로 푹 내려놓는 일이다.


집착하지 말자. 시시로 수시로 거는 마법의 문장인데, 두려움과 불안이 설 자리가 없음을 알 때, 비로소 진짜 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을 가지지 않아도, 어디어디에 살지 않아도, 무슨 차를 타지 않아도,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빛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휴가의 마음에서 인 사색의 과정이 글쓰기를 통해 요로코롬 드러났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에 동의하는데, 지난 번 처음 본 동갑내기 친구가 스치듯 읽은 내 글을 읽고 난 뒤, 말을 걸어왔다. "글을 통해 너란 사람이 보였어. 어떤 사람일지 그려졌어."


이따금씩 나도 지난 내 글들을 쭉 읽어 내려갈 때가 있다. 어맛. 내가 이런 문장을 썼단 말이야? 꺄악.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데, 자아도취가 아닌. 어떨 땐 이 글쓴이가 나란 말인가?하는 의뭉스러움에 가깝다.


내 글을 읽어내려갈 때면 가끔은 정말이지 좋은 사람인 것 같다.싶을 때가 있어서인데, 정말이지 내 바람은, 내 글처럼 나도 따뜻한 사람이길, 좋은 사람이길, 상냥한 사람이길 하는 것이다. 어떨 땐 글이 날 닮는 것 같기도 내가 글을 닮는 것 같기도, 결국 하나다.


올 여름 휴가 기간 동안, 난 또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까.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휴가라고 별 거는 없다. 별 다를 거 없다. 굳이 색다를 것도 유별날 것도 없다.


펼쳐지는 대로 재미난 일이 펼쳐지면 펼쳐지는 대로 또 예상치 못한 파도가 일면 파도가 이는 대로 나는 그렇게 파도를 탈 것이다.


어떤 파도를 만나도 결국엔 사라질 것임을, 잔잔해 질 것임을, 결국 다 같은 바다임을, 바다 속 심연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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