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마음

by Aarushi

새벽배송으로 주문한 커피가 집문 앞에 도착해있다.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열었다. 사각 박스가 하나 있는데 앨범, 서류, 여권, 편지 등등 잡동사니를 한데 정리해 넣어놓은 박스다. 여권을 발견하고선 참, 여권을 갱신할 때라는 문자를 받은 지가 몇 개월째인데 깜빡 잊고 있었다. 내게 여행이란 다소 즉흥적인 것. 언제 떠날지 모르니 여권부터 갱신해야겠다.


문득 여권을 발급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비행기를 타봤고 이십대 중반 광화문 직장인 시절,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으니, 찰나다. 지난 시절 모두 꿈같다. 정말이지 꿈이었을까.


광화문 직장인 시절, 점심시간을 쪼개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가로 지르던 내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종로구청에서 발급받았는데 십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생경하다. 낯설다.


곧장 휴가를 내고 윤주 언니와 떠난 5박 6일의 오키나와 여행. 그때의 초아는 지금의 초아의 모습을 알고 있었을까. 오키나와 어느 해변을 찾아가는 길에 한적한 오키나와 시내 버스를 타고 앞 뒤로 몸을 돌려 앉아 1시간 내내 대화를 나누던 그 모습이 생생하다. 기억하는 건, 언니와 나는 그 시절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물 여섯. 오키나와 여행은 내겐 초콜릿처럼 달콤했고 순수했고 맑았던 나를 만나게 한다.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설렘인 건 무얼까. 여행이란 이런 것. 여행도 자연처럼 말이 없다. 늘 그 자리에서 그 기억으로 머문다.


그러고보니 해외여행을 가지 않은지 몇 년 되었다. 삼십대 초반, 그땐 왜 그토록 여행을 떠났는지. 지금은 잘 안다. 어떤 도피처로서의 위안로서의 여행이었단 걸. 다시 떠나게 되면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 여행 그 자체를 즐길 것이다. 여행은 한 발자국 물러나 숨쉬는 어떤 도량같은 것이기도 하다.


오늘 언니네 가족은 엄마가 있는 제주도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나도 곧 휴가인데 훌쩍 어디론가 떠날까. 그동안 자주 못 만났던 친한 친구들을 만날까. 설렘도 있고 평온함도 있다. 이러다 백팩 하나 메고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가 당일치기로 놀다올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에서도 즉흥적인 성미는 변함이 없다.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의 마음이 있다.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계획하는 일보다 삶에 내맡기는 편이 내겐 훨씬 이롭다는, 유리하다는 생각에서다.


누군가가 살아가는 마음을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내맡김. 펼쳐지는 대로. 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껌뻑일 때 번뜩일 때가 있다. 꺄악. 생각보다 내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구나! 이제 곧 마흔인데, 유한한 삶에서 나는 어떻게 살다갈 것인가. 살다가고 싶은가. 이대로는 아니 되겠다.며 이불을 박차고 씩씩하게 나오곤 한다.


삶이라는 파도 위에 두려움이 아닌 무심함으로 파도 타는 법을 익혀가는 소녀를 통해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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