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는 공원에 앉았다. 늘 그렇듯 책 한 권을 끼고 벤치에 앉았다. 책은 틈날 때 절로 손이 간다. 읽고 싶지 않으면 곧장 책을 덮기도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도 테이크 아웃했다. 지금 하나 있는 텀블러는 용량이 작아서 이럴 땐 조금 불편한데, 반은 그 자리에서 잠깐 마시고 오고 남는 걸 텀블러에 담아 온다. 아니 되겠다. 큰 용량의 텀블러 하나를 사야겠다.
며칠 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처럼, 마법에 걸린 것처럼 며칠을 꼬박 앓았다. 마음의 문제였던 터. 다시 기운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의 앓음이었달까. 며칠 전부터 온 몸이 찌뿌둥하면서 무거워지더니 몸도 마음도 훅 가라앉았다. 다행히 며칠 새 기운을 차렸고 맑게 개인 눈으로, 몸과 마음으로 다시 여느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미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너무도 자연스런 당연한 여름의 소리다. 작고 햐안 나비가 내 주위를 맴돈다. 지난 번에 만난 나비일까. 늘 반갑다.
공원 저 멀리에선 아이들이 초록의 테니스장 안에서 공을 힘껏 차고 있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걱정없다. 염려 없다. 비를 피하든지 비를 맞든지.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집을 나오면서 이것저것 평소 마음이 가지 않던 물건 몇 개를 버리고 나왔다. 개운한 느낌인데, 불필요한 혹은 나와 기운이 맞지 않는 물건들을 비우는 일은 기분을 정렬하는데 효과적이다.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나는 이토록 충만함을 느낀다. 나도 자연이라서일까. 나와 자연은 하나라서겠지. 오늘은 무슨이유에서인지 하와이가 가고 싶어졌다. 하와이 자연 안에서 거니는 나의 뒷모습, 명상하는 나의 모습이 절로 펼쳐졌다. 이 또한 다 이유가 있겠지싶다. 하와이를 언젠가 꼭 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귀가 먹먹해질만큼 아파올만큼 거셌던 매미소리가 문장 몇 개를 써 내려가는 사이 잦아들었다. 이를 알아차리는 새 금세 또 거세지는 건 또 무엇.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한다. 관찰해보니 본래 거셌다 잦아들었다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알아차리는 나 또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가 있을 뿐이었다.
비가 올락말락하는 그 어둠, 바람, 공기를 사랑하는데 지금이 딱 그러하다. 노트북을 꺼내 벤치에 앉아 글쓰고 있는 사이 아주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모니터와 키보드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개미도 나도 만물은 다 하나다.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어느 것 하나 쉬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도 소중하고 너도 소중하고 너도 소중하고 나도 소중하다.
모니터 화면에 빗방울 하나가 똑 떨어졌다.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재밌다. 내 생각과 감정과 기분이 내게 일어난 일련의, 하나의 사건이라는 걸 인식하면 삶이 하나의 체험처럼 느껴진다.
이전의 나는 스무살, 서른 초반까지만 해도 인생을, 삶을, 왜 그토록 거창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힘빼고 살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또한 이미 기억일 뿐, 실체가 없으니 그 아쉬움도 후회도 소용없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하늘은 또 어쩜 이리도 푸를까. 흰색과 파란색이 적절히 섞인 파스텔 블루. 하얀 솜사탕같은 뭉게구름은 또 어쩜 이토록 하얀지. 뭉게구름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뭉게구름이 느리게 조금씩 퍼져나간다. 자연을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은 말이 없다. 인간처럼 판단하거나 왜곡하거나 착각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다. 자연과 가까이 하면 할수록 자연과 닮아감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늘 내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며칠 새 몸과 마음이 무너짐과 일어섬을 반복했는데 이 또한 거부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도 나고 저런 모습도 나다. 사실 그 모습들 조차 진짜 나인 것은 아니다. 며칠 가면 며칠 가는대로 받아들이면 어느새 먹구름은 걷히고 본연의 파스텔 블루의 맑은 하늘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알아차리면 된다.
내게 깨달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알아차림이다. 목이 말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했고 목을 축였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꺄하.하는 순간도 내겐 행복이다. 공원에 앉아 나비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내겐 행복이고 자연에 둘러싸여 글쓰기를 하는 것도 행복이고 책 한 권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행복이다.
살면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무엇이든 집착하면 할수록 내게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집착은 두려움과 불안, 괴로움을 낳는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이토록 많아서야 싶지만 이 또한 다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에 겸손해지고 숙연해진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멀어진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다.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절로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