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유선 이어폰을 샀다. 만족스럽다. 오는 길에 성시경의 뜨거운 안녕을 들었다. 대학생이던 때, 직장인 시절, 연애할 때도 자주 들었던 노래다. 결국엔 성시경과 김동률의 노래로 돌아온다. 퇴사 후 곧장 스페인으로 한 달 여행을 떠났다. 세비야로 향하는 렌페 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텅빈 평원 위 올리브 나무 하나를 바라보며 김동률의 출발을 들었다. 그때 너의 다짐은 유효한거니?
벌써 십 년이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게 바로 세월이구나. 결코 붙잡아질 수 없는 찰나구나. 구름같은 거구나.
키보드를 켜다 양 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손도 왜 안변하겠는가. 주름도 보이고 핏줄도 유난히 굵어보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신기할 노릇이다. 세상이치란 경험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신비하고 경이롭다.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그러니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체험하라.는 말이 내 안에서 인다.
이 손이 나인가. 또 요로코롬 절로 인다. 주의를 돌려 눈을 감았다. 출근도장 찍듯 버스에서 내려 곧장 이곳 공원으로 왔다. 내가 들르는 이 시간엔 사람 한 명 없다. 정말이지 오직 자연과 나 뿐이다. 어제 큰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녔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나비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맴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다시 일으켜보니 순전히 내 입장에서 한 얘기 아닌가. 나비는 제 갈 길을 가는 것 뿐인데, 인간이 제 멋대로 해석한 걸 보면 어쩌면 나비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무튼 나비와 하나이고 싶은 내 바람이리라.
방금 바닥을 보다 뭉뚱한 나무 하나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바람에 날리는 건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벌레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재밌게 지켜보는데, 이런 작은 움직임에도 사색이 인다. 낑낑대고 있는 듯 보이나 실은 그 벌레 입장에선 낑낑대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늘 하는 자기 일일 것이고 삶 자체일 것이다. 벌레 한 마리의 삶에서 인간의 삶으로, 나의 삶으로 스크린이 전환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 누가 뭐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삶을 사는, 자기 생을 사는 세상 만물이다. 그러니 서로 싸우려, 논쟁하려, 미워하지도, 날카롭지도, 예민할 것이, 화낼 것이 무엇인가.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유한한 삶이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이, 깨닫게 된 것들이 많지만, 치열하게 얻어낸 이 지혜와 앎을 나는 결코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실천하는 지혜가 내게 의미있고 유익한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라. 사람을 용서하라. 나에게 친절하면 타인에게도 친절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타인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다.는 진리를 나는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근원적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의 삶일 것이다. 깨달음은 내게 어떤 깨우침이나 신비롭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일 뿐이다. 직관적인 앎으로 인한 내면의 확장. 관점과 인식의 대전환에 나를 내맡기는 일이다. 깨달았다는 건 내겐 깨닫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겸허하게 겸손하게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하나로, 소중히 바라봄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가 알아차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나는 누구인가. 거듭 일으켜보면 어느 순간 순수한 본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일초 전의 내가 나인가. 어느 것도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디에 사는 나도, 어떤 차를 타는 나도, 어떤 옷을 입는 나도, 어떤 직업을 가진 나도, 내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일 뿐. 가진 것은 사라진다. 매일, 하루에도 수천 번은 나는 죽음을 기억한다. 나는 사라질 자라는 걸. 그러면 사특한 생각이나 이미지, 감정과 태도는 자취를 감춘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것이다. 마음과 싸우지 않는 것. 마음도 알아차림의 작용이라는 것. 마음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은 스크린이라는 하얀 도화지 위에 뒤죽박죽 흩뿌려진 물감과도 같은 것이란 걸, 영상과도 같은 것이란 걸, 그 영상이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출 때, 비로소 하얀 도화지 위 진짜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찾는 것이 아니란 걸. 절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토록 기가막힌 원리로 나와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받아들이기란 여간 쉬운게 아니다. 현실세계가 내 앞에 펼쳐져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앉은 의자, 가방, 핸드폰 모든 게 다 실재하는 것 아니냐.하는 의문에서부터 갖은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진실을 진실이라고 보지 못한다.
내 의견은 과연 진실인가. 내 의견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 걸.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직관적인 앎과 지혜. 진실을 보게 될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인식의 전환이 온다.
언제부터인가 내 글쓰기는 이런 방식으로 끝맺음이 된다.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닌데 늘 그렇게 된다. 그럴만 하니까 그러는 것이구나.한다. 내 사색과 사유가 이곳으로 집중되어 있구나. 그대로 바라보면 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불안해하지 말자.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양이 있으니 음이 있다.는 걸 오늘도 잊지 않는다.
나는 분명 사라진다. 그러니 더는 내가 아닌 생각들로 나 자신을 파괴하지 말자. 갑자기 보슬비가 내린다. 집에 가는 길이 아니라 비를 피하기로 한다. 보슬비도 소나기도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없다. 반응하는 나의 문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