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의 기쁨

by Aarushi

며칠 전 스치듯 지나간 글에서 새소리가 들리는 집은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 침실이 그렇다. 새들의 지저귐이 늘 내게 말을 건다. "초아야, 좋은 아침!!" 내가 그러하듯, 새들도 나도 너와 하나야. 모든 것은 다 연결돼 있어. 너와 나는 다르지 않아.라고 얘기해주는듯하다.


침실엔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엔 거실에서 잔다. 매트리스를 왔다갔다하는 일이 조금 버거운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으챠. 힘껏 부지런히 침실에 갖다 놓는다. 여느 날 처럼 제일 먼저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청소기로 민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레 청소를 시작한다.


요것 저것 모아 색깔별로 빨래를 돌린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는 늘 정겹다. 무슨 이유에선지 세탁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살아있는 느낌이랄까. 삶을 사는 느낌이랄까. 햇볕에 바싹 말리는 수건, 옷의 텍스처를 선호하는데, 탈수된 빨래를 탈탈 털어 널 때, 햇볕과 바람에 크래커처럼 바삭바삭 바스락하게 바싹 말려진 옷가지들을 가지런히 개어 놓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점심으로 강황솥밥에 삼겹살을 마리네이네드해 굽지 않고 쪘다. 깻잎에 싸서 그럴싸한 점심을 했다. 커피 한 잔에 침실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 베란다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써큘레이터 돌아가는 소리, 한 눈에 들어오는 단출하지만 깔끔한 내 살림살이. 모든 것이 조화롭다. 내겐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아무 것도 걸림이 없는 상태. 무조건적인 행복.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한가.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상태.


그러니 내게 행복이 조건일리가 있나. 행복은 절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걸 인식하면 순간순간이 즐거움이고 기쁨이고 기적이고 행운이고 감사함이다. 삼겹살 쌈에 청양고추 한 입을 베어무는데, 꺄악. 행복해.한다.


8월 한 달의 폭염 뒤엔 차가운 계절이 오겠지. 가을이 짧아진 걸 보면 가디건 입을 겨를 없이 금세 겨울이 찾아올텐데. 새삼스레 옷가지들을 꺼내어 정리했다. 니트도 색깔별로 잘 개어 놓고 아하, 지금 이런 옷들이 남았구나.쓰담하기도 하면서 더는 입지 않는데 두고 있는 건 없는지 둘러본다.


무언가를 비우는데 미련이 없는 편이다. 채우는 기쁨보다 비우는 기쁨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빨래를 널다 스커트 하나 밑단에 실오라기 하나가 보여 가위로 자르려다 균형을 잃으면서 아주 살짝 보일듯말듯 구멍이 났다. 꺄악. 내 취향인데다 자주 입는 롱스커트라 순간 뜨악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 꿰매야지. 꿰매면 될 일이다. 색깔이 같지 않은 실이어도 아무렴 어떤가.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바늘에 실을 꿰어보는군 싶은것이. 외려 재밌게 됐다.


이런 차제에 옷정리하다 겨울 니트 조끼 오른쪽 어깨 부분에 실밥이 풀려 꼭 엄지손가락만하게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걸 발견, 요것까지 바느질을 해보기로 한다. 반짇고리사러 나가게 됐다. 몸도 움직이고 여러모로 오케이. 일요일 오후. 이토록 사건이, 일상이, 스토리가, 삶이 절로 펼쳐졌다. 내가 한 것이 있는가. 내가 일으킨 것이 있는가.


커피 한 잔이 이토록 달콤할 수가. 스위트 아메리카노 한 잔에 더위를 날려본다.


분리수거나 쓰레기도 그때그때 휘리릭 버린다. 나가면서 분리수거를 착착할 때 그 개운함이 좋다. 사특한 생각까지 확확 비워지는 느낌이다. 내가 사는 집이, 살림살이가 한 눈에 들어와야 편안함을 느낀다. 단출하기도 하고 심플하기도 하고 웬만해선 같은 용도인 게 둘인 것이 없고 콤팩트하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찾을 수 있고 편리하다. 물건 찾는 일에, 무얼 쓸까.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물건이 간소할수록 가진 것이 적을 수록 외려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건, 내 생각과 감정도 간소해지고 깔끔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 청소는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하는 것이다. 주말에 필 받으면 평소보다 시간과 정성을 좀 더 들이는데, 청소해 놓은 집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그 다음은? 무얼하지?싶으면서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몸을 움직여 무엇이든 할 생각이 든다.


지금 사는 집은 작다. 혼자 살기엔 최적인데, 내 행동반경도 크지 않거니와 무얼하든 집 안에서의 에너지 소비가 적다. 청소하기에도 얼마나 좋은지. 만족스럽다. 사실 집이 작다 크다도 기준이 없다. 집도, 방도 내게 알맞는 것이어야 한다. 이건 이래야 돼. 저건 저래야 돼.라는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남들에겐 당연한 일이 내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을 비트는 일이 내겐 익숙한데, 한 생각 일으켜 나답게 살면 면 되는 일이다.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작아도 좋을만큼, 그런 의미에서 내 집은 작지 않다. 내 공간은 철저히 나다워야 한다. 내 몸과 마음, 정신이 머무는 곳인데 내 기운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데, 내 공간을 좋은 기운으로 채우려면 잘먹고 잘자고 정리정돈 잘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집이 편안해야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도 생긴다. 일장춘몽처럼 지난 세월이 꿈같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서른 후반, 마흔이 곧장 체험될까.싶은 마음에서일까. 꽤 오랜시간 날 괴롭혔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와 집착도 어느 순간 너무 희미해졌다. 희미해졌다는 설명이 맞는 것이. 뿌연 연기처럼 선명하지가 않다.


오직 순간순간을 체험하고 있을 뿐. 그 어느 누구도 날, 내 인생을 판단할 수 없다. 삶이란, 인생이란, 판단될 수 있는 것이,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절로 펼쳐지는 것이 삶이라면 그 어떤 것도 문제되는 것은 없다. 나도, 너도, 우리는 그 자체로 온전하다. 문제가 없다.


일요일 오후 청소를 하다 말다 한 생각이 일으키니 글쓰기 하나가 드러났다. 한 생각 일으키면 무얼하다가도 절로 손이 키보드로 가진다. 이미 가있다. 그렇게 짧은 시간내 몰입하고 나면, 글쓰기 전보다 몇십 분 전보다 훨씬 더 맑고 순수한 세상이 보인다.


글쓰기 마치고 나면, 휴대용 반짇고리 하나 사러 가야지. 단출한 살림살이를 선호하니 웬만해선 무엇이든 작은 게 좋다. 반짇고리부터 하나 사고 오는 길에 저녁거리장도 보면 딱이군.!


오늘 저녁, 무얼 만들어볼까나.

"초아야, 오늘은 뭐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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