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되는 대로

by Aarushi

즉흥적이었다. 에코백에 지갑, 이어폰, 얇은 책 한 권만 달랑 들고 마치 동네 마실 가는 마음으로, 그렇게 집을 떠났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집을 나서고 나서야 앱을 켜고 고속버스 티켓을 예매완료했는데, 급할게 없어서였다. 놓치면 뭐 놓치는 거지. 놓치면 오늘 갈 일이 아닌가보지. 가다 되돌아오면 되지 뭐. 이토록 무심한 마음이었다.


버스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면서도 잔잔한 룰루랄라.의 마음이 지속됐는데 고속터미널이든 기차역이든 공항이든, 여행은 설렘 그 자체다. 토요일 나홀로 여행의 도착지는 대전이었다. 왜 문득 대전을 선택했을까.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니 이 또한 다 이유가 있겠지.였다. 꽤 오래전 대전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도시 인상이 좋았다. 도로도 깨끗하고 깔끔하고 여유로웠다.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당일치기 그리고 내가 그 도시에 머무는 시간이란 고작 6시간 남짓일거라는 것만 확실했다. 대전을 당일로 갔다 오자는 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건 전혀 아니었다. 고속버스타고 가도 한시간 반 남짓 정도 거리였음 하는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 도시가 최적이었던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거나 우울해질 때 나는 몸을 움직이거나 환경을 곧장 바꿔버린다. 장소마다 도시마다 기운이 다 다르다. 장소를 옮겨, 여행을 떠나 기운을 순환시키고자 하는 것, 낡은 에너지를 새로운 에너지로 리프레시하고자 하는 게 크다. 효과 있다.


한 시간 반 남짓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 내려서는 즉흥적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걷다 내 취향의 카페라도 발견하면 달달한 아이스 카페라떼로 목을 축이면 된다. 내겐 여행이란 이토록 사소하지만 낭만적인 류다.


이번 여행의 제목은 되는 대로.였다. 정말이지 내 마음이 뭐 되는 대로.의 마음이기도 했고 별 다른 목적없이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 기운의 순환, 이 좋은 날씨에 집에만은 있을 수 없지.하는 마음이었다.


고속버스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고속버스 탈 때 우등 2번과 3번 좌석을 선호하는데, 앞이 확 트인것이 가는데 덜 지루하게 느껴진달까. 옆 창밖을 보는 것보다 훤히 트인 버스의 앞 창을 보며 가는 게 사색에, 한 생각 일으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톨게이트를 지날 땐 목적지에 대한 설렘과 함께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앞에 서는 느낌이다. 어떤 것도 계획된 게 없는 상태였지만 걱정될 건 하나도 없었다. 되는 대로. 도착해서 구글맵을 켜면되고 걸으면 되고 이 방향이 아니면 저 방향으로 가면 되고 그래도 정 모르겠으면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되고.


돌아오는 버스표도 끊어놓지 않았다. 둔산동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야지.하는 것만 확실했다. 대전청사에서 내렸다. 구글맵으로 갤러리아 타임월드를 검색해 걸었다. 이십여분이면 도착했다. 이 주변에서 혼자 재밌게 놀다가면 되겠군^^ 자라도 있고 나이키 매장도 있네 둘러봐야지. 꺄악.이랬다.


낯선 곳에서 이방인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방인이라는 게 외려 자유로움을 가져다 준다. 이곳저곳 걷다 자라 매장에 들렀다. 마침 세일 기간이라 도톰한 겨울 목도리 하나를 샀다. 세일해서 2만원이 넘었는데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에 계산을 했다. 바코드를 찍은 직원분 왈, "이거 세일 더 들어가서 9,900원이에요."하는 게 아닌가. 꺄악. 나는 신이나 했는데 요로코롬 이런 류의 소비가 날 행복하게 한다.


하루에도 꺄악.을 도대체 몇 번이나 하는지. 세보진 않았지만 스무번은 족히 하는 듯하다. 꺄악.은 감동과 감탄과 감사의 지극히 자연스런 발현이다. 한 층 내려가면 자라 남자옷 매장이 있다. 옷들을 둘러보다 루즈한 니트 베스트가 있었다. 겨울 옷인 것 같은데 여름에 입어도 전혀 상관없을 것이라 판단, 게다가 세일해서 15,900원이었다. 내 취향의 것이었고 꺄악. 요거다.며 계산을 했다.


패션에 관해서, 유행없이 사는 사람인데다 지극히 내 취향의 옷들로, 내 체형에 맞는 옷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여자옷 남자옷 크게 가리지 않고 디자인이 딱 마음에 들면 남자옷도 상의 S나 M사이즈로 살 때가 있다. 사실 여자옷 남자옷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 기준은 또 무엇일까.


그 사이 밖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는데, 내가 밖에 나갈때쯤 그때도 비가 온다면 조금 기다리거나 정 안되겠음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를 사면 되겠고. 이토록 무심하고 계획없고 대책없는 듯 하지만 내 안에선 이토록 평화로우니.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아.의 마음이 되는 대로 나홀로 여행을 이토록 안정적이게 했다.


배도 고프고 무얼 먹을까.에서부터 카페는 어디로 가볼까나. 하하호호. 여유로운 마음에 입꼬리가 실룩. 미소가 실실 나왔다. "아니, 정말이지 어쩜 이렇게 재밌어? 이토록 혼자인데 어쩜 이렇게 좋아? 난 나랑 노는게, 혼자 노는게 제일 편안하고 즐거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후 5시가 좀 안되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아까 왔던 그 길을 더듬어 걸어가며 가는 길에 버스표를 예매했다. 이번에도 우등 2번 좌석으로 예매 완료! 버스 안이 시원하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을 빠져나오면서 "오늘 하루 어땠어? 넘 좋았지!. 이제 집으로 가는구나! 짧았지만 결코 짧지 않았어. 내 안은 즐거움과 낭만으로 가득했거든. 잘했어. 오늘 이렇게 오기 너무 잘했어."

길든 짧든 국내든 해외든 이 동네든 저 동네든 기존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여행이 아닐까. 한 자리에 머무는 것보다 몸을 움직여 여기저기 이 동네 저 동네 안가본 길을 걷는 것도 여행이다. 이곳에선 이 마음이었는데 자리를 옮기니 다른 곳으로 가니 이 마음이 금세 저 마음이 될 때가 대부분이다. 한 생각 일으켜보면, 기운의 변화다. 어떤 장소에 있는지에 따라서도 내 감정과 기분이 달라진다.


토요일 이토록 즉흥적이었던 되는 대로.의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낭만적이었다. 자꾸만 침잠하려드는 마음과 싸우지 않았다. 마음과 싸우는 대신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주었다. 대신 내 몸을 움직였고 모르는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집을 떠나는 순간 이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음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오늘 하루 네 마음대로 해. 이젠 곧잘 알아차리는 걸! 어떻게 하면 네가 행복한지 이젠 잘 아는 듯? 오케이 오늘은 내가 이만 물러날게. 잘 갔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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