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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07. 2024

광화문 그리고 인연

뚜벅이다. 완전하게 운전하지 않은지 3년이 됐다. 걷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사실 불편할 때라곤 장 볼때, 부피감 있는 물건을 살 때, 드라이브 나가고 싶을 때밖엔 없다. 그런 마음도 어쩌다라서, 뚜벅이의 기쁨이 있다. 뚜벅이 생활을 즐길 줄 안다.


주로 걷거나 버스를 타는데 꼭 맨 뒷자리 가운데에 앉는다. 맨 뒷좌석에서 버스 안이라는 공간을 넒게 바라보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너른 시야가 주는 그 특유의 감성이 있다. 나는 사소한 것에도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데 즐거움과 기쁨이란, 설렘이란, 내겐 낭만과 동의어다.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카페에 들러 잠시 멍하니 창밖너머 풍경을 바라보다 가고 싶은 마음에서였는데 희한하게 카페에서 잠깐이라도 노트북을 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내 글쓰기는 또 시작됐다.


날씨가 화창했다 지금은 또 우중충하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는, 즐겨듣는 노래 중 하나는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인데ㅡ 희한하게 이 노래만 들으면 오히려 에너지가 차오른다. 노래도 인연이다. 나와 기운이 잘 맞아서겠지.싶다. 이별노래지만 이별노래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너에게 간다.가 꼭 연인에게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도, 나 자신에게, 너에게 간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이어폰을 꼈다. 이 노래 하나에 내 마음이 촉촉해졌다. 이토록 감성적일 수 있는 건, 아직 내 마음이 이토록 촉촉하다는 거겠지. 확실히 감성적인 사람이 맞다.는 생각까지.


가끔 지나간 추억들이 기억들이 치즈 케이크 한 조각처럼 딱 그렇게 조각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연결된 게 아닌 조각조각들. 그럴때면 정말이지 과거는 존재하는 것일까. 단지 기억일 뿐이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러니 과거에 머무르는 건, 과거를 붙잡고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소용없는 일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어릴적부터 가장 좋아하는 동네가 광화문이었다. 나와 기운이 잘 맞는 게 아닐까. 스무살 때부터 느끼곤 했다. 대학생 시절엔, 스터디가 끝나고 집에 가기 전 꼭 광화문 교보에 매일같이 들렀다. 약속도 꼭 광화문에서만 했다. 편안해서였고 익숙해서였겠다.


대학생 시절 광화문 사거리 일민 미술관 위 휘황찬란한 전광판을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걷던 일, 그러면서 언젠가 광화문 직장인이 되어있겠지.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는데 결국 그리 되었었다. 직장생활도 그곳에서 했으니 지금은 거리적으로 멀어진 광화문 동네가 여전히 생각나고 그립고 때론 아련하고 아늑한 것도 당연한 것이겠다.


그래서 지금도 약속이 있으면 광화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주 좋았던, 행복했던,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의 초아를, 나의 소녀 시절을 만나고 싶은 걸 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학생 시절이던 때 자주 갔던 카페가 나무 사이로.였다. 지금과는 장소도 분위기도 확연히 다른 모습인데, 경희궁의 아침 안에 있는 코지한 느낌의 작은 카페였다. 너른 창이 있는 포비도 자주 가는 편이다. 특히 비오는 날의 그곳을 좋아한다. 지난 가을 비오는 어느 날, 동기 이슬이와 창가에 앉아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 너무 행복하지 않아? 누구와 함께 하느냐.도 정말 중요해. 그치?"하며 낄낄 껄껄 하하호호 웃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얼마 전 여의도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는데, 오래된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그렇다. 자주 보지 못해도 만나면 전혀 낯설지 않고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고 그렇게 반가울 수 없는. 스물 다섯ㅡ 우리의 모습은 늘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 시절의 나를, 소녀라고 표현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린 소녀였다. 아직 소녀였다. 변한 건 무엇일까. 우린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지금도 나는 자부한다. 여전히 소녀같은 모습이 있다고. 나이들어도 내면의 순수함만은 간직하고 있다고, 내면의 순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길 하는 바람이 있다.

  

조만간 광화문을 다시 찾아야겠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따뜻해지는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곳이 있지 않나. 내겐 광화문이 도량이라면 도량이다. 이십대 중반 사귀던 남자친구가 교보문고앞 혹은 회사앞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던 , 서촌으로 훠궈를 먹으러 가던 , 손잡고 함께 청계천 거리를 걷던 , 동기들과 본점  호프집에 앉아 맥주   마시며  시절 애환을 달래던 ,   없을 만큼 기억의 조각조각들이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광화문 사랑은 변함이 없을  같다.


광화문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건가. 기회가 되면 꼭 그래야지.싶을 만큼 내겐 유난히, 희한하리만치 남다른 곳이다. 나와 분명히 인연이겠다.


사특한 생각 없이 한 생각 쭉 따라오니 이렇게 광화문 사랑, 예찬의 글이 되어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너무도 자연스런 내 사유의 내 사유의 흐름인 것을.


곳곳에 나의 지난 시절, 소녀 시절, 아름다웠던, 순수했던, 찬란하고 눈부셨던 시절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건, 또 그걸 생생하게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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