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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08. 2024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길

어제 아침부터 몸이 안좋은 것 같더니 오후엔 집에 당장이라도 가서 눕고 싶을만큼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열도 나고 목도 따끔하고 몸과 마음 모두 훅 가라앉았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집에 빨리 도착하자.는 마음밖에 없었다. 낑낑대며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입맛도 뚝 떨어지고 저녁도 거르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이럴 땐, 세수고 샤워고 뭐고 문제가 아니다. 


일 년에 꼭 한 두번은 하루 끙끙 앓곤 하는데, 이번이 올해 두번째다. 끙끙 앓다 잠이 들었다. 눈떠보니 아침이다. 경험적으로 이렇게 새벽 내내 끙끙 앓고 난 뒤 아침이면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면서 개운해지는데, 다행히도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다. 아직 몸살기운이 남아있는데 오늘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다. 


아마 지난 주 겪은 스트레스와 몸상태 여러가지가 겹쳐 일어난 것 같다. 스트레스가 이토록 치명적인 이유는 감정이 내 몸상태로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한 감정이면 내 몸도 행복하다. 내가 우울한 감정이면 내 몸도 우울해진다. 어김없다. 부정적인 감정과 무기력과 우울은 하나다. 


녹두삼계죽을 포장해왔다. 기운을 차려야겠다.는 의지와 이럴 때 일수록 더욱 잘 먹고 잘 잘자야 한다는 걸 알기에, 한 그릇 뚝딱 비웠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소파에 앉아 있기가 힘겨워 침대에 잠시 누웠다. 천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껌뻑껌뻑.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치 텅빈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십여분 있었다. 몸은 힘들지만 일년에 한 두 번 꼭 이렇게 찾아오는 감기 몸살을 나는 반기는 편이다. 끙끙 앓은 뒤 푹 자고 일어나면 회복되는 과정에서 평소보다 더욱 기운이 펄펄 날 때가 있고, 이것은 내게 어떤 신호가 아닌가. 내 안을 들여다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특히나 생각이 많을 때, 고민이 많을 때, 선택을 못내리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때, 꼭 이렇게 아프기 시작한다. "똑똑, 기운내! 계속 이렇게 살테야? 계속 주저할거야? 넌 변화를 원하고 있어? 무얼 망설이는 거니? 이건 네가 생각한 게 아니잖아? 이런 모습을 원한거야? 넌 할 수 있다구!" 정말이지 내 안의 울림이 인다. 내 안의 목소리가 어떻게서든 날 포기하지 않는다. 


간밤 열도 펄펄, 근육통에 끙끙 앓고 난 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핼쓱해지긴 했어도 피부도 엄청 맑아져있다. 깨끗해져있다. 눈동자에도 열감이 느껴지긴 하나 내 눈과 시야, 뇌가 완전하게 맑게 갠 느낌이다. 맑아보인다. 선명해진다. 그 기분이 일어서게 한다. 내게 다시 용기를 준다. 

 

몸과 마음 다시 리셋된 기분이다. 마치 로보트가 새로 태어난 것처럼. 사특한 생각과 에너지, 감정들도 완전히 사라지고 달아난 것 같은 그 기분. 틀림없다. 


다시 몸이 살만하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집중도 더 잘 된다. 이렇게 꼭 아프고 나서야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고양이 그립톡이 있는데, 평소 버스 맨 뒷자리 가운데에 앉는 편이라 내릴 때 조금은 힘을 주며 내려와야 한다. 평소처럼 내리려는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는데 뭐가 없어 그냥 내렸다. 내리고 나니 그립톡이 사라졌다. 뒷좌석에서 내리려고 내려오다 훅 떨어졌나보다. 몸이 아파서기도 했고 이왕 벌어졌으니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희한한 건, 어제 아침 문득 그립톡을 바꿀까. 그립톡이 외려 불편하게 느껴져 떼고 싶은데, 케이스와 딱 붙어있어 케이스를 새로 바꿔야하는 것이었다. 그립톡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마음이 순간 일었던 기억이 선명한데,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알았는지. 결국 그립톡이 의도하지 않게 톡하고 떨어졌다.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나의 경우 다르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 또한 그러려니 그랬겠지.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다는 것. 생각을 정말 긍정적으로 해야해! 혹은 마음을 예쁘게 먹어야 돼!.하고 알아차리는 이유는,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건, 생각이 내 현실의 반영이라는 걸 이런 방식으로 시시로 수시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떨 땐 소스라치게 놀랄만큼, 내 생각이 그대로 현실에 펼쳐질 때면, 절대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뿐더러 좋은 마음, 예쁜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아프고 나면 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걸. 내 부모 형제, 나 우리는 모두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문득 슬퍼질 때가 있지만, 이젠 그 슬픔을 사는 동안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즐겁게 아름답게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낼 수 있을까. 베풀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죽음을 인식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울 것도 불안할 것도 집착할 것도 없거늘. 나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서, 알면서도 무너지고 또 다시 알아차리고를 반복한다. 불완전한 인간은 숙명이겠다. 


내가 사랑하는 헤르만 헤세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길이다."라는 문장을 늘 가슴 속에 새긴다. 불완전하기에 더욱 우리 모두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친절하고 상냥해야 한다. 


삶의 굴곡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의 굴곡은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필연이었다고. 평생토록 사는 날까지. 성장할 수 있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날 위한 선물이자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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