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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09. 2024

삶은 물결이다

몸이라는 글자를 키보드에 치다, 몸. ㅁ ㅗ ㅁ 글자가 훅 들어왔다. 평소에도 잘 쓰는 글자면서 조금 전 즉흥적으로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가만보니 몸.이 꼭 사람의 형상같지 않은가. ㅁ(얼굴), ㅗ(목과 어깨), ㅁ(하체).


금요일 오전, 내 안에서 이는 소리는 분명했다.

"네 몸을 사랑하라!", "몸을 흐르는 물처럼!", "stop overthinking."


기운이 날 듯 하면서, 몸이 회복되는 듯 하면서 미지근하게 잔잔히 미열과 근육통이 반복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내 몸을 받아들여본다. 그러면서 관찰해본다. 주말 푹 쉬고 나면 나아질 것임을 알아서인지 그 과정은 바라봄이 된다. 혹여 내 예상과는, 기대와는 달리 다른 일이 벌어진다 한들 아무렴. 괜찮다. 내게 치명적일 것은 없다.


주말에 읽을 책 한 권을 빌려왔다. 헤르만 헤세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꺄하. 꺄악. 제목이 어쩜 이토록 아름다울까. 헤르만 헤세스러울까. 난 또 헤르만 헤세와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내게 또 어떤 새로운 세계를 안내할까. 책 커버도 아주 예쁜 주황색이다. 내가 이 책을 고른게 아니고 이 책이 날 불렀다.


경미한 근육통이나 몸살이 일면, 가장 먼저 내 감정을 살핀다. 지금 어떤 감정인지. 어제 오늘 어떤 감정이었는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지금은 어떤지. 어김없다. 내 감정의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다. 집요하게 파고든, 표독스러울만치 파고든 내 생각과 감정이 원인이다.


이십대 땐, 도통 내가 왜 이러는지. 내가 왜 이토록 힘들어하는지. 슬퍼하는지. 우울해하는지. 스트레스를 받는지. 도무지 알 길 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안에 갇힌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적어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차릴 수 있어서 정말이지 감사하다. 다행이다. 축복이다. 행운이다. 기적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었다. 그 어떤 것도 내게 치명적일 순 없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건 없는 것이었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감정과 생각이 나.라는 착각이었다.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데 난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했다.


확실한 건, 그렇게 되기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고 스스로 극복해야하는 것이었고 스스로 일어서야하는 것이었고 스스로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었다. 세상이란, 우주란, 때론 과학적인 지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코 인식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이 되는 것, 나를 아는 것, 성장은 요원한 것이었다.  

 

조금 전 버스를 타고 오면서, 한 생각이 일었다. "그러고보면, 초아 네가 글쓸 때, 엄청난 생각을 가지고 쓰는 건 없지 않니? 글쓸때 가장 힘빼고 쓰지 않아? 어쩜 그럴까?"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 계산하거나 생각해서 쓴다기보다 뭐랄까. 정말이지 물처럼 쓴달까. 물흐르듯 쓴다면 이해될까. 절로 손이 휘리릭 써진다. 일순간 내가 써내려가는 문장이 전혀 곱씹어지지 않는데다, 오직 키보드 자판과 이리저리 쉴 새없이,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양 열 손가락만 보일 뿐이다.


내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글 한편을 다 쓰고 난 뒤 쭉 한 번 읽어보는 일이다.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글쓴이는 자기 자신인데, 난 늘 내 글의 가장 첫번째 독자가 된다. 어맛. 내가 이런 마음이구나.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낯섬의 경험은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다.


사색과 사유도 아주 자연스런 방식이다. 의식의 자연스런 흐름이 글쓸때 날 이토록 편안하게 쉽게 평온하게 고요하게 몰입하게 한다. 힘하나 들여지지 않는다.는 말이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편의 글쓸땐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고도의 몰입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글쓰기도 물처럼. 내 순간도 물처럼, 내 하루도 물처럼, 내 일상도 물처럼, 내 삶도 물처럼, 다가오는 마흔은, 아니 지금부터라도 물처럼 살리라.다짐해본다.


몸의 움직임에 진심인데, 몸의 움직임을 통해 마음과 싸우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내 온 몸의 감각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내 오감을 불편하게 자극하고 몸의 에너지를 앗아간다. 이렇게 감정과 생각이 날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된다. 내 일상을 망치게 둘 수 없어!.하는 강한 자극이 인 후 내 삶은 달라지게 되었다.  


몸을 출렁이는 파도처럼 움직여볼까. 스트레칭을 통해 온 몸의 감각을 깨우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곳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듯 어느새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가 있다. "잘 갔다왔니? 그래, 마음 너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니? 그것 또한 너의 본질, 너의 역할, 너의 일 아니겠니? 결국엔 날 성장하게 하려는 거잖아? 어여 쉬어."하고 이야기해준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정말이지 누가 날 사랑해줄까?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존중해줄까? 내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데, 남에게 친절할 수 있을까? 상냥할 수 있을까? 내 몸과 마음이 가장 먼저 편안해야 내가 사는 세상도 아름다워보이고 친절하고 상냥할 수 있다.


세상이 온통 불만과 고통으로만 보이는 건,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전혀 돌보고 있지 않다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내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는 것과 맞닿아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고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워 보일테고 결국 전 인류애적, 전 지구적인 일이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일이라면, 이런 실천이라면 절대 게을리하지 말아야한다.


기운이 여전히 왔다갔다 하다보니, 죽이 당긴다. 조금 전, 들깨닭죽4개와 능이누룽지백숙2개를 주문했는데, 부자된 기분이다. 먹을 게 이토록 채워져있으면 넉넉한 마음이 든다. 넉넉한 마음이 부자 아니고 무엇일까. 무튼 주말 내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기운을 회복해야겠다.


다른 방도가 없다. 내 기운을 높일 수 있는 건, 잘 먹고 잘 자는 것 뿐이다. 그게 전부다.


내 삶은 물결처럼 아름다운 것이었다. 잔잔했다 거칠었다를 반복하지만 그 물결도 결국엔 물 그 자체다. 바다 그 자체다. 하나다. 그러니 내가 바다라는 사실은, 나도 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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