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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10. 2024

무슨 일이 일어나도 I AM

어젠 올해 들어 최악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동요가 없었는데, 지금껏 쌓아온, 다져온 마음 근력 덕분일까. 무튼 올해 최악의 순간을 지나 토요일 오후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켠다. 펜을 잡는다. 오전엔 마음과 말이 잘 통하는, 결이 맞는 친구와 신나고 즐겁게 통화도 했고 점심도 맛있게 잘 차려 먹었다. 그러곤 통창에다 우거진 수풀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곳에 앉아 달달한 아이스 카페 라떼를 마시고 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데 어제 일로 내 소중한 시간을, 하루를 그곳에 사로잡혀 무너지게 한다는 건 안 될 일이다.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드는 도서관도 가까이 보인다. 잠깐 멍때리기를 반복한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제 그런 일을 겪어도 너무도 멀쩡한 것이,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아주 멀쩡한 나 자신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는데ㅡ 너무 괜찮은 걸 보니, 외려 정말 괜찮은 거 맞는 건가? 너 정말 괜찮지? 의심이 되기 시작하는 건 무엇.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러자.하고 다독인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날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것과 날 파괴할 수 없다는 것. 내 안이 꽤 단단해져가고 있는 건지. 이 문장이 계속해서 날 사로잡았다. 무너지지 않게 날 꼭 잡아줬다. 화와 분노를 상대에게 퍼붓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상대하지 않는 것 뿐이다. 대처는 그러했고 그러면 된 것이다. 더 거들떠 볼 것도 곱씹을 것도 생각할 것도 없다.


다시 알아차린다.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난데에는 어떤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기운의 변화도 있었을 것이고 지난달 접시 3개가 주 간격으로 연달아 깨지기를 반복했고 그젠 집에 돌아와보니 벽에 걸어놓은 거울이 떨어져있었다. 깨지진 않았지만 내겐 어떤 징조처럼 무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그치만 결국 최약의 순간을 경험했고 그 순간 나도 화가났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내 알아차리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상대하지 않고 돌아서는 일이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분노가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내게 최약의 기분을 경험하게 한 상대에게 어떤 마음도 들지 않았으며 그런 상대란, 내겐 한없이 약하디 약한, 나약한 사람일 뿐이다. 내 에너지를 단 일초라도 그런 곳에 쓸 수는 없다는 것에 단호해졌다.


늦은 밤 언니네로 갔다. 조카들은 잠들었고 언니, 형부가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묵묵히 들어주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내 기분이 최악이었다는 것 뿐. 다스려야 될 사람도, 훌훌 털어버려야 할 사람도 결국 나 자신뿐이다. 확실한 건, 왠지 이 일이 내겐 꼭 액땜같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더 나은 기회와 길을 안내하려고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하는 마음이 날 이토록 안정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늦은 오후. 정말이지 내 순간은 이토록 평화로울수가 없다. 아주 천천히 차분하게 침착하게 다시 한 번 네 안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시간 창 너머 빼꼼 고개를 내미는 햇살과 반쯤 내려진 블라인드와 내 눈앞에 펼쳐진 초록의 수풀, 하늘 그 어떤 것도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방식으로 다시 한 번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다시 한 번 날 일깨워준, 또 다시 성장의 기회를 준 어제에, 일련의 사건에 감사할 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 삶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대응하느냐의 문제다. 그럴 때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조금은 덜 고통스럽기 위해서 우리는 이토록 나를 알고, 자기 자신이 되고, 삶의 지혜와 통찰을 갈망하는 것이 아닌가.


어제 일은 글 한편의 글감이 되어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것과 파도가 출렁인다고 해서 바다가 아니지 않은 것처럼,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난들 내 환경이나 조건, 상황이 변하는 것이지 나 자체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니 흔들릴 거 없다. 무너질 거 없다. 씩씩하게 살자.는 생각이 있다.


엄마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생일이면 가장 먼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신다. 적요까지 넣어 10만원을 꼭 계좌이체 해주신다. 생일 점심 저녁, 딸이 먹고 싶은 거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엄마에게 초아가 와 준 날이라고, 초아는 잘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처럼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 생일 축하해 하트뿅뿅뿅. 사랑가득 담아 편지를 보내주신다.


살면서 위기가 닥치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럴 때마다 엄마의 메시지는 내게 가장 효과적이다.

"딸, 씩씩하게 살아! 당당하게 살아!"


아직 철들려면 먼 것 같은데, 엄마 이야기를 쓰다보니 울컥해 눈물을 훅 쏟고 말았다. 쓰윽 두 눈을 훔쳤다. 결국 사랑이다.


어제, 밤이 늦었으니 자고 가라는 언니를 기어코 뿌리치고 나오려는데 언니는 내게 아무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1초 2초 3초... 세보진 않았으나 분명 10초 15초가 넘어가고 있었다. 연년생인 언니와 어릴적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언니의 품은 따뜻했다. 언니는 어린 아들들에게도, 형부에게도 늘 안아준다. 포옹해준다. 언니에겐 그것이 사랑이고 상대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해주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인 것이다.


가끔 말없이 포옹하면 와르륵 눈물이 쏟아질때가 있는데, 나는 포옹의 힘을 믿는다.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집에 오는  까만 밤하늘을 보았다. 아직 무더운 여름인데, 내겐 무더위가 도통 느껴지지 않는  무얼까. 나는 벌써 가을이 오고 있음이 너무 완연하게 느껴지는데, 나만 이런 것일까.


그건 아마도 내 마음이 가을같아서겠지. 가을을 기다리고 있어서겠지? 가을을 원하면, 가을을 기대하면 내 눈앞에 가을이 펼쳐진다. 가을을 이토록 바라고 있으니, 모든 것이 가을같아 보이는 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주 평온하다. 카페 소파에 앉아 있는 지금 가만히 장의 감각을 느껴보았다. 몸의 움직임을 느껴본다. 나는 똘끼.가 충만한 것인지. 좋게 말하면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한 것인데 재밌는 상상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한다.


마음이 이토록 안정적이고 들숨 날숨 호흡을 알아차리다보니, 흡사 내 안에 귀여운 아기가 코 잠자고 있는 듯한 모습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파란색 아기옷을 입고 양손을 한쪽볼에 대고 옆으로 누워 포근하게 잠들어 있는 그 모습. 내게 떠오른 그 모습은 마음의 형상일 것이다.


마음이 잔잔한 걸 보니, 이토록 평온한 걸 보니, 이렇게 잘 자고 있구나.싶다. 그래, 마음이 너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까지.


씩씩하게 당당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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