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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13. 2024

우주의 운행에 제대로 동참하고 있는가?

200ml 짜리 텀블러 하나, 락앤락 스포츠 물통 500ml짜리 하나가 있다. 물통이라곤 딱 이 2갠데, 요즘은 락앤락 스포츠 물통을 매일 가지고 다닌다. 용량도 적당하고 손고리가 있어 달랑달랑 들고 다니기도 편하다.


언니가 조카와 데이트하는 날인데, 오늘이 상영마지막인 도라에몽 극장판을 내 것까지 예매했단다. 본래부터 도라에몽 애청자인데다 최근 조카가 도라에몽에 푹 빠져있던터라 이모와 말이 기가막히게 잘 통하는 사이. 원래부터도 친한데 가족들 사이에서 도라에몽 하나로 우리 둘만의 공통점, 공유거리가 있다는 듯. 도라에몽으로 조카와 조카바보 이모는 그렇게 더욱 하나가 됐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방과후가 끝난 조카를 픽업해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더라도 꼭 조조로 사람없고 한적한 분위기에서 보는 걸 선호하는데다 팝콘은 혼자일 땐 사먹는 일이 지금 껏 단 한번도 없다. 조카와 언니가 함께 하니 팝콘 라지 콤보 세트와 자몽 에이드를 샀다.


도라에몽은 어쩜 이토록 귀여운걸까. 동그라니 그저 마냥 좋다. 이유는 없다. 그냥 내 마음이 좋은 것. 이유없이 마냥 좋은 걸, 귀여운 걸 보니 도라에몽과 내 기운이 맞나보다. 조카와 대화를 나누다, "도라에몽 너무 귀엽지?" 조카가 묻는다. "이모는 도라에몽이 왜 좋아?ㅋㅋㅋ”, “도라에몽... 너무 따뜻하잖아. 느낄 수 있어. 그치?" 우리의 대화가 이토록 진지하기 있기.없기.다.


중간중간 광활한 우주가 나오기도, 지구의 모습이 나오기도. 그 와중에도 질문이 이는 건 무엇. 한 생각 일으키는 건 무엇. "우주의 운행에 나는 제대로 참여하고 있는가?"


다시 도서관으로 왔다. 아침에 집을 나올 때 커피만 들고 나오고 물통을 놓고 왔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갔다 점심쯤 집에 들러 물통 챙겨야지.했는데 도서관에서 곧장 영화관으로 가게 된 것이다. 한 시간 여 있으니 물 없이는 안 될 것 같아, 집에 금방 갔다오자.마음 먹었다.


내 걸음걸이로라면 걸어서 10분-15분 거리면 닿는다. 지금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도서관이 가까이 있다는 것, 로컬푸드직매장이나 식자재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 공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더위 땡볕에 가기 귀찮았으나 하는 수없이 몸을 움직였다. 찌는 듯한 더위에 집으로 가는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있었다. 걷기 명상이 절로 된 것인가.


테이블 위 물통만 잽싸게 챙긴 뒤 집을 나왔다. 다시 온 길을 걸으면서, "그래, 집에 가서 물통을 가져오는 것이 순간의 목적이었고 길이었던 셈이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여정. 갔다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기에, 갔다오는 것도 내 선택이었다. 갔다오면 자유롭게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는게 아닌가. 결국엔 끄끝내 이렇게 다시 자리에 앉았잖아. 오며 가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지금 이렇게 도서관에 다시 앉아있는 것이 꼭 꿈같지만, 나는 분명 집에가서 물통을 가져왔고 내 목마름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장자의 도행지이성. "길은 걸어감으로써 만들어진다." 말을 가슴에 새긴다. 분명한 의식, 분명한 목적 의식이  살게 한다.   강하게 한다.  강하게 만든다.  사유의 시선을 높이고 확장한다.  그릇을 커지게 한다.  성장하게 한다.  


돌이켜보면 2021년, 2022년 내겐 명확한 욕망과 분명한 의식과 목표가 있었던 때였다. 그땐 이것저것 모든 것이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고 고달프고 힘겨웠고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가 참 행복했었구나. 나 근데 그때가 좋았었어.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순간의 나로 살고 있는가?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는가? 그냥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이렇게 주저 앉을 텐가? 계속 이렇게 살텐가? 폭풍우처럼 질문이 쏟아진다.


우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저녁에 집에가서 가방 내려놓고 나오자. 2시간 정도 걷다보면 조금씩 선명해지겠지. 분명해지겠지. 환해지겠지. 역시나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할 뿐. 순간순간을 사는 것일뿐. 과거도 없다. 미래도 없다. 현재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를 산다. 순간을 산다. 찰나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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