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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14. 2024

여름은 내게 무얼 말하고 있는가   

어제 저녁 9시 좀 넘었을까. 집 앞 공원에 나와 한 시간 걷다 왔다. 저녁 공기가 시원해졌다. 이러다 눈깜짝할 새 여름이 가을에게 이 자리를 내어주겠지. 공원 길을 한 바퀴 돌다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까꿍!. 주황빛도 노란빛도 아닌 반달이 까만 밤하늘에 대비돼 더욱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걷는 내내 시선을 뗄 수 없었는데 그렇게 밤하늘에 덩그러니 떠있는 달과 만나게 되었다. 밤하늘을 보는 일, 달과 만나는 일을 매일 하면서도 볼 때 마다 그 순간순간마다 이토록 경이로울 수가 없다. 존재만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달처럼, 나도 그러하겠지. 우리 모두는 그러하겠지.


아직 여름은 여름이다. 여름은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 여름 자체도, 무더위도 잘못이 없다. 잘못된 것은 없다. 여름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가을을 기다리고 있지만 가을도 아직은 존재하지 않을 뿐, 여름의 한자락.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면 된다. 


불현듯 떠오른 단상, "여름은 내게 무얼 말하고 있는가?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일으킨 한 생각이 기어코 글 한 편을 쓰게 했다. 내 글쓰기는 주로 이런 방식이다. 자유롭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무엇이든 시도하지 않으면, 해보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무엇에 집착하는 것일까.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한여름이면, 8월 어느 여름 프랑스 오베르 쉬오아즈가 떠오른다. 고흐가 걸었을 밀밭 길, 고흐가 살던 동네, 나는 그렇게 뙤약볕 아래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고흐의 무덤이었다. 그때의 바람, 공기, 소리, 풍경... 모든 것이 생생하다. 나는 고흐에게서, 그곳에서 이토록 위안을 받았던 것일까?   


내가 경험한 고흐는 단순히 화가가 아니었다. 자기 생의 철학자였고 영적인 사람이었다.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읽고나면 그의 삶이 이해되었고 인간 그리고 인간의 삶 나아가 내 삶으로까지 치환되는 마법을 경험하곤 했다. 고흐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던 걸까? 화가로서의 고흐보다 편지에서, 글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글에서 그를 만나는 걸 좋아했다. 


파리 살 때도 오르세 미술관을 매일같이 드나들었는데, 고흐의 초상화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오곤 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포함해 프랑스 파리 시내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 모두 2년 동안 언제든 무료입장에다 줄서지 않고 바로 입장가능한, 내 사진이 부착돼 있는 뮤제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 문화부에 다니는 프랑스 현지 친구 덕분이었는데 내겐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선물이었다. 프리패스 카드였고 이 카드를 나는 마법카드라고 불렀다. 


3구에 살았어서 오르세든, 루브르든, 조르주 퐁피두든, 피카소 미술관 모두 걸어서 15분에서 20분이면 닿았다. 단 하루도 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시절 우울했던, 쉼없이 방황하던 나에게 그곳들은 안식처였고 도량같은 곳이었다. 그 시절 명화들은 내겐 글쓰기, 책과 같은 것이었다. 날 살렸다. 


유독 여름이면, 특히나 뙤약볕이면 어김없이 프랑스 파리, 오베르 쉬오아즈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이토록 생생한데, 벌써 몇 년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생경하기도 하다. 분명 실재했던 것일까. 시간이란 흐르는 것일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순간만이 존재할 뿐. 


다시 찾게 될 날이 오게 될까. 오늘 오후, 불현듯 떠오른 단 하나의 문장, "여름은 내게 무얼 말하고 있는가?" 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뙤약볕 아래 밀밭을 홀로 걸으며 보낸 시간, 그 순간만큼은 기가막히게 눈부시고 아름답고 찬란했던 내 사색의 시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지 않았을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선택을 망설이고 있는 요 며칠, 내 안에서 "초아야, 그때 기억나니? 너의 다짐은 유효한 거니? 너는 언젠가 죽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야. 무얼 망설이고 있는거야? 나중에 죽음의 끝자락에서 너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어? 더는 해보지 않았던 것들로 후회하지 않기로 했잖아? 살면서 아름다웠던, 황홀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야? 망설일 시간에 무엇이든 해보아야지. 모든 건 다 네 안에 있어. 망설이고 있다는 건, 치열하게 질문하지 않고 있다는 거야. 으랏차차. 힘 안 낼거야? 또 다시 지난번과 똑같은 선택들로 똑같은 삶을 살거야? 아니잖아. 완전히 다르게 살아보는거야? 지금껏 살아온 방식과는 안 해본 방식으로, 까짓 거 살아보는거야! 알을 깨자고 쫌!!^^" 아주 나를 휘몰아치듯 야단법석 난리다.


이 야단이 나는 결코 서운하지 않았는데, 너무 맞는 말이어서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존중하기 때문에 이럴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여름은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었다. 

"잘 될 거야. 잘 되게 돼 있어. 그러니 순간순간을 살아!. 절로 펼쳐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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