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lievibes Aug 23. 2024

내려놓을수록 술술 풀리는 이유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작가를 꼽으라하면 망설임없이 헤르만 헤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도 인생 책 중 하나다. 나는 유독 고전작가들에 대한 사랑이 큰데, 편식이라면 편식이다. 고전철학, 고전소설, 동서양 철학에 흠뻑 빠지는 성미가 있다. 이건, 운명이다. 인연이다.라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여느 평범한 금요일 오후 속, 이 문장을 만났다. 1919년, 헤르만헤세의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속 문장이다. 

"고독은 운명이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기 위해 거치게 하는 길이다." 


이토록 분명할 수 없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가가 위대한 점은, 누구나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생각을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 통찰에 가히 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늘 그렇듯 고전에게서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내 생애 이 수많은 고전들을 다 읽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실감한다.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그늘 속을 비집고 들어가 걸으며 읽어 내려간 헤르만 헤세의 책에서 나 자신을 본다. 알렉시스 조르바가 떠오른 건 무엇. 내게 영감을 준 작품과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도, 그들과의 만남은, 대화는 간접경험의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자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다. 


잠시 집에 들렀다. 오늘 하루 종일 백팩을 메고 걷고 또 걸었는데, 노트북이라도 덜고 다시 나와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지금 이 글쓰기가 끝나면 씩씩하게  걸을 것이다. 걸으면서 난 또 어떤 세계와 만날까. 과연 선명해질까? 


500ml짜리 물통에 물도 채웠다. 걷는 내내 이렇게라도 수분보충하지 않으면 여름 끝자락 그래서 외려 유난한 무더위에 헥헥 거리고 만다. 내 몸도 생각하면서 걸어야지.어떤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 어떤 것도 너무 과도하게 한 곳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일보단, 넘침과 부족함의 그 언저리, 그 경계, 그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거나 혹은 즐기거나 극복하는 것이 사는데  좀 더 유리하고 경험적으로 깨닫게 됐다. 


무엇이든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조금만 앉았다 숨을 고르고 다시 나가기로 했다가 집에 들어온지 삼십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빨래도 널었고 몇 개 밖에 남기지 않은 그릇들도 안보이게 잘 넣어놓았고 청소기도 돌렸고 구석구석 살폈다. 개운하다. 아주 짧은 시간안에 할 수 있는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개운법이다. 


집을  나서려는데 테이블 위에 살포시 놓은 노트북이 나를 부른다. 글쓰기가 하고 싶어지는 건 무엇. 마음에서 이니까. 하라니까. 그렇담 해야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휘리릭 써내려가고 있는 나는 누구. 지금 여긴 어디.의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있는 사람이 과연 나인지. 초아인지. 도통 가릴 수 없을 만큼 글쓸때만큼은 그 순간에 집중한다. 몰입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게 된다.  


날 붙잡음과 동시에 불현듯 떠오른 것은, 놓아버릴수록 술술 풀리는 이유.였다. 무작위한 사유의 흐름 역시 어디 이유가 있던가. 절로 이는 것이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는가. 쓰다보면 어디서 요런저런 문장들이 조합되고 점철되는지 신기할 노릇이다. 


도라에몽의 요술 주머니처럼, 한 단어나, 한 사건, 물건 하나에도 이토록 할말이 쏟아진다. 말이 곧 글인점을 감안하면 말과 글도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할말이 이토록 많은 사람인가보다. 생각보다 심플한 것인게, 관찰하다보면 할 말이 이토록 많아진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게 없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도라에몽, 몇 년 째 노트북에 딱 하나 붙여놓은 스티커도 도라에몽. 애니원에서 하는 신도라에몽을 볼 때 행복해하는 나는, 도라에몽의 요술 주머니에 빗대어 사소한, 소소한, 순간들을 재밌게 상상할 때가 있다. 후루룩 휘리릭 휘뚜루마뚜루 술술 정말이지 키보드에 닿은 양손이 마치 로봇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걸 볼때면, 어떨 땐 내 사유를, 내 의식의 흐름을 내 몸이, 이 양손가락이 못 따라오는 구나.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꺄악. 꼭 도라에몽 요술 주머니같잖아. 동시에  내 뇌 안은 요술상자로 변신하고 별의별게 다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실제로 그러하다. 


놓아버림.이란 건, 포기나 좌절이 아니었다. 놓아버림이란 받아들임, 수용, 집착하지 않음과 동의어다. 살면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 집착하지 않을수록, 놓아버릴수록 일이 더 잘 풀린다. 술술 풀린다는 점이다.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갈 때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씨티은행 입행 당시 나는 이토록 무심할 수가 없었는데, 집착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결국 합격이라는 결과가 내 눈앞에 떠억 나타났다. 


집착하면 두려움과 불안이 생기고 그 감정은 내 몸의 긴장을 가져온다.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위축되면서 목소리는 점점 떨려온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게 결코 간절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전혀 다르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건, 떨어져도 괜찮아.의 마음이다. 


스물 넷. 그때 깨닫게 됐다. 어랏. 신기하다. 나는 그저 내맡겼을 뿐이었는데, 서류 전형에서부터 인적성, 1차, 2차 면접까지 그 어떤 일정이나 연락도 기다리지 않고 연락이 오면 오는대로 무심했을 뿐인데 어느새 최종합격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헤어스타일이나 의상도 이토록 나다울순 없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면접장에서, 대기자들 모두 내가 분명 떨어질 것이라고 했단다. 나 혼자서만 속으로, 꼭 합격하겠는데?했던 것이다. 나는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최종합격 전화를 받았다. 


끌리셰하거나 외운듯한 대답보다 진짜 내 이야기,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 마음, 나를 좋아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의 마음이 그때 있었다. 젊어서였을까. 호기로워서였을까. 당돌해서였을까. 씩씩해서였을까. 무튼 집착하지 않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는 걸 처음 직접적으로 체험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일수록, 중요한 만남일수록 다정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게 그러나 무심한 태도로 임하는 것이 술술 풀린다. 마법처럼.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도, 차분함을 유지하는 것도 놓아버림이다. 무엇에 집착하는가. 세상일이 어디 내 뜻대로 되던가.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를 더욱 편안하게 한다.


꺄악. 갑작스레 일으켜진 한 생각이 기어코 여기까지 날 이끌고야 말았다. 글쓸때 이토록 의식이 분명한 것 같으면서 한없이 몽롱한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몰입이란, 이것이 몰입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어느 순간, 지점이랄까. 이렇게 사유 끝 마지막 문장에 점 하나를. 탁.하고 찍고 나면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일이 술술 잘 풀리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놓아버리세요. 수용하세요. 받아들이세요. 집착하지 말아요. 

실은 나 자신에게 이토록 외치고 싶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작은 사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