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무엇이 있진 않았다

by Aarushi

잠이 오지 않는 밤. 분명 생각이 휘몰아쳐서겠다. 이런 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잘 먹고 잘자야 기운을 차릴텐데. 내 마음이 괜찮은지. 토닥토닥 쓰담해주는게 먼저다.


이 밤 혹은 새벽에 멀뚱멀뚱 깨어있는 순간이면,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이 떠오른다. 깨어있다고 더더욱 특별한 걸 하지 않는다. 글쓰기를 시작하거나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감거나 책을 읽거나. 이토록 시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내겐 이토록 고요한 시간일수가 없는. 그런 순간순간이다.


방랑자. 이 밤 불현듯 떠오른 단어 하나. 어젯밤 공원을 걸으며 들었던 성시경의 노래 제목이라서 자연스레 연상된 거 일수도 있겠다. 그 이유때문만이 아니라도 나는 평소, 정말이지 나란 사람. 방랑자가 아닐까. 방랑자 같은 삶.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방황하는 삶이기도 하고 방황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방랑자임에 틀림없다.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 정한 곳이 없는 것도 맞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도 맞다. 꽤 오랜 시간 한 곳에 산 적도 있었지만, 서른이 넘어서는 정말이지 나는 역마살이 강한 사람이 아닐까.했다. 실은 그 역마살도 내가 만든 것이겠다. 나는 정처없이 떠나기도 했다. 안정된 삶이란 게 있을까. 어느 방식으로든 해석하기 나름 아닐까. 떠도는 삶이라고 해서 무엇이 다를까. 무엇이든 사는 사람 마음일 것이다. 선택은 사는 사람 마음일 것이다.


내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우면 내가 사는 세상도, 사람도 안정되고 평화로워보이고 아름다워보인다. 내 마음이 지옥이면 내가 사는 세상이 이토록 불안정하고 어둡고 잔인하고 불친절하게 보인다. 무엇이든 내 마음에 달렸다.는 건 분명하다. 마음도 내가 아니니.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모든 면에서 이롭다. 하루에 여러개의 글을 쓴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내 마음이 편안하거나 내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음과 양의 조화처럼.


어쩌자고 이 새벽. 방랑자에서 시작된 밤의 사색이 또 다시 삶의 통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인가. 습관처럼 내 사유의 흐름은 이런 방식이 된다. 글이 절로 써진다는 건, 이런 것도 있다. 내 안의 무언가를 달리 혹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어, 해결할 방도가 없어, 풀어낼, 쏟아낼 방법이 글쓰기 뿐이라는 것. 정말이지 그러하다. 이럴땐 글쓰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백팩에서 주머니 보따리 하나를 꺼내 그 짐을 던 느낌. 가방이 훅 가벼워진 느낌이랄까.


살다보니 무엇이 있진 않았다. 거창한 그 무엇이 있진 않았다. 삶이 이런 것이거늘, 내 계획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거늘, 나는 왜 이토록 인생을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그 시절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꼭 무언가가 있을거란 큰 착각을 했던 걸까. 기대를 했던 걸까. 집착했던 걸까.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있다. 나는 결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언가 대단한 잠재력이 있을거라 착각했을까. 기대했을까. 그 기대와 착각이 그 시절 날 아프게 했는데 말이다. 그 집착이 스스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고 눈을 가렸다. 그땐 왜 몰랐을까. 이 또한 어쩌겠는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무엇이 있진 않았고 실은 무엇이 있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나는 무엇이 아니었고 나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무엇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튼, 이 밤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무슨 이야기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걸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나 자신을 놓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 뿐인 내 삶이니까. 여기에 온 이유가 있을 거니까.


다음생에 다시 태어나고 싶어? 혹은 한 번 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 마음이 그러한데,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한 번이면 족할 뿐.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겠다. 씩씩하게.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 걸 보니. 이 말이 이토록 하고 싶었던 구나. 그런 내 안을 들여다보고 꼬옥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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