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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27. 2024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

참 갈대 같다. 오전 볼 일 보고 오는 길,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든 생각이다. 어제 흔들리고 부딪히고 조급하고 우울했던 것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새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서다. 창가에 앉으면 어렴풋 내 얼굴이 드리워진다. 그럴때 마주하는 내 모습만큼은 유독 익숙해지지 않는다. 낯설다.


이 계절엔 오전 6시는 되어야 새벽이 아침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오늘 아침, 바이커 팬츠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박시한 긴팔 맨투맨을 입고 물통을 들었다.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만보가 넘는다. 아침엔 요정도 걷는다. 7-8시간 잠에서 깨어난 숲속의 공주가 하늘과 대지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귀한 시공간이다. 나름의 루틴인데, 잠에서 깨어난 뒤 맨 처음 마주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습관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다보면 마음 근력에 큰 도움이 된다. 잠에서 깨어난 뒤 고작 1시간 30분의 걷기로 내 마음은 이토록 자신만만해졌달까. 잘했어!짝짝짝. 순조로운 출발이다. 집에서 나와 바깥공기를 쐬는 순간, "음~ 하~ 꺄악. 가을이 왔구나!." 내가 사랑하는 가디건의 계절이 까꿍.하고 내게 말을 건다.


한 마리 새가 저만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고개를 한 껏 젖히곤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날개짓이 힘차보였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자연은 이런 방식으로 내게 말을 건다. 내게 마치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아침 걷기는 내게 꼭 알맞는 움직임 명상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부터 날이 흐릿하다.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뿌옇다고 해서 네 본래 모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 뿌연 구름은 일련의 사건일 뿐, 걷히고 나면 본래 하얀 것이, 푸른 하늘이 절로 드러난다는 걸." 자연과 대화한다. 우주와 소통하는 간접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인 방식이다.


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나와의 관계에서도, 사람관계에서도 어김없다. 휘둘리지 않는 것이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의 집착, 두려움, 불안, 우울... 실은 나를, 내 삶을 속절없이 흔들어대는 것 아니던가.


내게 마음 근력이란,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휘둘리지 않는다는 건 고요이자 평온이다. 휘둘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새 휘둘리고 마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면 잘 알아차릴 수 있다면 삶에서 꽤나 유리한 고지에 서있는 것이다. 삶의 고통이란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절로 펼쳐지는 삶을 조금은 평온하게, 평안하게, 고요하게 보낼 수 있을까의 문제다.


고통을 줄이냐의 문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질문이 보다 선명한데다 분명한 질문이다.


가령 어떤 선택을 했을때, 불편함이 올라오는 것, 자꾸만 꺼림칙한 것, 도통 깔끔하지 않은 감정이 올라올 때, 후회감이 들 때, 자꾸 다시 안된다고 말하고 싶을 때,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아, 지금 불편함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 내 안의 소리가 아니었구나. 네가 원하는 게 아니었구나." 틀림없다. 오차없다. 그 사이 내 안은 요절복통 카오스 상태가 된다. 에너지 소비가 크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유독 이 부분에선 갈수록 분명해지고 단호해지는데, 무심한 상태가 내게 훨씬 유리하고 안정적이다. 내 마음을 계속해서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라면ㅡ 내 것이 아니다.  


이건 이래야돼, 저건 저래야돼.라는 것으로부터의 탈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하지 않기. 아니오.라고 말할  있는 용기.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마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오케이. 마음. 내가 이렇게 말했을 ,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관계가 틀어질까 고민하는 관계라면 이것 역시  것이 아니다. 남과의 비교처럼 허무맹랑하달까. 실체없는 것이랄까. 이보다 의미없는 것이 없는데, 우리는  이토록 끊임없이 남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아프게 할까? 비난할까? 남과의 비교도 집착일 뿐이다.


비교의 반대는 비교하지 않음.이 아니라 내겐 고유함이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이다. 어둠을 볼 줄 아는 자는 빛이 있음을 알듯 빛을 아는 자는 어둠을 볼 줄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맛, 호랑나비의 계절인가. 여름 끝자락, 일주일째 유난히 자주 보인다. 어제 공원 산책에서 만난 호랑나비일까. 아무렴 결국 다 하나인 것을. 호랑나비와의 마주침이 과연 우연일까. 필연이겠지. 인연이겠지.


자연은 말이 없으니, 실은 진짜는 말이 없는 법. 자연은 나보다 한 수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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