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안가요

by Aarushi

추석연휴가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날과 다름 없는 나의 순간, 하루, 일상. 아침 일찍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장을 봐왔다. 8남매의 장남인 할아버지댁 명절은 늘 친척들로 붐볐다. 명절이면 다섯식구가 아빠차를 타고 할머니댁에 가던 일, 명절은 딱 가기 직전, 가는 그 길 그리고 명절 전날이 가장 설렜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릴적부터 서울 할머니댁에 갈 때면 신이 나 했는데, 나중에 지하철 타고 대학교 다녀야지.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밤에 도착할 때면 올림픽대로를 슁슁하고 지나던 길, 휘황차란 했던 조명들, 고층 빌딩, 한강고수부지(지금은 시민공원이라하지만 어릴적만해도 한강고수부지라고 했던 게 익숙하다) 의 풍경, 화려한 네온사인은 내게 그런 류의 동기부여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추석 연휴가 끝나는 주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친한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초아야, 이번 추석에 어디가니? 안가면 언니네 놀러와, 양재 하나로 가서 장보고 좋은 고기 사서 맛있게 먹고 놀러가자!" 나이 들수록 어쩜 이리도 선명한 집순이가 되는지. 그게 왜 그리도 편한지. 어떨 땐 너무 한가.싶을 만큼. 혹은 이러면 아니 되는데.싶을 때가 있다.


고독을 즐기지만, 즐길 줄 알지만, 좋아하지만, 고립되고 싶진 않다.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집에서 차분하게 침착하게 잘 먹고 잘 자면서 쉬고 싶어서다. 서른 전만 해도 할머니댁에 가서 미리 장보고 나물도 다듬고 전 재료 준비하고 동태전, 꼬지, 버섯전 등 갖은 부침개를 담당했는데 지금은 집에서 쉬거나 훌쩍 여행가는 걸 택한다. 어릴적부터 언니와 난 명절이면 엄마와 작은 엄마를 야물게 잘도 도와드렸다. 또 그 시절만의, 명절 그 특유의 정서와 낭만이 있었는데... 모든 것은 변한다.


서른 전 까진 꼬박 가서 전을 부쳤다. 오고 가는 친척들 맞이, 상차림에, 설거지는 늘 내 담당이 됐다. 이리저리 망설이는 것도 싫고 군말 없이 내가 하는 편이 편했고 상을 치우면 팔을 걷어부치고 자연스레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는 부엌에 서는 일이 내겐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해야지.하는 생각도 있었고 어릴 적엔 무엇보다 엄마를 도와드려야지.하는 마음이 컸다.


실은 작은 할머니들도 많이 계시고 며느리들도 항상 오는데, 언니와 나는 8남매 장남의 손녀라는 이유에서였을까. 어린 시절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설거지나 여러 것들을 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서른이 딱 됐을 때, 퇴사를 했다. 내 나름 인생의 큰 결정이었는데 그때부터였다. 명절과 멀어진 시기가. 특별한 이유라기 보단, 내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달까. 나에게 더 집중하고 싶었달까.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들면 굳이, 억지로 불편하고 싶지 않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벌써 꽤 되었으니, 이런 방식으로 보내는 추석 명절이 내게 편해졌고 익숙해졌다. 이젠 이런 부담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아무렴 괜찮아.라는 마음이 날 달래준다. 처음엔 늘 오던 내가 안오니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았다. 희한하리만치 원하지 않았다. 할머니댁에 다녀온 아빠와 시댁에 다녀온 언니네와 만나 명절 다음날에 같이 식사하곤 한다.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엄마와 단 둘이 보낼 때도 여행을 가기도 했다. 설명절을 온전한 휴가.라 생각하고 푹 쉬기를 택했다. 그래서 명절은, 내게 이토록 평범한 나날이다. 그렇지만 너무도 소중한 휴식이자 재정비의 시간이다. 물건을 잘 사지 않지만 잘 쉬다가 어슬렁어슬렁 혼자 쇼핑을 나선다든지. 소소하게 나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


좋아하는 식재료로 장을 봐와 여유있게 요리를 한다. 주로 주물냄비만 사용하는데, 무엇이든 푹푹 잘도 쪄지는 듯한 주물냄비만이 주는 요리의 맛.이랄까. 그 감성이 있다. 그렇게 한 그릇 뚝딱 비워내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산책하고 청소하며 생각도 함께 청소하고 빨래하고 널고 개고... 별 거 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 별 거 없음이 때론 얼마나 큰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지.


처음엔 명절에 안 온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묵묵하게 단호하게 무심해져갔다. 지금은 이토록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릴적부터 나름 큰(?)역할을 했던 탓에 내 나름의 이젠 괜찮아.라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명절에 못가요.가 아니라 명절에 안가요.라고 선언하는 건 실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 안가요.를 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누가 누굴 뭐라 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굴 판단할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2만보를 걷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