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보를 걷는 이유

by Aarushi

우중런이 있다면, 내겐 우중걷기가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건 타고났나보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니, 서른 중반이 넘어 다시금 뚜벅이가 된 것도 어쩌면 인연이겠다.


하루 2만보를 걷는 건, 순전히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3시간 정도 걸으면 2만보가 된다. 2만보가 넘었을 때 만보기에 팡파레가 쏟아지는데 그 작은 희열이랄까. 아주 소소한 희열이 있달까.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 궁딩이 팡팡해준다.


비가 와도 어김없이 걷는다. 오히려 더 좋다. 비오는 공원은 마치 내 집인듯 나밖에 없다. 꺄악. 그러곤 짤막하게 냅다 뛰거나, 걷는다. 혹시 몰라 우산을 챙기긴 하나, 좀 지나지 않아 접어 내려놓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는 건 내겐 자연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일이다. 어떻게해서든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라,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는 건 내겐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비가 내리고 있다. 좀 이른 저녁을 먹고 나는 또 다시 걸으러 나갈 텐데. 장대비든 보슬비든 내겐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견딜 수 있는,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장대비라면 우산을 챙겨 나가면 된다.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계절은, 날씨는 내 걷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2만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고 지키면 좋은 것. 기분좋게 하는 것. 내 몸과 마음을 이토록 가볍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중 하나다. 어떤 날은 2만보를 걷지 못할 때도 있다. 아무렴 상관없다. 순전히 나 자신과 한 약속내지 아주 소소한 루틴이기 때문이다. 집착은 모두 내게서부터 오는 것이니,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딱 그 마음이 외려 내 일상을 잘 지켜 나갈수 있게 해준다.


빗소리가 대차다. 비가 오니 신나는 건 무어람. 시원함 속에서 걸을 생각하니 그렇다. 걷다가 비오는 하늘을 올려다 보면 굉장히 차분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랄까. 그런 것을 만끽하게 되는데 그 만끽은 늘 선물같다. 그러다 생각하곤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 비.를 혹은 이 계절을, 이 순간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만끽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더욱 지금의 내 인생이, 내 삶이, 내 하루가, 이 시간이, 이 순간이 이토록 소중할 수밖에. 그럴때면 "우울할 새가 어딨니? 힘들어할 시간이 어딨어? 무기력해 있을 새가 어딨어?"하곤 소스라치게 온 몸이 반응하곤 한다. 정신이 번쩍 든다.


걷는 이유, 어떤 생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생각을 멈추게 하게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엄청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걷기를 한다고 해서 어떤 것이 당장 해결되거나 하지 않는다. 단, 날 괴롭히는, 절로 일으켜지는 생각을 알아차리기 위함이고 생각을 놓는 연습이자 과정이다.


만보기에 팡파레 기준을 2만보로 설정한 건, 순전히 내게 알맞다고 느껴서다. 만보는 영 성에 차지 않고 딱 만 보 더 보태서 2만보는 걸어야 걷는 것 같아서였다. 체력적으로도 조금 지치는 상태.가 돼야 내 몸을 좀 더 영민하게 예리하게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꿀잠 잘 수 있는 체력상태.


파리 살 때 3구에서 13구까지 매일 걸었던 때가 있었다. 센강을 따라 쭉 걸으면 됐다. 그 길마저 나는 요리로도 갔다 저리로도 갔다 단 한 번도 똑같은 길을 간 적이 없다. 센강 길 따라서 30분 정도는 늘 같은 길이었지만 그 뒤론 목적지까지는 가는 길은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 이 골목길 저 골목길로 갔다가 중간에 모노프히나 프렁프히 슈퍼마켓에 들러 샌드위치를 사가곤 했다.


그러고보니 그 때도 왕복 3시간은 되었다. 오며가며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 자동차들, 자연풍경, 그 모든 것이 그 시절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방황하던 시절, 나는 그토록 무엇을 찾아 헤맸던 걸까? 걸으면서, 비오는 그 길을 정처없이 걷기도, 떨어진 낙엽 사이를 걸으면서도, 빗물에 운동화나 구두 속 양말이 다 젖어도 그러려니,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앞만 보고 걷기만 했었다. 그 시절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시절에도 어김없이 걷기는 날 살렸다. 책이 그러했듯. 글쓰기가 그러했듯. 걷기도 늘 나와 함께였다. 몸이 너무 피곤한 날은 걷기 귀찮을 때도 있다. 어느 날은 걷지 않고 쉬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을 때도 있다. 이마저도 집착없이 내 몸과 마음이 따르는 대로 이끄는 대로 놓아준다.


무엇이든 놓으면, 놓아버리면, 놓아주면 참 편한 것을 .참 편해지는 것을. 이전엔 왜 그토록 긴장하며 예민하게 삶을 살았는지. 인생을 그렇게 바라봤는지. 인생을 왜 그토록 예민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마흔이 내 앞에 성큼 다가오니 이토록 마흔.이 빨리 오는 것이었나. 이토록 빨리 오는 것이었더라면 뭐 그리 심각했나. 뭐 그리 대단했나.싶을 때가 있다. 다가오는 나의 마흔은 거꾸로 놓아버림.의 모드로 살아가길.


걷기는 내 삶이 되었고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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