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비친 너
아이보리 니트를 입었다.
군데군데 의도적으로 실타래 간격을 내, 그 구간 너머 속이 보일듯 말듯한 느낌의 옷이었다.
두터워 무게감도 있다.
LED조명 아래 창밖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얼굴 이목구비만 희미할 뿐 모든 실루엣은 선명했다.
소파위에 앉아있는 나,
머리는 길게 늘어뜨려 한 쪽으로 가지런히 넘겼고
박시한 아이보리 니트를 입고 노트북을 양 무릎에 올려 놓은 채 응시하고 있는 나...
창에 비친 나는 과연 나일까?
나는 너일까?
너는 나일까?
조명도 꼭 LED조명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달까?
어디가 되었든 머무는 분위기가 있달까?
LED조명 아래선 더욱이 읽고 싶고 쓰고 싶어진다.
그러다가도 고요히 침묵하게 된다.
여전히 침잠하길 반복하는 날 붙잡고 싶었던 걸까?
한 번 보게 된 너를 나는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
모르는 체 했다가 다시금 빼꼼 너를 바라본다.
너에게서 나는 무얼 기대하고 있나?
삶과 죽음은 하나다.
언젠간 반드시 마주하게 될 문 앞에서 너는 무엇을 말하게 될까?
그래서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있다는 열렬한 기적 앞에서, 행운 앞에서, 축복 앞에 서서 네가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날 구해줄 수 없다.
날 누르는 거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뚫고 일어서야 한다.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은 실로 간단한 것이 아니다.
거듭해서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해야 하는 여정, 그 체험의 과정...
의미 없는 비교와 자책, 후회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길을 잃지 말자.
그 길이 곧 나.고 자연이다.
지도를 펼치고 나침반을 켜고 표시해가자.
사유와 사색으로 내 심장에 새살이 돋는 사이 밤하늘이 기지개를 켠다.
#본래부터 확실한 건 없었다
욕실 세면대로 갔다가 그만 미끄러지고야 말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오른쪽 손으로 네모난 세면대 윗부분을 잡았고 다행히도 더 크게 일이 나지 않았다. 정확히 오른쪽 다리의 앞부분 뼈가 있는 딱 그 중간 지점에, 세면대 아래 이어지는 부분에 찧었는데 순간 뼈가 부러진 거 아닌가.싶을 정도로 아팠다.
휴. 놀란 숨을 간신히 붙잡고 심호흡 한 번 하고선 천천히 오른쪽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걱정과 달리 섰을 때, 쩔뚝거림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안도했다.
어맛 나와보니 아니나 다를까. 뼈 가운데 부분이 동그랗게 흰색 반점처럼 되더니 몇 분 되지 않아 멍이 올랐다.
갑자기 이런 일이. 방심했던 탓일까.
이 조차도 내게 여유를 갖으라.
조금해하지 말라.
서두르지 말라.
천천히 가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소파에 앉아 멀뚱멀뚱 천장을 한참을 바라봤다.
무척이나 심란한, 요동치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런 내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나보다.
차제에 오른쪽 다리는 높은 쿠션을 대어놓고 소파에 누워있는 상태로 사진첩을 들여다보았다. 책읽다 공감했던 말이나 위로됐던 말이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메모해두는데 저장해둔 메모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놀란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ᆞ.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 가운데>를 읽었을 때다.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문장에 형광펜을 쫙쫙 그어가며 그 시절의 나를 위로했다.
"슬픔도 재산이라는 걸 알았다." 이토록 선명한 문장이다.
내 스스로에 대한 연민도 함께 갖고 있을 때였다.
자기 연민.도 때론 필요하다. 그 연민이란, 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나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뭐 어떠할까. 그렇기에 날 더 보살필 수 있고 아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적당한 자기 연민은 유익하다.
단, 그 연민에 빠져 내 스스로가 그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거나, 그런 상태로 날 내버려 두는 것이라면 그런 종류의 연민은 경계해도 좋다.
그런 종류의 연민으로 내가 놓은 덫에 갇혀 수년 간 빠져나오지 못함으로써 흘려보내 버린 시간에 대한 뼈저린 후회와 회한의 경험이 있다.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도 포용하고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됐지만, 날 알아가고 날 이해하는 과정은 죽을 때까지 반복될 것 같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성장하기 위함. 여행, 산책과도 같은...
그게 바로 인생 아닐까 싶다.
인생 생각보다 뭐 그리 거창할까. 심각할까.
나와 내 삶을 아주 천천히 관조하고 통찰하는 일상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스며들었다.
본래부터 확실한 게 있었나.
본래부터 확실한 건 없었다.
아무도 삶의 정답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본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애초부터 확실한 건 없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두고 뭐가 그리 확실한 게 있을 거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가뒀는지. 스스로를 힘들게 했는지. 스스로를 괴롭혔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확실하건 확실하지 않건 결국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을 되돌릴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을.
기대한다고 해서 그대로 내 삶이 펼쳐지는 건 지극히 맹랑한 무리수와 같다.
그러기에 그저 내게 주어진 시공간을 나답게 소비하고 사용하면 될 일.이라는 생각에까지 닿았다.
본래부터 확실한 건 없었다.는 결국 애초에 잘못된 선택은 없었다.로 받아들인다.
이런 내 해석에도 어디 정답이 있을까.
“촤, 본래 없는 정답을 애써 찾지 말자. 잘하고 있어... 가다가 길이 막혀있으면 다시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찾으면 되고 이도저도 사방이 막혀있으면 제자리로 돌아와 그 벽을 허물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