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염색을 하고 나면 늘 하는 색깔인데도 무언가 기분전환이 된다. 무엇이 말끔하게 씻겨져 내려가는 듯한 청량함도 있고 기분이 나아지니 개운의 효과도 있다. 파리 살 땐 긴 웨이브 헤어 스타일이었는데 모노프히에서 파는 로레알 제품으로 셀프 염색을 했다. 내 까무잡잡한 피부색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색을 찾았다. 그 이후론 줄곧 그 색으로 염색을 한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던 토요일 오후, 헤어컬러와 스타일을 가지런히 했다.
옷가지들, 살림살이도 다시금 정리하고 빨래도 하고 늘 그렇듯 주말 대청소를 했다. 동선이 짧아서 나의 대청소는 그리 힘들지 않은데, 나는 시시로 수시로 살림살이를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편이다. 내 방의 상태가 꼭 내 마음의 반영같달까. 정리되고 말끔하고 깨끗하고 코지하면 꼭 내 마음도, 내 태도도 요로코롬 그렇구나.하는 것이 있다.
여느 날 같은 주말 오후, 아침엔 쏟아지는 빗소리에 한참을 취해 그 고요 속에 머물렀고 오후엔 기지개를 펴고 곧장 솥밥을 해서 밥을 짓고 날 위한 밥상을 차려 야무지게 먹었다. 그러곤 셀프 염색도 하고 한가로이 집에 머물며 여느 날과 같은 나의 고독 속에ㅡ 머물렀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틀어놓곤 조용히.를 눌러놨다. 무성이지만 순간순간 꽂히는 영상들에 편안함을 느끼고 그 사이 나는 나대로 내 할 일을 소소하게 한다. 겨울 자켓과 니트류를 정리하다 겨울 쟈켓에 아주 살짝 구멍이 나 있는 걸 발견했다. 곧장 반짇고리를 꺼내 소파에 앉아 검은실을 꿰 최대한 티나지 않게 꼬맸다. 꼬매면서도 아무렴 티나면 어떠해.하며 실은 편안하게 꼬맸다. 내가 잘 입는 옷들에 구멍이 보인다든지 올이 풀렸다든지 하면 나는 아쉬워하지도 않는 것이 그 자리를 잘 메꿔주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다. 아주 잠깐이라도, 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메꾸는 바느질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온전히 그것에 집중하게 된다. 사방의 소리도 어느 순간 들리지 않은 채, 어느 순간 구멍이 메꿔져있는, 몰입을 경험한다. 그것이 명상이 아니고 무엇일까.하게 된다.
여름이 한창이지만, 나의 공간은, 나의 순간들은, 나의 일상들은 실은 그 여름과 겨울의 경계가 없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적만 하더라도, 내가 대학생때만 하더라도 매미소리를 참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전보단 내 귓가에 덜 들린다는 생각과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동안 해야했던 방학숙제 그리고 탐구생활.이 떠올랐다. "탐구생활" 표지가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그 시절이 그리워했다. 요즘은 방학숙제가 없다고 하는데 나 때만하더라도 방학숙제를 3가지 테마 중에서 골라 했던 기억이 있는데 가물가물한 나이가 됐다. 벌써 삼십년 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니ㅡ 순간 소스라칠만큼 꺄악.그러나 야단법석이지 않은 마치 의연하다는 듯 그렇게.
이 해 여름.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이 해 여름 혹은 그 해 여름.이라는 말이 나는 왜 이토록 다정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걸까? 늘 나는 언젠가 죽는다.사실을 상기하면서도, 알아차리면서도 어느 날은 이토록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초조해하고 순간 우울감을 느끼고 어찌할바를 모르겠는, 할 때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은 늘,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이 절로 내 안에서 피어오른다. 그 샘솟음이 다시금 나의 일상으로의 회복을 돕는다.
설거지를 하면서, "언제까지 이럴까? 아마 살아있는 한은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겠지? 언제는 안 그랬나?ㅎㅎㅎ"했다. 자조섞인 웃음같으나 마냥 자조적이지 않은, 그런 인생에 그런 삶에 대한 연민과 너그러움, 포용과 수용에서 나오는 미소에 더 가까웠다.
사랑. 내가 해야 할 것은 사랑.이란 것도.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마냥 하고 싶은 것을 하라.가 아니었다. 내 안의 소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처럼, 날 생각하게 했고 질문하게 했다. 나의 선택이나 결정에 그 어떤 설명이나 변명도 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아가게 하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의연한 마음, 자기 삶에 대한 온전함을 알아차리는 것, 내 삶에 대한 수용과 존중, 사랑...을 진심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행동하는 일이었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에조차 질문이 이는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시하고 소소한 질문은 그 자체로 내게 지혜가 되어준다. 이 해 여름안에서 그 해 어느 여름, 가령 1998년 그 해 여름... 이런 방식으로 어린 시절 작은 꼬마 아이의 나.로 돌아가게 된다. 참 젊었던 내 부모님의 모습도, 다 같이 계곡으로 해마다 물놀이를 갔던 그 해 여름들... 수박 한통을 차가운 계곡물에 담그던 그 해 여름, 아빠와 함께 텐트치던 일, 엄마와 함께 형형색색 튜브에 바람을 채워 넣던 그 해 여름... 모든 것이 아련하게 정겹게 그리운 마음 가득 내게로 다가온다.
그 해 여름의 나는, 삶이란 이런 거란 걸, 이렇게 나이들어가게 될 거란 걸, 지금의 내 모습을 생각이나 했을까? 그 시절의 내가, 어린이 내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아이들이 맑고 순수한 이유는, 가만보면 나도 그랬고 아이들에겐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는 게 아이들의 모습 아닌가? 유심히 바라보면 아이들은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구나. 만끽하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나이들어가며 문득문득 내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게 딱 하나가 있다. 언젠간 있을 나의 죽음.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데, 나이 나이들어감은, 노화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데 곧잘 받아들이게 되는데, 내 부모님의 노쇠해진 모습과 부쩍 더 나이드신 모습을 보는 일은, 어느 날은 날 참 슬프게 한다. 나의 죽음보다도 내 부모님과의 이별이 더욱 짠해지는, 내 가슴에 무언가 훅.하고 박히는 듯한 순간의 것들이.있다.
인생 중후반쯤이 돼서야 이토록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ㅡ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꼭 이 나이가 돼서야 알게 되는 것들ㅡ
인간은 정녕 이렇게 설계되어진 것이 아닐까.싶을 만큼.
우리는 이렇게 진짜 사랑을, 진짜 사랑하는 법을 사는 동안, 살아 있는 동안 깨닫고 알아가고 다시금 사랑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생.이 아닐까.
우리는 비로소 아,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 사랑.을 알게 될 쯤.
그 찰나의 생에서 또 다시 건너가게 되는...
이 해 여름과 거듭해온 그 해 여름들과 그 시절의 나, 그 시절의 풍경들...
그렇게 돌아볼 수 있어서, 회상할 수 있어서 생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겠지.
이 해 여름도 그 해 여름들처럼 눈부시게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란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