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둥 천둥이 쳤다. 어릴 적부터 천둥번개 소리가 나면, 자연의 호통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면 인간은 이토록 나약하구나. 자연 앞에 이토록 취약한 존재이구나.했다. 자연은 말이 없다.는 것도. 쏟아지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순간 잠에서 깨어났음을 알아차렸음에도 창밖 너머 들려오는 쏟아지는 빗소리에 조금 더 취하고 싶어 눈도 뜨지 않은 채 그 채로 이십 여분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 와중에도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생각들...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쉽게 알아차린다.
LED작은 조명 하나만 거실에 켜둔 채 자는데, 나와보니 사방이 어둡다. 그 어설픈 어둠이 실은 나는 이토록 좋다. 외려 날 편안하게 한다. 비와 그리고 그 어둠, 흐릿함이 내겐 늘 낭만 그 자체가 되어준다. 며칠 전 할머니가 바리바리 싸주신 것 중, 냉동실에서 갈치를 꺼내 갈치조림을 했다. 양파는 아빠가 챙겨주신 것, 할머니 집 앞 밭에서 직접 키우신 대파, 브로콜리, 마늘, 팥 시루떡까지... 자글자글 지글지글 갈치가 맛있게 조려지고 있는 사이,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간밤 그쪽은 괜찮은지. 할머니는 잘 지내고 계시는지 살피기 위함인데, 다음번엔 옥수수를 챙겨주신다고 한다.
집을 나서면서 우당탕탕 두두둥 천둥소리가 날 반긴다. 폭우였다가 가라앉다가를 반복하는 순간, 그 어둠이 날 사색하게 하고 사유하게 한다. 자연 현상 하나에도 이젠 어떤 물음.이랄까. 어떤 사색이 인다. 키보드 위 이전과는 분명 다른, 손마디 위 주름들을 바라보다 이내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를 실감하다 그렇게 다시금 내 것으로 돌아와 글쓰기를 시작하기를 반복한다.
빛과 어둠이 실은 하나란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으니 빛이 있다는 건 실은 하나란 것이겠지.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도 없다.와 나는 모른다.가 날 이토록 명징하게 알게하는 것들이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도시의 휘황찬란함이 익숙하면서도 얼마든지 이 도시를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 만큼 자연에서 살고 싶은 마음, 성미도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내게 내어주기만 한다는 걸 알아서기도 하고 자연은 말이 없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위안이 되는 것도 있다. 나의 스타일만봐도 그러한데, 유행이란 일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하고 즐겨입고 새 옷보단 기존의 옷을 잘 입는 것을 선호하는, 웬만해선 옷을 잘 사지 않는... 이런 것들이 외려 날 더 편안하게 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생각이 있다.
살림살이라고 다를게 없고 지극히 내 취향의 물건들만 있는, 함부로 소비하는 일이 줄어든, 그저 단출한 삶이 지금의 나와는 찰떡같이 잘 맞는다는 걸 알아버린 차제에ㅡ 앞으로도 나의 생활용품이란, 살림살이란, 옷가지들이란 이런 방식이지 않을까싶다.
비오는 날 차 안은 다른 음악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자동차 보닛과 빗방울의 마찰음이 내겐 더할나위 없는 편안한 소리가 되어준다. 두두둑 뚝뚝뚝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잠시 눈을 감고 그곳에 나를 내맡겨 본다. 그 십분 십오분 여의 순간이 다음 일정을 더욱 수월하게, 다시금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서른 여덟.이라는데 나는 왜 자꾸 곧 마흔 마흔.하는지. 실은 서른 여덟이든 마흔이든 무엇이 중요하냐만은 싶지만, 마흔이 주는 여운이 생각보다 내게 실로 큰가보다. 지난 십년이 내겐 굉장히 고독한 시간이었음을, 호된 시간이었음을, 방황과 우울의 시간이었음을 나 자신이 명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시간이 분명 내게 선물이었음을, 행운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마흔은 이젠 나아감의 영역이지 않을까?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 자신에게 수시로 묻는다.
나의 지리한 지난 10년은 화려한 고독.의 시간이었다.
그 화려한 고독.으로 인해 나는 나아갈 수 있었다.
차 안에서 노트북의 가녀린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글을 마무리한다.
사방은 이토록 어둡다. 마치 나 혼자만 덩그러니 어둠 속에 남겨진 것처럼.
즉흥적으로 마주한 차 안에서의 글쓰기는 나의 고독처럼, 이토록 고요했고 침착했다.
고독한 사람이라서,
고독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서,
고독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이젠 고독의 시간이 가장 편안하게 돼서,
자연의 이치란, 자연이란 이토록 인연이면서 우연으로 가득차있다.
나의 고독도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