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순간 중 하나는, 주말 아침 일찍 내 취향의 카페에 들러 창가에 자리잡곤 커피 한 잔과 창밖 풍경을 벗삼아 사색에 잠기는 일이다. 어느 날은 20-30분, 어느 날은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 카페 안 사람들의 소리도, 카페 직원들의 분주함도, 커피 잔의 부딪힘도 그라인더 소리도 그 모든 것이 조화롭기만 하다. 이토록 따뜻하고 친절하고 다정할 수 없는 분위기에 흠뻑 취하다보면 이 시간이, 이 순간이 이토록 소중하고, 내가 사는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워보일 수가 없다.
웬만해선 나의 약속은 모두 광화문 일대가 되는데, 토요일 아침 약속 한 시간 전쯤 도착해 내가 자주가는 카페에 들렀다. 통창이 뻥 뚫린 광화문 빌딩 사이, 그 사이 수풀들이 훤히 보이는 저 만치 광화문 우체국이 보이고 사거리가 보이는 통창 너머 고개를 하늘 위로 올려다보면 인디고 블루의 파란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기엔 내겐 이만한 곳이 없다. 아이스로 롱고를 시키곤 딱 하나 남은 창가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 일찍인데도 늘 거의 만석인데, 그 비비드함과 생기있음.을 만끽하려 이곳에 오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사색은 절로 펼쳐지게 되는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다 큰 새 3마리가 원을 그리는 듯 그렇게 하늘을 유영하다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졌다. 그 모습조차 나는 어쩜 이토록 아름다웠던지. 옆자리 사람들도, 카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조차 사랑스러보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사랑, 감사, 존중...이런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 순간을 만끽하면서 내 안에서 절로 일었던 문장은, "캬하~ 인생은 정말 아름다워."였다. 내 안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그것. 결국은 사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 안에 침잠하고 있던 사이, 누군가 뒤에서 날 가볍게 터치했는데, 환하게 웃으며 날 반긴 이는 친구였다. 바로 그 옆 식당에 가기로 했던 터라 이곳에 앉아있다는 내 메시지에 친구가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이다.
친구와 만나 브런치를 하고 서촌으로 넘어갔다. 오후쯤 친한 언니를 그곳에서 만나 도란도란 시간을 보냈다. 평소 평일에 약속을 잘 잡지 않는 편인데, 요로코롬 주말 어느 날, 한 번에 빼곡하게 일정을 잡아 만나곤 한다.
친구와 만나고 있는 도중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아침 일찍 할머니댁에 가려고 하는데 올 수 있는지 아버지의 전화였다. 할머니댁에 가게 되면 아빠한테 미리 전화를 달라고 했던, 같이 가자고 했던 터라 아버지가 전화를 미리 주신거였다.
전화를 끊고선 친구가 웃으며 물었다. 카페 테이블 위에 전화벨이 울리면서 내 핸드폰을 보게 됐는데 "이름(하트)"이렇게 되어 있어서 놀랐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내 아버지의 전화였단 걸 안 친구가 단순히 궁금해 물었던 것인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아버지, 어머니 전화번호를 "아빠/엄마 이름(하트)" 이렇게 저장해놓았다.
별다른 것은 아니었고 살면서 나는 늘 내 부모의 이름보다 엄마 아니면 아빠.라고 불러왔는데, 내 엄마 아빠를 한 개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한 소녀로, 한 청년으로 한 인간으로서 생각하게 된 것이 크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분들이지만 한편으론 우연히 내가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난, 한 아이의 부모 이전에 한 소녀였을, 한 소년이었을 여전히 그럴, 한 인간으로서 대하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겠다.
오후엔 서촌과 광화문 일대를 걸었다. 타는 듯한 땡볕 아래 산책이었지만, 그 여름 산책은 땡볕이 있어 더욱 여름다운 산책이었다. 그러다 조금 지치면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면 될 일. 나는 이 여름을 앞으로 얼마나 경험하게 될까? 만끽할 수 있을까?하는 것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한 것이란 걸 나는 이 해 여름, 마흔이 가까워서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이 해 여름 광화문 산책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일요일 새벽, 부지런히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새벽차를 탔고 터미널로 아빠가 마중나와계셨다. 곧장 아빠차를 타고 할머니댁으로 향했다. 아빠는 그새 딸이 좋아하는 커피와 물, 주전부리를 사두셨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아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시절 아빠와 나.가 마치 그 시절 그리고 그 시간에 머무른 듯, 멈춘 듯 꼭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와 나는 죽음.에 대해 곧잘 아주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아빠가 앞으로 건강하게 산다해도 길어봐야 15년 정도이지 않을까? 본래 그런 것.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인데 두려움보단 받아들이게 되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고 앞으로 남은 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운동도 잘하고 잘 먹고 잘자고 편안하면 되는 거야. 그 이상 바랄게 없네..." 하신다.
아빠의 익숙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은 없었다. 내 오른쪽 창가 옆 펼쳐진 저너머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삶이 이토록 찰나구나... 나는 과연 좋은 딸이었을까?... 하는 것들... 잔잔한 파도가 내 마음에 일었다 가라앉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요즘 부쩍 내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데, 정말이지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부모가 내게 바랬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가급적이면, 이왕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삶을 꿋꿋하게 씩씩하게 잘 살아나갔으면, 어떤 어려움도 실패도 씩씩하게 헤쳐나갔으면 하는, 아무쪼록 평안하게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딱 그 마음이었단 걸, 그것이 사랑.이었단 걸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사이. 서로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관계. 서로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순간들...
사랑은 모든 걸 덮는다.
토요일, 일요일 이번 주말 새 분주하게 보냈더니 일요일 밤 집으로 돌아와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그러곤 눈떠보니 아침이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한, 그 개운함과 청량감에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이런게 삶이 아닐까? 이런게 인생 아닐까? 나아가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
그렇게 눈떠보면 이런 생각이 인다.
현실이 꿈일까?
꿈이 현실일까?
일장춘몽 아닌가.
인생은 정말이지 몰라서, 모르기 때문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