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을 회상한다는 건

by Aarushi

종종 스페인의 아침이 떠오르곤 한다. 여행 중엔 꼭 아침일찍 숙소를 나와 그 주변 동네를 산책하는데, 동이 트고 창문을 빼꼼 내다보면 쓰레기 수거 차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전혀 소음이 아니었고, 생명력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이토록 부지런하게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동네를 산책하다 느낌이 오는 곳으로, 카페로 향한다. 스탠드바 라인에 앉아 에스프레소나 카페 콘 레체를 꼭 마셨는데 정겨운 바리스타들에게서 느껴지는, 나와 같이 오고 가는 사람들 속 분주함과 다정함이 그곳에 늘 있었다.


부쩍 참 행복했던 여행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여행과 삶이 무엇이 다를까. 여행이 삶이고 삶이 여행 아니겠는가.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낭만이지 않은 게 없다. 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낭만은 늘 내 곁에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톨레도의 성벽 아래 앉아 톨레도 전경을 내려다보던 일, 유선 이어폰을 끼고 토이의 거짓말 같은 시간.을 들으며 마치 중세 시대에 멈춰버린 듯한 오랜 도시에 살랑이는 바람결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렇게 사색에 잠겼던 그 순간들... 한 시간 여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 도시도 나도 시간도 모두 멈춰버린 시간이었다. 황홀경 그 자체였다. Awe.의 순간을 자주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을 한다. 여전히 지금도 마찬가지다.


파리 살던 땐 뚜벅이였던 덕분에 지금도 파리 시내 곳곳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그리고 그 도시 곳곳에 나의 지난 추억들이 흩어져있다. 지금도 파리를 생각하면 그 시절 파리의 내음새와 나의 고민들, 방황, 기쁨, 즐거움, 행복감, 황홀경... 경계가 허물어진 모든 것들이 내게로 훅.하고 들어오곤 한다. 매일같이 드나들었던 루브르와 오르세, 집 근처 피카소 미술관과 조르주 퐁피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의 나... 그 마음을 애써 위로하려 때론 어찌할 바를 몰라 그렇게 집을 나서 두꺼운 겨울 코트 옷깃을 여미며 그렇게 박물관과 미술관을 드나들었다. 아침 일찍 조르주 안 퐁피두안에 있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훅 털어놓곤 그렇게 그곳을 나서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나는 도대체 왜 이토록 갈피를 못잡고 있는가?... 에스프레소에 수크레 하나를 톡 털어넣고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올리는 나 자신 그리고 내 눈은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있는 나... 그때의 잔상이 이 새벽 날 붙잡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행복했던 시절이구나. 지나고보니 참 즐거운 시절이었구나. 왜 그 시절을 나는 좀 더 즐기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인지 파리의 그 시절이란 내게 잿빛, 축축한 대지, 흐릿한 날씨, 스산하고 건조한 겨울 어느 날... 그런 색채가 더 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시절이 참 아름다웠구나. 행복했구나. 낭만적이었구나.를 실감하는 이유는 실은 당시에도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었음을. 우울과 방황의 나날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에도 나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단 걸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향했던 베르사이유 궁 근처 어느 산책로, 길들... 그 길이 어느 길이었을지 rue 이름조차 기억나지도 알지 못한다. 내 목적지는 베르사이유 궁이 아니었고 잠깐 들르는 곳이었을 뿐, 파리 근교이면서 그렇다고 인적이 너무 드물지는 않은, 사람사는 풍경 가득한 어느 곳을 걷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베르사이유 궁까지 RER과 버스를 번갈아 갈아타며 가던 그 길, 그 길이 울적한 날, 건조한 감정이었던 날 위로했다. 그 길 위에서 뚜벅뚜벅 걷고 또 걸으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색했고 질문하기를 거듭했다. 그 길은 언제나 완벽하게 낯설면서도 동시에 날 편안하게 했다. 일드 프랑스 어딘가 현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그곳의 풍경들... 나와 같은 소시민들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봤고 나는 누구인지. 사람은 무엇인지. 톨스토이의 말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삶에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것들에 질문하고 사색하고 사유하는 것에 여념없었다.


이 새벽을 붙잡고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써내려가는 지금,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미소가 나오는 일이란, 어떤 부분에선 마치 꿈 꾼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나는 나에 대해, 인간의 삶에 대해 내가 사는 이 현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가 적확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많은 명작들 앞에 우두커니 선 채로 화폭 어딘가에 그저 응시한 채 나는 말이 없었다. 애써 알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 너머를 보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릴 뿐이었다. 무엇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분명 그 시절 나의 어떤 심미안이랄까. 이런 것들에 대한 안목이 전보다는 나아진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다. 매일 같이 드나들었으니 그 시절 명작들이 마치 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자연처럼 말은 없지만 분명 날 위로하고 있는 듯했다.


최근 정말 사소한 것 같은 일들이 내겐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고 불쑥 불편함으로 올라왔다.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안의 불편함이란 걸. 다 내 안에서 만들어내고 있단 걸. 이런 불편함이 올라와 스트레스를 받으면 침잠하는 대신 내 안의 어떤 면의 반영일까. 내 안의 어떤 불편함이 내게 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한다. 결코 심각한 일이 아니란 걸, 인생 뭐 그리 심각할 거 없다.이런 방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 뭐 그리 심각했을까?. 나이 들어가며 느끼고 있는 것 중하나다. 건강하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일까?싶고 육신이라는 껍데기가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살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이 나라고 착각하며 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닌가? 괴로움은 집착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이런 알아차림의 습관이 날 다시금 일어서게 한다. 내 안의 불편함을 걷힌다.


지난 시절을 후회하고 사는 건 분명 현재를 살지 못하게 가로 막는다. 자기 비난과 자기 혐오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에 잠식돼 일어서지,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미소짓는 건, 지난 황홀경의 순간들을 꺼내 내 안의 빛을 더욱 환하게 밝히는 일은 내게 삶의 낭만을, 감사함이라는 꽃을 소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비난과 혐오를 멈추고 후자로, 지나온 나의 모든 순간들이 참 감사했다고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참 아름다웠노라고 낭만가득했노라고 눈부셨노라고 그렇게 매 순간 날 소생시키는 것이 되었다.


어느 날은 지난 시절 그 황홀경의 순간들에 푹 잠겨 한동안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절로 미소짓는 순간들에 흠뻑 빠졌다가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욱 명확해지고 생에 대한 의지와 감사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 명확함과 선명해짐으로 나는 나 자신으로 가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인생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어느 한 순간도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어둠과 빛은 하나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해 여름 그리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