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김치는 사랑이었다

by Aarushi

따뜻한 봄바람을 벗삼아 걸었다. 저 멀리 너머 보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인디 블루 널판지에 솜사탕조각이 몽글몽글 흩날린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봄은 어쩜 이름도 봄일까? 봄바람 한 결에도 이토록 환해지니 세상이 아름다워보이니 봄은 정녕 고마운 것이다.


김치 중에서도 유난히 익은 파김치와 갓김치를 좋아하는데, 엄마가 직접 담가주신 파김치를 베란다에 며칠 두었더니 아주 알맞게 익었다. 양이 많아서 한동안 아주 잘 먹을 것 같다. 냉장고에 넣으니 어쩜 이토록 부자된 기분인가. 어쩜 이토록 충만한 기분인가. 이런 것들에게서, 사소하고 아주 작은 것에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충만함을 느끼면 매 순간이 살가워진다.


어릴 적엔 고구마 줄기 김치가 늘 있었는데 가끔 그때 푹 익은 고구마 줄기 김치가 그리울 때가 있다. 실온에 내놓은 파김치를 냉장고에 넣고선 저녁쯤 돼서 엄마한테 전화 드려야지 했는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텔레파시가 통했네. 방금 엄마 생각했거든, 전화해야지 했는데 엄마한테 딱 전화가 왔네!."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는, 우린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도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는 조금 철이 들어가고 있는지, 힘든 일이 있어도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순간에도 내색하지 않는 걸 보면. 혹여 걱정하실까.싶은 것이. 나 정말 철이 들어가고 있는 걸까?싶은 순간들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앞에서 내색한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아주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옛 일을 회상할 때 그때서야 그때 그랬노라.하고 덤덤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알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어느 순간 그걸 알게 되자, 알아차리게 되자 내가 엄마에게 표현한 내 감정과 내 상황들이 얼마나 투정이었을까. 얼마나 어리광이었을까.알게 되었다.

내 엄마도 그러했듯. 나도 이제 더는 어떤 상황이라도 묵묵히 내 자신이 짊어지고 책임지고 그렇게 묵묵히 안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고 이렇다.라는 걸 정말이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실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제 더는 엄마가 날 생각하면 걱정하지 않게. 마음 편히 생각할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라는 걸 안다.


엄마는 내게 바라는 것이 없었단 것도. 단지 내 자식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세상을 씩씩하게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 그 뿐이었다.


부모가 돼보지 않은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부모가 되어야지 만이 알까?싶은 것이ㅡ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헤아리지 못한다는 걸 실감한다. 조건없이, 정말 이것저것 따지는 것 없이ㅡ 이 세상에서 나.를 온전하게 완전하게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다. 이렇게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것이었나? 조금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다.

파김치는 사랑이었다. 딸이 파김치를 가장 좋아하고 있는 걸 아는 엄마는 지난 주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파김치 담가 보내려고 쪽파 사왔어. 담가서 내일 보낼테니까 맛있게 드세용~ 다 먹고 나면 또 보내줄게!" 전화를 끊고 내 가슴은 몽글몽글해졌고 금세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문득 떠올랐다. 엄마가 파김치를 담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엄마는 딸에게 줄 파김치를 담그면서 어떤 마음일까? 분명 사랑이겠지." 엄마는 이런 방식으로 멀리 사는 딸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란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따뜻한 딸일까?싶지만, 지금의 나는 엄마에게 정말이지 친절하고 따뜻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내 엄마이기 이전에 앙증맞고 귀여운 아기였을, 곱고 고운 소녀였을,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타인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분,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게 해주신 분.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정말 알았으니, 진심으로 엄마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자고 다짐한다.

파김치를 그릇에 덜어낼 때마다 엄마가, 엄마의 사랑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파김치 한 쪽을 입에 넣어 베어무는 순간, 엄마의 사랑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그렇게 딸은 엄마의 사랑을 먹고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난다.

사랑이란, 정말이지 전부다.

살아갈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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