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눈물이 자주 난다. 사소한 것에서 소소한 것에서 아주 평범한 것에서 눈물 글썽이는 일이 잦다. 길을 가다가도 사소한 것에서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 감동이 올라올때면ㅡ 혹은 어떤 사건이나 기억에서 추억 속에서 감내하기 힘든 회한이 밀려올 때면ㅡ 문득 엄마, 아빠 생각이 날 때면,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서도 음악을 듣다가도 눈을 감고 잠시 멈춰 있으면서도 어린 시절 사진 앨범을 보면서도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눈물이 난다.
어떤 복받침보단 절로 펼쳐지는, 절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 맞겠다. 그렇게 아주 잠깐이라도 눈물을 비워내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에, 두 손등으로 눈물을 야물게 훔치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래! 힘내자!."하는 순간들이 된다.
살아보니ㅡ 어느 새 훌쩍 마흔이라는 문턱 앞에 서니 과거에 대한 후회로 막연하게 아파하기 보단 짙은 회한이 아주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스며든다. 마치 깨끗한 물에 붓 끝에서 물감 한 방울이 톡하고 터져 어느새 물을 그 색으로 물들게 하는 듯한, 그렇게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 나에 대한 후회, 안타까움, 아쉬움이 콕콕 박혀 힘들어했던 시절을 지나고 나니, 그렇게 잘 극복해내고 나니 이젠 그것이 깊은 회한이 되어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론 감사함, 사랑, 아련함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순간들과 기가막히게 매치되는 순간에서 눈물이 절로 흐르게 되는 것 같다. 향수도 있겠고 지난 나의 시절이 꿈.같기도 한, 이것이 당최 인생이었구나.싶은 것. 누구나 그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을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연민, 미안함도 있다.
아직 오지도 않은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왜 그렇게 되는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숨쉬고 살아있는데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 자신이 추억하는 것도 이젠 기억일 뿐이고 만질수도 되돌릴수도 실재하지 않다. 오직 실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조차 찰나다. 실재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인가?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날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알긴 아는 걸까? 혼란스러움보단 차분하고 정적인 물음이다. 그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하는 아쉬움의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일면, "뭐 이유가 있었을까? 정말 이럴려고 했던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날 경험하려고 했던 거라면? 그러니 묻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내게 펼쳐진 것들을 받아들여야지. 인정해야지. 사랑해야지..."로 귀결된다.
눈물이 이토록 잦아서야. 이조차도 묻고 따지고 할 것 없는 것이다. 눈물이 나면 나는대로 마음껏 울면 된다.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회한이든 아쉬움이든 안타까움이든 그 무엇이든 눈물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지나오면 된다. 울고 싶은데 울지 않을 이유가 없다. 눈물의 마법이랄까. 눈물이 내겐 긍정적인데 울고 난뒤 내가 흐른 그 뜨거운 눈물을 닦아내면 나는 왜 이토록 개운한가. 자유를 느끼는가. 무언가 활짝 개인 것 같은 기분인가? 그래서 눈물은 내게 날 기분전환해주는 다시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 된다.
나는 왜 이토록 글쓰고 있는가? 내 안에 솟아오르는 것이 많아서겠지? 절로 써지는 걸, 절로 키보드로 손이 가는 걸 어떡하나?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 잠깐동안의 깊은 몰입을 통해 내안의 나를 만나고 내면으로 침잠해 잠깐이라도 이 불안을 우울을 잊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지나 따뜻한 봄 햇살에 나를 내맡기면, 살랑이는 봄바람 아래 공원 벤치에 앉아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자면, 나는 또 그렇게 생각하겠지. "세상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 계절을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끽할 수 있을까?" 이런 방식으로 내가 또 나아가게 하겠지. 살아가게 하겠지.한다. 나의 글은 순전히 나와의 소통인데 내 글쓰기를 쭉 읽어 내려갈때면 새삼 나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어느 구절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휩쓸리지 않을 것만같은 당찬 나를 마주할 때면 궁딩이 팡팡.그렇게 에너지를 얻곤 한다.
살면 얼마나 살까?한다. 그것은 생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필멸하게 되어있다.는 있는 그대로 봄, 제대로 봄이다. 그러니 무얼 망설이나 싶고 무얼 두려워하나. 무엇이 널 이토록 괴롭게 하나.꼬인 매듭을 풀어나가듯 하나씩 하나씩 정리되어가면서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 이후 스트레스를 꽤나 받아서인지 숙면하지 못하니 총체적 난국이 됐다. 잠을 푹 잘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으니 몸과 마음 건강이 흐트러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다시금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나아가니까.말이다. 어느 날은 꽉 막힌, 말 그대로 stuck. 어느 공간에 옴짝달싹 못하게 몸이 꽉 갇힌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도무지 현실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기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고 어떻게서든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도 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스토아철학의 책을 읽어내려가면 정말이지 맞는 말이어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톨스토이나 도스 도예프스키나, 헤르만 헤세나 그 시절 대문호들의 글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평온을 다시금 회복한다. 그들과의 만남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눈물이 흐를 때면 외려 잘 살고 있구나. 잘 지내고 있구나.를 느낀다. 지금 내게 흐르는 이 눈물이 무엇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되는 것들도 있겠고 지난 경험들을 통해 알게 된 혜안과 지혜도 있겠고 그러면서 다시금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날 안정시키는 그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삼킨다는 것도 실은 그 눈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일상으로의 회복은 마치 숙명처럼, 매 순간순간 펼쳐진다.
알아차리고 다시금 알아차리고 그렇게 일상을 회복하며 자기 생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