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집에서 언제고 튀어나가면 곧장 산책할 공원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도서관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식자재 마트가 가까이 있기, 뚜벅이가 된 후론 버스 정류장이 가까이 있기다. 배달 음식을 먹지 않고 가족들과 식사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집밥이다. 직접 솥밥하고 요리한다.
나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서 어쩌다 족발이 당기는 날이면 주문을 해도 꼭 전화로 주문해 직접 픽업한다. 배달앱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요즘 세상에 놀라는 눈치다. 귀찮음도 있다. 직접적인 것이 좋다.
드레싱도 그때그때 만들어 놓고 마리네이드할 소스도 넉넉히 만들어둔다. 향신료도 잘 사용하고 설탕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꿀을 사용하거나 실은 설탕 없이도 향신료나 본재료의 단맛으로 충분히 대체된다. 그래서 나의 집밥은, 흔히 생각하는 한식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퓨전이 된다. 손도 빠른 편이라 요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는다. 요리도 어쩜 나와 닮았는지.
지난 번 새벽 재래시장에서 사 온 마늘과 청양고추가 다 떨어져간다. 어느 날은 청양고추를 2바구니를 사와 한 바구니 분량은 할라피뇨를 만든다. 애플 사이다 비니거로 당근, 무, 양파로 피클도 만들어 유리병에 보관한다. 나의 피클 레시피엔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제 늦은 오후에 식사를 하고선 늦은 밤 배가 출출해도 참고 잠에 들었는데 새벽 5시 배가고파 눈이 떠졌다. 알리오 알리오가 먹고 싶은 것. 마늘 5개를 얇게 슬라이스하고 청양고추도 3개 찹했다. 페퍼론치노도 좋지만 청양고추를 넣으면 한식같고 취향이다. 올리브 오일 듬뿍 넣고 초사이언적으로 몰입해 예쁜 접시에 담아냈다. 음식은 자고로 향이다. 향만 맡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파스타를 볶아낸 팬에 양배추와 계란으로 전을 크게 한 판 붙이고 큐민으로 마리네이드 해놓은 닭안심 한 쪽도 구웠다. 평소 먹는 양이 결코 적지 않은데 잘 먹지 않은데 어찌 힘이 날까?.한다.
면도 이토록 알맞게 익었다. 삶는데도 실은 대중없다. 알단테고 몇 분이고 뭐고 내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는 자기 취향의 알맞은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간혹 주변에서 레시피를 물어볼 때면 나는 "그거 그래갖구 대충, 살짝, 아주 조금만..." 이런 식으로 밖에 답할 수 없게 된다.
음식은 취향이기 때문에, 직접 해 먹는 것엔 그 어떤 한계도 없는 것이다. 내 입맛대로,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들 듬뿍, 직접 해먹기 때문에 적당한 온도로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요리하는 과정과 결과 모두 다름이 아니라 하나란 걸 인식하면, 과정이 즐거우면 맛도 즐겁다. 여느 날처럼, 매일 하는 요리인데도 늘 새롭고 즐겁고 신나는 걸 보면 나는 분명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늘과 청양고추를 늘 사용하는 편이라, 이 둘이 소진되기 전에 채워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자재 마트나 로컬푸드 직매장의 그것보단 새벽 재래시장에서 사는 그것이 양도 많고 크기도 굵고 싱싱하다. 무엇보다 향이 다르다. 청양고추를 깨끗하게 씻어 냉장고에 보관한 뒤 요리할 때마다 꺼내면 그 향이 올라온다. 그래서 마늘과 청양고추는 웬만해선 꼭 새벽 재래시장에서 산다.
마늘이 푹 익은 알리오 올리오를 먹으면서는, "음... 너무 맛있잖아? 마늘 넌 어쩜 이렇게 맛있니? 청양고추도 너도 말이지... 너희들은 내게 사랑이야..."한다. 그러면서 "마늘과 청양고추는 못 잃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웬일이니..^^ 그렇게 또 미소 짓는다. 정말 좋아하면 그리 되는 법이다.
기분이 꿀꿀해도, 요리하면 된다.
기분이 꿀꿀해도, 글쓰면 된다.
사는 건 정말이지 잘 먹고 잘 챙겨먹는 것밖에 없다.
실은 이게 전부인데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무너뜨리려는 생각과 감정의 신호들이 보이면,
즉각적으로 살핀다.
잘 자고 있는지.
잘 먹고 있는지.
내 눈동자가 텅비어 있지 않은지. 살아 있는지.
내 눈빛이 변하지 않았는지. 빛을 잃었는지.
눈빛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요리에 관해서는 기쁨.밖에 모른다.
요리할 줄 알아서.
직접 밥 짓고 내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서.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일은,
내가 나를 조절할수 있다는 것이다.
마늘과 청양고추에 대한 사랑, 예찬에서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늘 그렇듯 여느 날처럼 날 몰입하게 했다.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게 했다.
하나가 된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