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어렴풋이 정한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토록 금세다. 지금부터라도 당장의 돈 때문에 일을 한다거나 나만을 위한 삶, 혜안 없는 것들을 이제 더는 하지 않겠다.는 내 나름의 선언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서, 알면서도 용기나지 않아 두려워 불안해 실현하지 못하고 그저 뱅뱅 돌았던 순간들. 더는 말만 그러지 말고 더는 생각만 하지 말고 더는 미루지 않기로 결심했다. 시간을 두어보기로 했다. 겨울일 거라 예상했는데, 아마 12월 내 생일 즈음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선명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여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들도 있었다. 쉰지 하루 이틀까지는 너무 좋았고 아뿔싸. 오랫동안 내재화된 부정적 감정들은 그렇게 쉬이 물러날리 없었고 이주, 삼주차엔 또 다시 불안했고 우울했고 두려웠고 혹 가치없는 사람일까. 계속 이렇게 살면 어떡하지.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생각과 감정들에 넉다운 되기도 했다. 그나마 이젠 곧 물러날 것임을 알아서 수월하다.
폭풍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물러가면 고요가 찾아온다. 지금이 딱 그러한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왜 이토록 평안한가? 불안하지 않지? 두렵지 않지? 그 많던 걱정, 염려 어디로 갔니? 괜찮은 거니?..." 이 평온은 무엇일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분명 이 시기, 이 쉼이 끝나고 나면 다시 자기 생.을 잘 살아나갈 거란 걸 알고 있어서지?. 내 안을 들여다본다. 재촉할 거 없는 바라봄이다.
꼭 무언가를 해야만이, 꼭 무엇이 되어야만이. 내 가치가 인정받는 것인가? 무얼 하든 하지 않든 나는 그대로다. 이삼십대 초반만 하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마치 나 신이 가치 없는 사람인 걸로 착각했다. 엄청난 착각이 나 자신을 좀먹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회한이 있다.
나의 가치는 결코 무엇이 있음으로해서, 무엇이 되어서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아침 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걷고 있다는 것, 눈을 떴다는 것... 실은 이 모든 순간이 기적이고 행운이고 감사다. Being.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가치는 판단되거나 평가되어질 수 없는 고결함이다.
생일까지 그리 멀지 않았는데, 그동안 마냥 쉰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자기 생.의 빛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조금씩 쌓아올린 계획들, 직관적으로 내 마음에서 피어오른 직감의 소리들을 메모해두었다. 그때까지 하나씩 꺼내 조각조각 퍼즐을 맞추어 나가야 한다.
쉼은 휴식이었고 내려놓음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책들도 도서관에서 마음껏 읽었고 내가 사랑하는 글쓰기도 마음이 이끄는대로 물흐르듯 써내려갔고 많이 걸었고 매 끼니 직접 밥을 짓고 건강도 챙겼다. 분명 회복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 없이는 나는 회복하기 어려운 인간이었다.
패브릭 스카프를 목에 둘렀고 상의는 자라 아동용 점퍼를 입었는데 이토록 따수울수가. 지난 여름 아동복 코너에서 우연히 집어든 패딩이 세일해서 이만 구천원이었다. 본래 택을 보니 팔만 구천원이었는데 아무렴 사이즈도 맞고 올 겨울 잘 입을 것 같아서 구매했다. 유행 없이 사는 사람이라서, 유행을 모르는 사람이라서 이토록 알뜰한 소비도 가능하다. 밖에 나오자마자 "어맛, 하나도 안춥잖아? 요거 너무 잘 샀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굉장히 흡족해했다. 별 거 아닌 것이 아주 소소하게 사소한 것들이 실은 날 즐겁게 하고 만족해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깨알 같은 순간이다.
스스로에게 내린 휴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기간 마음껏 책읽고 글쓰고 요리하자.는 생각뿐이다. 이것들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다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절로 몰입하게 되는 것들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시간을 갖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이젠 쉬어가는 법을 알게 된 나 자신에게도 감사해한다.
불안, 두려움, 걱정....이란 것들이 내게서 평생 떨어질 것 같지는 않으니 방법은 이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어차피 이런 방식으로 이 시기를, 이 시간을 흘러보내기로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쉬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이 전적으로 내게 필요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는 후회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서른 셋부터였던가. 생일날이면 가장 먼저 내 안의 나의 안부를 물었고 갖고 싶은 게 있는지. 필요한 것이 있는지. 오늘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무얼하며 보내고 싶은지. 생일 아침 따뜻하게 내린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양손에 쥐곤 패브릭 소파에 앉아 그렇게 한참을 대화하는 시간을 갖어왔다. 갖고 싶은 건 최근 몇 년새 운동화였다는 사실...^^ 실은 그거면 충분했다.
작년 이맘 때, 그리고 겨울, 그리고 12월, 그리고 내 생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것은 시간의 흐름이이 아니라 사진 한 장 한 장이 인화돼 한 시공간에 놓여진 것만 같다. 분명히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제 나는 어렴풋이 짐작해한다.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
나는 숨쉬고 있고 살아있다. 숨을 들여마시는 건 생. 살아있음, 숨을 내쉬는 건 사. 죽음이라는 분명한 사실. 내 인생에서, 내 삶에서 이 쉼이라는 것, 이 휴식이라는 것. 기간, 시간에 대하여ㅡ 이젠 이렇게 응수할 줄 도 알게 되었다. "좀 쉰다고 해서 무엇이 큰일 나니? 당장 돈이 없어서 죽니? 뭐 어떻게 된다니? 아니, 큰일나지 않아. 아무렴 괜찮아. 이 쉼이 끝나면 넌 다시 나아가게 될 거니까. 그러니까 쉬기로 했으면 제대로 쉬어!. 네가 좀 쉰다고 죽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나이 들어가니 이토록 둥글둥글해지는 것 같기도. 서글서글해지는 것 같기도. 나 자신이 나를 위로하고 그렇게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법을 체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