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세계

by Aarushi

집에서도 크리스마스 재즈 선율와 따뜻한 커피 하나면 어느 카페 부럽지 않다. 낭만 가득한 파리 어느 카페에서도 내 마음이 어두우면, 거센 파도에 휩쓸리면, 우울하면 아무 소용없는 걸 깨달았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머무는지, 어디에 사는지 보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내 마음이 빛나면 환하면 평화로우면 여유로우면 내가 있는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이토록 낭만 가득한 곳일 수가 없는 것이다.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 안 그 특유의 무드를 좋아해서. 집 안 공기를 수시로 카페처럼 만들어 버리는데에 능숙한데, 아침 일찍 차가운 공기를 호호 불어가며 두꺼운 패딩 점퍼의 옷깃을 잽싸게 여미며 카페로 향하는 내 모습도 사랑한다. 그렇게 테이크 아웃해 나오는 길이면, "글쓰고 싶어. 결국 글인건가. 글이구나."한다.


날 이토록 위로하는 건, 역시나 글쓰기.구나 싶다. 나와 하나가 된 그것. 글쓰기다.

"글쓰기가 있는데 어떻게 심심할 수가 있겠어요?" 절로 이 소리가 나온다.

"어떻게 외로울 수가 있겠어요?"한다.


글쓰기는 내 정신 세계의 들여다봄이다.

고독하면 내적 대화가 수월해진다.

시끌벅적하고 휘황찬란한 화려한 조명들이 수놓인 도시의 삶에서 자기 만의 시간, 혼자의 시간, 내적 대화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갖을 수 없다면 어떻게 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오래 전 12월 크리스마스를 스페인 세비야에서 보냈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향하는 렌페 안에서 창밖 너머 황색 벌판에 서있는 올리브 나무가 나의 여정을 외롭지 않게 했다. 그 풍경에서 위로받았고 안정될 수 있었다. 이어폰을 낀 채 김동률의 <출발>을 무한재생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내적 대화와 고독이란 여정이. 안정적인 직장을 나왔을 때, 불안했지만 두려웠지만 그 보다도 새로운 도전과 시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크기가 더 컸기 때문이었겠지. 실은 정말이지 안정적.이란 게 있을까? 실체가 있는 것일까? 지금 내게 묻는 다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2주 정도 남아있던 연차도 더해 그렇게 스페인으로 떠났다. 물을 넘고 산을 넘고 하늘을 넘으면 선명해질 것만 같은 게 있었다.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나답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뒤섞인 여행길이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회상하면 그때도 불안했고 취약했고 나약했고 지금도 그렇다.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 무렵 퇴근 길에 씨네큐브에서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봤다. 영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인생이라는 것, 삶이라는 것에 치환해 보자면 내가 경험한 현실은, 세상은, 세계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기도 하고 지금은 틀리고 그때가 맞기도 하다. 가변적이고 수시로 변하는, 그 어느 것도 규정될 수 없는, 판단할 수 없는, 확신할 수 없는 세계다.


변하지 않는 건 오직 내 안의 그것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상 현실이라면 우리는, 나는 무얼 붙잡고 있는가? 본래 내 것이 아님을. 그러니 실은 그렇게 소유하려 들 것도 돈에게 끌려가는 삶이라서 내가 이토록 괴로운 것은 아닌지. 불안한 것은 아닌지.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돈은 사는데 중요하다. 그러나 돈이 내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돈도 절로 내게 오는 것이지 내가 돈에 따라가선 안된다.는 걸 자주 상기한다.


마흔이 가까이 되어서야. 이제서야 회피하지 않고 나 그리고 내 생.에 마주할 용기가 생기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어느 시점도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는 걸 확신하며 사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이롭다. 그땐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날 힘들게 하는 건, 내 환경이 아니라 내 상황이 아니라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단 걸. 집착이었단 걸. 오랜 시간을 두고 느지막이 알게 하려는 세상의 뜻이었을까? 급진적인 깨달음이 아니라서 외려 안심이다.


나는 내게 온 방황과 우울의 시간을 고독의 시간이 되게 했다. 받아들였다. 나 자신에 대한 어리석음과 부족함마저 용서했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른무렵 시작된 나의 독백은 내적 고백은 질문하게 했고 스스로 답하게 했고 통찰하게 했다. 내적 대화는, 고독은 단 한번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내 스스로가 알게 했다.


혼자일 땐 이토록 진지한데, 함께 일 땐 웃긴 걸 좋아하고 B급 감성의 유머코드와 바이브에 흠뻑 취한다. 주변에서도 얼굴 생김새와는 반대로 허당미와 백치미에 놀라기도 한다. 진지함도 좋고 망가짐도 좋고 강인함도 좋고 나약함도 좋다. 결국 하나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약함과 취약함이란 내겐 더는 약한 성정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그 나약함과 취약함이 사는데 훌륭한 자극이 되어준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나이 들어갈수록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 쉽게 볼까. 혹은 나약하게 볼까. 순진하게 볼까.하는 것들에 관심없고 상관하지 않는다. 개의치 않는다. 날 포장하는 수식어나 말들,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아서고 진짜는 많은 말이, 설명이 필요없다는 걸 알아서다.


정신 세계가 곧 나다. 말과 글은 내 정신 세계의 체계화된 언어다. 내 정신 세계의 현현함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 문장에서 많은 것이 읽혀질 때가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 삶을 더욱 선명하게 하는 건 인간 관계의 축소지 확장이 아니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라는 건 결국 정신 세계가 비슷하다는 말과 같다. 자기 생을 지탱하는 지지하는 인간의 내적 투쟁의 과정과 결과의 총체적 드러남이다. 정신 세계가 촌스러운 건 위험하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입은 옷, 신발, 가방, 세련됨, 부티... 이런 것들이 전부가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수시로 변하는 건 내게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 결국 본질.이다.

대신,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 말들, 말투, 목소리, 태도, 눈빛을 본다.


다시 사랑하게 되면 이런 사람을 꼭 발견하게 될 것만 같은.

내 정신 세계가 건강하고 건전하고 세련되면 내 눈에도 그런 사람들만 보이게 될 것이라서.

그러니 나부터가 정신 세계가 세련된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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