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이다

by Aarushi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잠식되면 한 인간의 얼굴이 얼마나 변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나 자신이 그랬고 그 변화는 금세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을 고르다 2018년, 2019년 즈음 내 사진을 보게 됐다. 물론 지금보단 나이도 어렸고 젊었고 무엇보다 생기있어서겠지만, "내가 이랬었지 참. 이땐 이렇게 예뻤네. 옷들 봐... 레오파드 블라우스도 있고 프릴 가득한 살구색 블라우스도 있고..." 했다.


그 뒤로 한동안 무기력했고 우울했던 나는 실은 이토록 귀하고 찬란한 순간들을 놓쳤다. 마음의 어둠에서 조금씩 벗어났을 땐 사느라 바빴고 나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나는 쉬지 않고 일했고 몰입했다. 어쩌면 날 파괴하는 내재화된 부정적인 생각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다. 생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시기도 필연이었겠구나. 내게 꼭 필요한 순간들이었구나.싶은 것이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사유와 사색하는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외려 감사하다.


그 시기 몸이 가장 바빴고 무엇보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치만 나는 쉬지 않았다. 그래야지만 내가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때 깨달은 게 있다. 나는 결코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생각은 내가 아니라는 것. 몸을 힘들게 하니, 고되게 하니, 피곤하게 하니 나는 점점 나아져갔다. 회복되어 갔다. 결국 몸의 문제였구나. 깨닫게 된 것들이 알게 된 것들이 나를 일으켰다.


마음씨가 고와야 얼굴이 곱다.

마음씨가 맑아야 얼굴이 맑다.

마음이 편안해야 편안한 얼굴이 된다.

마음이 우울하면 우울한 얼굴이 된다.

마음이 어두우면, 그늘지면 얼굴도 어둡고 그늘진다.

마음이 밝으면 얼굴도 밝다.

마음이 생기있어야 생기있는 얼굴이 된다.


생각과 마음이 날 잠식하도록 두었을 때 내 얼굴은 어땠나? 내 낯빛은 어땠나? 소스라칠 만큼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지리멸렬하게 내 얼굴을 파악하고 나서야 일어설 생각을 했다. 몇 해를 그랬으니 금세 회복되기란 요원했다. 한 번 푸석해진, 스스로가 망가뜨려버린 낯빛을 회복하기란, 그 모양새를 본래로 되돌리기란 이토록 어려운 거구나.를 실감했다. 기운이란 것이 이토록 중요하단 것도.


나의 스물, 나의 서른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명랑했고 발랄했고 밝았고 호기로웠고 용기있고 시원시원했다. 한참을 돌고돌아 이토록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흔히 생각하는 미인이 아니다. 전형적인한국 미인과는 거리가 먼, 항상 들어온 것이 이목구비가 화려하다, 이국적이다.였다. 피부도 까무잡잡해서 여름이면 태닝한 피부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 스스로도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나, 매력적인 얼굴은 틀림없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요목조목 아기자기한, 백옥같이 하얀 피부의 미인은 아니나 그럼에도 줄곧 평범하진 않다, 연예인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흔한 마스크는 아니고 개성있는 편에 가깝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엔 하나로 귀결되는 건 있었다. 매력, 아우라, 분위기... 물론 그 시절의 이야기다.


그 이후. 방황과 무기력감과 우울의 나날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나를 잃어갔다.

한 사람의 마음가짐과 생애는 이렇게 분명하게 얼굴에 드러나는구나.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경계하는 편인데, 외면과 내면은 하나기 때문이다.

외면은 내면의 확장이자 드러남이다.


생기 발랄했던, 웃음과 미소 가득했던 나.는 어디로 간걸까? 그 시절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나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게 정말 나인가? 나란 말야?" 정말이지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나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나만의 동굴 속에서 침잠하고 나서야, 내 얼굴을 마주하고나서야 다시 빛을 볼 생각을 했다.


내면의 고통과 사투는 실은 이런 과정 없이는 요원한 것이다.

막상 마주하면 감내하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이라는 이 지독한 것들은 한 인간을 파멸 내지 파괴, 붕괴시킬만한 것이었다. 실체없는 두려움, 불안, 걱정, 후회, 자기 비난과 자기 혐오와 같은 건 한 사람의 얼굴의 빛부터 앗아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까지의 상태라면, 이미 내적동기나 의욕이나, 의지가 꺾인 상태다. 나는 그걸 경험한 적이 있고 스스로 일어난 경험이 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시절이 감쪽같이 없던 일이 돼 버린 것에 대한 자조섞인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분명한 건 지금은 그 시절의 나.도 기꺼이,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때 잃은 외모랄까. 빛이 꺼져가니 얼굴 기운이 변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늦다. 시간이 걸리게 된다. 메이크업을 해보아도 헤어 볼륨을 극대화 한다고 해서 곧장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잃어버린, 스스로를 방관한 형벌 같았다. 내면과 외면은 철저한 기운과 에너지 흐름의 작용이다.


탁한 기운이 엄습하는 걸 경험하면, 소위 얼굴의 망가짐을 경험하면 이젠 올라올 일 밖에 남지 않는다. 본래의 모습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타는 의지와 갈망이 생긴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외면이 아름답다.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데 외면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가릴 순 있어도 언젠간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가짜다.


결국 심상이다.

얼굴, 상.이란 심상의 반영이다. 현현함이다.


마흔에 가까워지니, 예전 만큼의 미.를 바라지도 추구하지 않는다.

내면의 회복을 통해 생기만큼은 잃지 말자는 것이 있고 내가 관리해야 할 것은 심상이란 걸 안다.


요목조목한 예쁨은 타고나지 않은 것이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보단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관리할 수 있는 기운, 아우라, 분위기.가 내겐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이것에 관심이 있다.


아우라. 분위기란 절로 생겨지는 것이 아니다.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내면, 생각, 말, 언어, 말투, 목소리, 태도, 기운...의 총체다.

아우라, 분위기 있는 자.를 따라갈 수 없다.

기운의 응집이고 잠식이다.


나만의 아우라, 분위기를 회복하는 건 실은 전부다.

설명하지 않아도 진짜인 걸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이니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상처에 아주 조금씩 새살 돋듯 나는 회복하고 있다.

심상을, 그리고 나의 아우라를, 나의 분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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